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99] 한-아세안 ‘부산 선언’에 담긴 정치적 의미

한-아세안 정상들이 지난 2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아세안 정상들은 항구적 평화와 안정 구축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 의지와 구상을 지지했다. 청와대 제공
한-아세안 정상들이 지난 2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아세안 정상들은 항구적 평화와 안정 구축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 의지와 구상을 지지했다. 청와대 제공

대한민국과 아세안은 1989년 첫 대화관계(Dialogue Relation)를 수립했습니다. 올해로 30년입니다. 이를 기념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가 이번 주(25~27일) 부산에서 열렸습니다.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정상이 참석했는데요.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아세안 10개국 정상은 한-아세안 관계 강화를 위한 ‘신 남방정책’ 비전을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신 남방정책을 통해 아세안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고, 안보 차원에서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과 북핵 대응 공조와 협력을 이끈다는 구상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번 행사 참여국 모두 남·북 ‘동시 수교국’이라는 겁니다.

군사합의 위반 北에 아세안 정상 “한반도 평화지지”
김정은, 아세안 무대 중요성 누구보다 잘 알아
북미 비핵화 협상, 남북관계 개선 계기 마련해야

그런데 북한은 정상회의 개막에 맞춰 해안포를 발사했습니다. 지난해 체결한 9.19군사합의를 처음 위반했는데요. 한국과 아세안 정상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세안 정상들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 구축을 위한 문 대통령 의지와 구상을 지지했습니다.

아세안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움직일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대표적으로 두 차례 열린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각각 싱가포르(1차)와 베트남(2차)이었으니까요. 그만큼 김 위원장도 아세안이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정상회의 불참을 통보하면서도 정중함을 지킨 것도 그런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새로운 계기와 여건을 만들려는 문 대통령의 고뇌와 번민도 이해한다. 기대와 성의는 고맙지만, 부산에 가야 할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말이지요. 김 위원장이 정중하게 ‘거절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라면, 아세안이 북한에 얼마나 중요한 무대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국면전환용, 단순 선언에 그쳐선 안 돼
뚜렷한 성과 없으면 정책 지속성 담보 못해
정치권, 아세안 정상 메시지 행간 읽어야

문재인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들이 지난 2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스타트업 서밋 및 혁신성장 쇼케이스에 참석해 스타트업 대표들과 함께 별모양 조각을 끼우는 세리모니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들이 지난 2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스타트업 서밋 및 혁신성장 쇼케이스에 참석해 스타트업 대표들과 함께 별모양 조각을 끼우는 세리모니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국내 최대 규모 국제행사에서 아세안 정상들의 한반도 평화지지는 김 위원장에게는 상당한 압박이었을 걸로 짐작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 정상회의가 경제 영역확장과 함께 교착상태인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 관계개선의 돌파구가 되기 바랍니다.

아세안 국가들과 합의한 내용들이 ‘국면 전환용’이거나 성과내기에 급급한 ‘선언’에만 그치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부가 3년 뒤 추진하겠다고 호언한 ‘신 남방정책 2.0’은 한발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북한에 압박은커녕 코웃음 칠 일만 만들 수 있습니다.

또 3년 뒤 정권이 바뀐다면 신 남방이든, 북방이든 정책의 지속성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정권을 다시 잡더라도 전면적인 궤도 수정이 필요할 상황이 올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신 남방정책 동력을 확보했다면, 이를 바탕으로 외교 ‧안보 분야에서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뚜렷한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미국에 내년 4월 전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정상회담 취지도 왜곡될 수 있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이는 제1야당 원내대표가 “총선 전 북미 정상회담을 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민정 대변인)고 발끈했고, 민주당은 “국가 안위도 팔아먹는 매국세력”(이해찬 대표)이라고 쏘아붙였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자신의 발언이 그런 의도가 아니라며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라고 받아쳤습니다.

물론 지난 해 지방선거 하루 전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선거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3차 회담마저 총선 직전 열릴지 모른다는 한국당의 불안 심리가 나 원내대표 입을 통해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나 원내대표 발언의 실체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한국당 역시 북핵 해결을 위한 북미 정상회담은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야는 아세안 정상들이 북한과 김 위원장에 보낸 메시지의 행간을 깊이 있게 읽어야 합니다.

총선만 보고 달리고, 패스트트랙만 갖고 으르렁거릴 게 아닙니다. 아세안과 지속적 교류와 협력이 국익 증진과 더불어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치권의 전향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때입니다.

지자체 차원의 민간교류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남아공 더반에서 2022년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총회를 유치한 허태정 대전시장이 “북측 도시를 대전으로 초청해 한반도 평화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겠다”고 한 계획도 실현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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