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괄의 신비한 산야초]

대전시 중구청 평생학습센터 강사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주말에 친구들과 산행을 했다. 이까짓 가랑비쯤이야 하고 집을 나섰다. 대전 둘레산잇기의 마지막 코스인 장수봉은 나즈막하다. 산괴불주머니풀은 아직도 연녹색 잎에 누런 꽃을 달고 가을의 끝을 버티고 있다. 이파리에 매달린 물방울이 애처롭다.  

 촉촉하게 젖은 길 위에 깔린 낙엽 때문에 경사가 진 등산로는 미끄럽다. 안개인지 가랑비인지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하다. 그래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걷는 기분은 상쾌하다. 오늘이 입동인데 또 이 한 절기를 보내며 동창들과 늦가을을 즐긴다.  

 운무(雲霧)사이로 뿌리공원이 흐릿하게 보인다. 작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각 성씨(姓氏)의 역사를 기록한 비석이며 조형물들이 한눈에 내려뵌다. 제법 큰 냇가가 공원을 휘감아 돌며 운치를 더 한다. 나의 뿌리와 효(孝)를 생각게 하는 이 공원은 우리의 정서에 딱이다.  

 장수봉에 있는 작은 정자(亭子)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와 하늘의 경계선이 희미하게 다가온다. 갈색으로 변해가는 흐릿한 풍경이 이색적이다. 마루에서 막걸리 한 잔과 단풍의 어우러짐은 영락없는 별유천지다.

 봉우리 언저리에 낮게 펼쳐진 까마귀밥나무가 도열해 있다. 군락을 이룬 나뭇가지에 영롱한 붉은 열매가 거미줄을 휘감고 다글다글 매달려 있다. 가을이면 작고 아주 붉은 영롱한 열매가 되어 마치 봄철에 앵두 같다. 늦가을에 이렇게 잎이 진 가지 위의 열매를 보니 색깔이 더 붉어 보인다.  

 까마귀밥나무는 낙엽관목으로 중부 이남의 낮은 산지에서 드물게 자란다. 키는 1미터 정도다. 잎은 3~5갈래로 갈라진다. 겨울철에도 푸른 잎이 남아 있는 것이 더러 있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4~5월경에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황백색으로 핀다. 씨방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열매는 10~11월에 찔레열매 모양으로 붉게 익으며 겨울에도 오랫동안 가지에 매달려 있다. 관상용으로 정원에 많이 심기도 하는 나무로 까마귀밥여름나무로도 불린다.

까마귀밥나무
까마귀밥나무

가을에 빨갛게 익은 열매는 햇빛에 반투명해지고 속이 비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분재용으로도 많이 이용된다. 작은 가지에 다닥다닥 달린 콩만한 붉은 알갱이 모양이 먹음직스럽지만 쓴맛이라 사람이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새들은 잘 먹는다고 한다. 사람은 못 먹는 것이니 까마귀에게나 주라는 뜻으로 ‘까마귀밥’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또 ‘여름’은 ‘열매’에 해당하는 우리의 고유어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나무다.  

 한의(韓醫) 자료에 의하면 이 나무의 뿌리와 열매를 약용한다. 뿌리는 부인의 허열(虛熱)을 내리고, 생리불순, 생리통에 효과적이다. 열매는 등롱과(燈籠果)라는 이름으로 갈증을 없애며 진액(津液)을 촉진시키는 효능이 있다.

 민간에서는 예로부터 칠해목(漆解木)이라 하여, 옻나무의 알레르기인 옻독을 푸는 효과가 있어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옻 알레르기의 경우, 나무의 신선한 잎과 줄기를 잘게 썰어 물에 달여 마시면 잘 낫는다. 또는 달인 물을 피부에 바르기도 한다. 증상이 심한 경우에도 부작용이 없이 다른 약재에 비해 치료기간도 단축되는 탁월한 효능이 있다. 가지에 촘촘히 달린 붉은 열매를 보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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