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라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이례적인 검찰 수사가 불러온 화제 중 하나는 ‘검찰은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정말 힘이 센 기관인가?’하는 의문 아닌 의문이다. 김용옥 교수는 어제 KBS 라디오에 나와 “검찰이 대통령 위로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이런 검찰이 칼을 맘대로 휘두르게 그냥 놔두면 안 된다는 게 여권의 검찰개혁 배경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민주 국가라면 ‘대통령도 어쩔 수 없는 검찰’을 두는 게 지극히 정상이다.

왜 늘 권력의 충견 노릇만 하느냐고 비판받는 게 우리 나라 검찰이다. 그런데 보기 드물게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사해보겠다는 검찰을 두고 이런 황당한 소리가 나오는가? 요즘 조국 수사와 관련하여 검찰개혁을 외치는 주장은 십중팔구 ‘충견 검찰’을 원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현재의 검찰은 조국 수사의 경우처럼 말을 잘 안 들을 수 있는 만큼 새로운 검찰을 하나 더 만들자는 게 여권이 추진하는 공수처다. 검찰권력은 쪼그라뜨리고 공수처에 힘을 실어주면서 내편을 만들어 보자는 게 목표다. 

검찰과 진보 정권의 '악연' 이해는 되나

여권이 이렇게까지 하는 심정은 이해한다. 전통적으로 검찰은 진보 진영보다는 보수 측과 더 가까웠다. 역대 정권의 대부분이 보수정권이어서, 검찰은 권력의 충견 노릇을 하는 과정에서 야권(현재의 여권) 인사를 탄압하는 사례도 많았다. 검찰은 기본적으로 법을 지키지 않는 자를 처벌하는 ‘보수적 기관’이란 점에서도 진보 측과는 이질적이다. 진보 진영은 이런 저런 이유로 검찰에 대한 피해 의식 같은 게 있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은 이런 피해 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검찰의 정치적 불균형 문제는 여권으로선 심각한 문제다. 검찰은 정치인 개개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거와 민심을 좌우하는 기관이다. 권력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검찰에게 큰 영향을 받는 게 현실인 만큼 어떻게든 검찰을 바꿔야 할 입장이다. 

공수처 아이디어는 검찰의 정치적 불균형에 대한 여권의 의심과 불만에서 출발하고 있으나 공수처 또한 정치적 균형을 담보할 장치가 없기 때문에 진보진영에서 더 힘센 ‘내편 검찰’을 새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조국 수사에 대한 대통령과 여권의 태도를 보면, 작금 검찰개혁은 국민의 인권보다 정치인의 인권, 아니 내편만의 인권을 위한 개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예산 낭비를 참다못해 양심선언한 사무관은 검찰 고발로 압박하면서 대통령의 측근 비리에 대해선 왜 눈감아주지 않느냐고 노골적으로 검찰을 압박하는 게 현 정권 아닌가?

 ‘대통령의 정의’ 공허하지만 심각한 현상일수도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의’를 20번이나 강조했다. 이젠 공허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공허한 말로만 흘려버리기엔 심히 걱정되는 바가 있다. 자신의 측근 수사에 대해 살살 하라는 말까지 한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서 ‘정의’라는 말을 어떻게 입에 올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몰염치가 아니라 대통령의 기본인식 문제라면 심각한 문제다. ‘검찰의 조국 수사는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진정한 인식이라면 정말 대책이 없다. 누가 봐도 검은 색인데 내 눈에는 정말 흰색으로 보이는 상황이면 중증이다. 

그동안 문 대통령이 말하고 행동한 ‘정의’에 비추어보면 여권의 공수처는 국민이 바라는 검찰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들은 여든 야든, 진보든 보수든 부패한 권력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수사를 원한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가능한 검찰을 원한다. 이런 검찰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조국 씨의 경우처럼 장관 내정자라도 혐의가 있으면 수사하는 게 검찰의 관행이 된다면 대통령은 부패한 정치인을 함부로 장관에 임명하지 못할 것이다. 윤석열 같은 총장이 앞으로 한두 명만 더 나와도 우리나라의 썩은 정치는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김용옥 교수처럼 검찰이 대통령 위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건 검찰의 힘이 대통령보다 세서가 아니라 권력의 자신의 도덕성이 너무 취약해서 아래 권력조차 상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조국 같은 사람을 장관에 앉히지 않는다면 윤석열보다 더한 총장이 나와도 대통령이 검찰과 불편할 일이 없고,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게 칼을 겨누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대통령이 자기 측근이 아닌 일반 국민의 인권문제로 검찰을 압박한다면 국민들이 반발할 이유도 없다. 

검찰개혁에 대해 찬반을 묻으면 찬성하는 국민들이 많다. 그러나 정치권과 국민들은 지향점이 다르다. 국민들은 보통 사람의 인권이 보호받는 수사, 검찰 식구라도 제대로 수사하는 공정한 검찰을 원하지만, 정치권은 상대는 때려잡더라도 내편은 봐주는 검찰이 더 중요하다. 여권의 공수처는 후자에만 매달리는 개혁이다. 이번에 수사 대상이 조국 장관이 아닌 이전 장관이었다면 여권에서 인권 운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인권’ 대신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고 대통령은 ‘살살 수사’ 대신 더 강한 수사를 요구했을지 모른다. 

정치 안 바뀌면 검찰 개혁 난망

이런 내로남불 정권에게 정상적인 검찰개혁을 기대하긴 힘들다. 검찰을 바꾸려면 정치부터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은 부패한 사람도 내편이면 무조건 쓰는 억지 인사부터 멈춰야 한다. 조국 사건은 대통령 스스로 못하니까 검찰이 브레이크를 건 모양새가 됐다. 대통령의 엉터리 인사에 보내는 경종의 의미가 있다. ‘내정자 수사’를 대통령의 인사권 침해로 본다면 대통령을 옛날 임금 이상으로 보는 것이다. 검찰이 불법이 강하게 의심되는 사람을 장관 임명자라고 봐주는 건 임금님 시절에도 온당한 일이 아니었다.

정치가 바뀌지 않는 한 검찰은 바뀌기 어렵다. 대통령이 내 측근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보통 국민의 인권 때문에 불같이 화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기억은 없다. 조국 사건의 경우처럼 내 편 네 편의 문제가 있을 때만 대통령은 편향적 반응을 보였다. 여권은 조국 사건으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더 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조국 사건을 겪으면서 오히려 이 정권의 검찰개혁 의도를 의심하게 되었다. 

검찰개혁은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더 시급한 건 정치개혁이다. 국민들에게 ‘검찰개혁이 더 시급합니까? 청와대 개혁이 더 시급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국민들이 청와대를 아예 포기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답은 뻔하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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