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인류가 발병한 최고의 정치제도다. 이를 능가할 수 있는 제도는 아직 찾지 못했다. 민주라는 말은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도 갖다 쓴다. 북한의 대외 공식 명칭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다. 약자로 DPRK다. 북한도 ‘민주인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하면 미국이 먼저 떠오른다. 미국은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다. 처음부터 민주주의로 국가로 설계되어 탄생한 나라처럼 보인다. 미국은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 민주주의 선봉자이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미국의 얼굴과도 같다. 필자는 미국 민주주의를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주최로 열린 ‘문화다양성 유교문화 세미나’에서 알게 된 ‘미국과 민주주의’는 필자의 상식과 거리가 있었다. 세미나에는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학센터연구원을 지낸 패트릭 멘디스 대만국립정치대학 초빙교수가 참석했다. 양승조 도지사도 참석한 큰 규모의 학술행사였다. 멘디스 교수는 ‘현대 미국사회에서 유교문화의 가치’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의외의 얘기를 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해체하는 씨앗을 가진 위험한 제도”

“미국의 경우 결코 민주주의가 의도된 것은 아니다. 헌법이나 건국 문서들을 작성하는 동안 계몽된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사용을 피했다.” “(민주당의 창립자인) 토마스 제퍼슨도 종종 공화국이나 공화주의적 정부 형태는 언급했지만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한번도 쓰지 않았다. 건국 문서와 50개주 헌법에서도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전혀 사용한 적이 없다.”

미국을 세운 이른바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건국의 아버지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박식했다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이 택해야 할) 정부 모델을 찾아 고대 역사를 살피고 유럽의 현대 국가들도 살폈으나 우리(미국)의 상황에 적합한 헌법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해체하는 씨앗을 가진 위험한 제도라고 보았다.

2대 대통령을 지낸 존 아담스는 “민주주의는 오래 가지 않는다. 자살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결코 없었다”고 경고했고, 초대 재무장관 해밀턴은 “통찰에 의하면 순수한 민주주의 –실행 가능할 경우- 가 가장 완벽한 정부지만, 경험에 의하면 이보다 더 잘못된 것은 없다”고 했다. 제임스 메디슨은 민주주의를 난기류와 다툼의 구경거리에 비유하며 “일반적으로 그들의 종말이 폭력적인 만큼 존속 기간이 짧았다”고 평가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신념은 1차세계대전을 계기로 찬성 쪽으로 바뀌었고, 2차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미국을 민주주의의 챔피언으로 내세우면서 ‘민주주의 촉진’은 미국적 어휘가 되었다고 멘디스 교수는 말했다. 미국이 민주주의의 대표 국가로 자리매김한 배경이다.

'조국 사건'으로 벌어지는 낯선 현상들은 민주주의 위험 신호

민주주의의 약점이 극복된 건 아니다. 문제점과 위험성은 여전하다. 민주주의의 부정적 특성은 오늘날에도 미국 내에서 논의되고 있다. “‘정체성 정치(politics of identity)’가 오늘날 민족 인종 종교로 미국을 양극화하고 사회를 분열시켜왔다”고 메디스 교수는 지적한다. 그의 발표문을 보면서 작금 한국의 정치 상황을 떠올린 청중들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조국 사건’으로 벌어지고 있는 낯선 장면들은 활력넘치는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보내는 위험 신호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지배’원리를 채택한 제도라면, 공화주의는 ‘조화’가 핵심이다. 공화주의를 위해선 국회 같은 대의기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전대 진석용 교수는 공화제를 ‘간접민주주의’로 풀이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소수자 보호’같은 조건을 붙여놓긴 하지만 궁극적으론 숫자 싸움이다. 이 때문에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대중을 내편으로 만드는 데만 애쓰는 정치가 되기 십상이다. 대중들이 이성보다 충동과 감정에 좌우되고, 정치인이 여기에 영합하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모습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선 정작 ‘민주’를 정체(政體 정치형태)로 쓰지 않는다. ‘공화’에 이미 ‘민주’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진 교수는 말한다. 미국과 독일은 연방공화제, 프랑스는 공화제, 영국과 일본은 입헌군주제를 정체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제’다. 민주와 공화를 나란히 쓰고 있다. 민주가 각별히 강조되고 있다. 상해임시정부 때부터 그렇게 썼다고 한다.

한때 어떤 연예인은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외쳤다. 그가 강조했던 것은 공화보다 민주였다. 그러나 ‘민주’가 만능은 아니다. 민주주의 나라 미국에서조차 함부로 들먹이지 않던 조심스런 단어였다.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그런 걱정은 지금 민주주주의 국가에서도 종종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탁신파-반탁신파로 나뉘어 데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태국은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80년 된 나라다. 포퓰리즘으로 나라가 거덜나고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도 민주주의 국가다. 우린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정치 수준이 못 미치면 민주주의도 병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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