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힐링고전]

일제에게 강탈당한 나라와 역사를 되찾는 독립 투쟁에 57년의 삶을 전부 소진시킨 단재 신채호선생의 독립투쟁사를 기려본다.

▴ 단재의 57년 삶은 독립투쟁의 역사였다.
선생은 충청남도 대덕군 정생면(현재 대전시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났고(1880년, 고종 17년) 중국에 있는 여순감옥에서 57세 나이로 순국하였다.(1936년) 
선생은 6세 때부터 조부(申星雨)가 운영하는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여 13세 때 사서삼경을 독파하여 신동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19세 때 성균관에 입학한 선생은 박은식 선생이 주도한 진보적 유학을 접하면서 봉건유생의 틀에서 벗어나 점차 민족주의 세계관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선생께서는 21세에 성균관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황성신문 논설가로 독립투쟁활동을 시작하였다. 
언론 활동을 통해 일제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국권회복에 온 국민이 진력할 것을 계몽하면서부터 선생의 파란만장한 독립투쟁활동이 시작됨이라 하겠다. 

선생의 독립투쟁활동은 크게는 언론활동, 애국계몽활동, 역사연구 및 저술활동, 독립자금 염출활동으로서 그야말로 선생의 57년 삶은 나라와 역사광복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 하겠다.
(지면관계상 선생의 여러 활동 중 역사연구 및 저술 활동만 기려봄이 아쉽다.)

▴ 단재의 모습은 초라하였으나 언제나 기백과 신념에 불타 있었다.
춘원 이광수가 단재의 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단상에 앉은 단재는 하얀 얼굴에 코 밑엔 까만 수염이 약간 난 극히 초라한 샌님 이었다~ 오직 비범한 것은 그의 눈이었다. 
아무의 말도 아니 듣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러한 이상한 빛을 가진 눈이었다.”

이광수의 표현처럼 선생의 모습은 초라하였고 항상 꾀죄죄한 차림을 하고 다녔지만 말투에는 추상같은 기개가 서려 있었고 눈빛 또한 예리한 빛을 발하였다고 한다. 
특히 세수를 할 때면 항상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물을 얼굴에 찍어 바르듯이 하여 옷을 온통 적시면서도‘나는 평생에 머리 숙이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끝내 세수 법을 고치지 않았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이처럼 선생은 남의 이목을 꺼리지 않고 굳건한 자신의 신념대로 밀어붙이고야 마는 전통적 선비정신을 지녔다 하겠다.

▴ 단재의 역사 연구는 곧 민족독립운동이었다.
선생께서는 국사는 곧 국혼(國魂)이라 인식하였다. 
그리고 민족사연구자체가 곧 선생의 독립운동이었다. 
① 선생께서는 역사 이론인 독사신론(讀史新論)을 제시하여 존화주의(尊華主義)에 젖은 사대사학(事大史學)을 비판하는 한편 일제 식민주의 사관의 허구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민족주의에 입각한 자주적이며 실증적인 학국고대사 재구성에 노력했다. 

② 선생은 1914년 만주 봉천에서 윤세복이 경영하는 동창학교의 교사로 초빙을 받아 청소년들에게 국사교육을 시키는 한편 조선사(朝鮮史)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만주 일대의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답사하면서 민족사학의 실증적 토대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우리 고구려의 터전이었던 백두산의 능선을 오르내리고 조선의 알렉산더 대왕인 광개토대왕의 묘를 어루만지면서 가슴 벅차했을 선생의 모습을 그려본다.

▴ 단재의 절규를 들어본다.
•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心的)활동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라하면 조선민족의 그리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라……(조선상고사 총론에서) 

• 우리 조선은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통곡하련다.(낭객의 신년만필에서) 

• 애국자는 훌륭하고 애국자는 장하도다. 
애국자가 없는 나라는 비록 강해도 반드시 약해지며 일어난다 해도 반드시 망하며 그 나라가 살았다고 하지만 반드시 죽는다. 
애국자가 있는 나라는 약하다 해도 반드시 강해지며 쇠할지라도 반드시 성하고 망하더라도 반드시 일어나며 죽었지만 반드시 살아나게 된다.(이태리 건국 삼걸 전 서문에서)
아! 어떻게 하면 우리 2천만의 귀에 항상 애국이란 글자가 울리게 할까? 오로지 역사로서 할지니라. 
아! 어떻게 하면 우리 2천만의 눈에 항상 나라란 글자가 맴돌게 할까? 
오로지 역사로서 할지니라. 
아! 어떻게 하면 우리 2천만의 피와 눈물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뜨겁게 흐르게 할까? 
오로지 역사로서 할지니라. (‘역사와 애국심의 관계’에서)

▴ 그렇다. 처절했던 선생의 독립투쟁의 삶, 잠시 눈을 감고 기려보자.


김충남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김충남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堂)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 대전 KBS 1TV 아침마당 "스타 강사 3인방"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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