선치과병원 구강내과 김영건 전문의

김영건 전문의

옆에서 잠든 사람이 내는 이 가는 소리를 들어 봤다면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 냄비바닥에 쇠젓가락이 긁히는 소리처럼 끔찍한 소리로 여길 것이다. 단순 잠버릇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갈이는 질병에 속한다. ‘국제수면장애분류 제3판’에서는 수면 중 이갈이를 불면증, 기면증(밤에 잠을 충분히 잤어도 낮에 갑자기 졸음에 빠지는 증세), 몽유병, 수면무호흡증 같은 수면장애의 일부로 분류하고 있다. 이갈이에 대해 선치과병원 구강내과 김영건 전문의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 이갈이 원인은? … 뇌파 미세각성과 관계있어
현재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이갈이는 수면 중 일어나는 뇌파의 미세각성과 관계가 있다. 수면 상태에 있는 인체는 뇌파의 변화에 따라 얕은 수면과 깊은 수면 상태를 오간다. 뇌파의 미세각성이 일어나면 깊은 수면에서 얕은 수면으로 넘어가는데, 이때 교감신경 흥분, 심장박동 변화 등 여러 신체 변화가 나타난다. 턱 근육 수축도 그중 하나인데, 이것이 이갈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깊은 수면에서 얕은 수면으로의 미세각성이 잦을수록 이갈이가 더 심하게, 자주 생긴다.

◆ 의식적으로 깨무는 힘보다 50% 더 강해 … 치아 손상, 두통, 턱관절질환 등 유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갈이 때 치아에 가해지는 힘은 의식적으로 최대한 깨물 수 있는 힘보다 50% 정도 더 강하다고 한다. 이갈이가 치아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제일 흔한 손상은 치아 마모다. 이갈이가 심한 사람들은 치아 바깥층의 가장 단단한 법랑질층이 깎여 안쪽의 상아질층이 노출되기도 한다. 또, 강한 힘에 치아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므로 치경부(치아와 잇몸의 연결부위)가 깨져 굴곡파절(치경부에 패인 부위가 생기는 것)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마모나 파절은 시린이의 주된 원인이 된다. 또, 이갈이는 턱에서 소리가 나거나 턱 주변 뻐근한 느낌이 드는 턱관절 질환의 주요 원인이며, 만성 두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치과 임플란트 치료가 대중화된 요즘에는, 이갈이 자체가 임플란트 치료의 성공을 방해하는 요소로 지목된다. 임플란트 치료의 핵심은 치조골(뼈)에 식립체(나사)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심을 수 있는지에 있다. 치아에 강한 힘을 가하는 이갈이는 임플란트 식립체의 유착 및 고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쳐 치료 실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 수면다원검사가 가장 정확한 진단법이지만 병원에서 최소 하룻밤 자야
이갈이를 진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수면다원검사가 있다. 뇌파, 안구운동, 심장박동, 산소포화도, 호흡, 근전도 등에 대한 센서를 부착하고 수면의 변화를 관찰하는 검사다. 수면장애를 가장 정확히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이갈이의 경우 일반적인 수면다원검사에 턱근육 근전도, 이갈이 소리에 대한 오디오센서, 턱 움직임에 대한 비디오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차이가 있다. 원칙적으로는 수면다원검사로 진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그러나 보험급여 적용으로 비용이 크게 절감된 뒤에도, 병원에서 하루 자야 한다는 점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 치과의사의 임상적 진단은 간편하고 정확 … 송곳니와 작은어금니 상태 확인 가능
반면 치과의사의 상담과 관찰을 통한 임상적 진단은 간편하면서도 정확도가 높은 보편적 진단법이다. 치과에서는 생활환경, 치아 상태, 환자의 증상 등을 종합해 이갈이를 진단한다. 주요 방법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장 쉬운 방법인 가족 등 같이 사는 사람의 목격이다. 경우에 따라 수면 중의 이갈이를 본인이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환자들은 본인의 이가 모두 부서지는 꿈을 꿨다고 하기도 한다. 둘째로 송곳니와 작은어금니의 마모된 정도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는 식습관의 영향도 상당 부분 작용하기도 하고, 대합치(맞물리는 치아)에 있는 보철물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특정 식습관이나 치과 보철치료 없이 10~20대, 30대 초에 송곳니나 작은어금니가 편평해져 있다면 이갈이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로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옆머리 부위나 턱, 볼 주변에 뻐근한 느낌과 통증이 있다면 이갈이를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러한 증상을 환자에게 설명할 때 “저는 이갈이 안 하는데요?”라고 대답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갈이는 단순히 이를 옆으로 빠득빠득 가는 형태로뿐만 아니라 이를 악무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아침의 턱 통증이나 두통은 이갈이를 암시하는 신호일 수 있다.

◆ 약물, 구강 내 장치 등 이용 … 최근엔 보툴리눔독소 치료 주목
이갈이가 수면 중의 뇌파 변화에 의해 일어나기에, 이갈이를 완벽히 치료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추신경계통에 작용하는 약물을 사용해 이갈이 증상을 줄일 순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있어 일부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다. 가장 흔한 치료법은 구강 내 장치 착용이다. 개인 치열에 맞춰 제작한 레진 장치를 환자 치아에 붙이게 된다. 환자에 따라 장치치료 후 이갈이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장치에 적응하면 이갈이가 재발하는 환자들이 일부 있다.

최근엔 보툴리눔독소를 이용한 치료법이 주목받고 있다. 이갈이가 턱을 움직이는 근육이 강하게 수축되면서 나타나므로, 보툴리눔독소로 근육의 과도한 수축을 억제해 이갈이의 횟수와 강도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기존의 구강 내 장치 치료가 이물감 때문에 불편한 경우의 치료 계획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

◆ 이갈이 줄이려면 생활습관과 식습관 교정하려는 노력 필요
이갈이를 줄이기 위해선 이 악물기 등 안면근육을 긴장시킬 수 있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딱딱한 음식은 턱 근육을 긴장시키는데 이것은 이갈이로 이어질 수 있다. 커피, 녹차 등 카페인이 들어간 음식은 미세각성을 일으켜 숙면을 방해할 수 있어 과도한 섭취를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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