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김경훈 방송인.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혼자 위원장이란 사람을 욕했다. 아마 개 같은, 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들어서자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주차를 끝내고 나는 위원장의 행동을 되짚어 봤다. 위원장은 평소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웃는 얼굴과 따뜻한 말투는 그런 칭찬을 듣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의 행동은 달랐다. 은연중에 진짜가 드러난 것일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오늘 대전시청에서 심의위원회가 있었다. 나를 포함해 아홉 명의 심의 위원들이 참석했고, 두 시에 시작된 회의는 예정 시간보다 훨씬 지나 저녁 일곱 시에 끝났다. 예정 시간 보다 두 시간이나 넘겼으니 담당자는 무척 미안한 얼굴이었다. 담당자가 위원들을 향해 말했다. 저녁 식사 예약을 할까요? 먹고 가실 거죠? 나는 당연히 ‘네’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무척 배가 고팠고, 일곱 시가 넘었으니까. 게다가 집에 가면 아내는 밥상을 치웠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 말, 밥을 먹고 가겠다, 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위원장이 내 말을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다들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다음에 하시죠.”

이게 무슨 소린가. 약속이 있는 자기만 갈 것이지, 나는 그의 행동에 부아가 치밀었다. 약속이 없었고 혼자 먹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위원장이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봤을 것이다. 식사 하고 가실 건가요? 아무튼 위원장의 경솔한 행동에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상황은 종료 되고 말았다. 담당자는 환하게 웃으며 “그럼 다음에 하시죠.”라고 말했고(조금 웃었던 것 같다), 나는 불쾌한 심정으로 엘리베이터에 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지겨운 적은 처음이었다. 퇴근시간으로 인해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고, 소변까지 마려워 혼났다. 저녁밥을 못 먹었다는 말에 아내가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뭐하고 다니는데 이 시간까지 밥을 못 먹은 거야?”

위원장이란 사람으로 인해 기분이 나빴지만 얻은 수확도 있다. 나 자신을 돌아 봤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지, 남에게 피해를 준 일은 없는지, 고민하다 문득 기억하나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만큼 부끄러웠다. 사소한 행동으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입은 경우이다.

시립도서관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4층 열람실의 ‘노트북 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나를 흘겼다. 생면부지의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그에게 왜 그러냐고 눈으로 물어봤다. 그러자 그가 옆으로 다가와 내게 귓속말을 했다. 마우스의 클릭하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려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노트북 실에서 마우스 소리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들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여기선 무 소음 마우스를 쓰는 게 예의에요.” 아아, 내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노트북 실이 왜 조용한지 그때 알았다.

내가 괜찮으면 다른 사람도 괜찮을 걸까? 아닐 것이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나의 ‘괜찮음’으로 힘들어 할지도 모른다. 지금도 거리에 나가보면 보행 중에 담배를 피우거나, 휴대폰으로 음악을 크게 듣거나, 목줄을 채우지 않은 애완견과 산책하는 사람이 있다. 염치없고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 이젠 멈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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