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 박은식 선생을 기려본다
백암 박은식 선생을 기려본다
  • 김충남
  • 승인 2019.10.25 11: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충남의 힐링고전]

우리 역사를 중국에 팔아먹은 사대사가(事大史家), 일본에 팔아먹은 식민사가(植民史家)가 있었는가 하면 목숨을 걸고 우리 역사를 지켜온 민족사가(民族史家)들이 계시다. 

조선시대에는 북애자(北崖子), 일제 강점기에는 백암 박은식 선생과 단재 신채호 선생이 그 대표적인 분들이라 하겠다. 

먼저 백암 박은식(白巖 朴殷植)선생의 민족운동과 우리역사를 통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여러 자료 및 문헌을 참조하였음)

▴ 선생의 66년 삶, 이 나라 독립의 제단에 바친 삶이었다.
• 선생은 황해도에서 태어났으며(1859년 철종), 부친의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修學)하였는데 재주가 뛰어나고 시문에 능해 안태춘(안중근 의사의 부친)과 함께 황해도의 신동으로 이름이 났다. 

• 선생은 다산 정약용선생의 문인들로부터 다산의 정치, 경제, 사회분야의 개혁론을 섭렵하여 개혁적 사고를 갖게 되었고 그 후에도 성리학자이지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여러 학문을 접하면서 현실적이고 근대적인 사고와 민족주의를 키워갔다. 
이 같은 사상은 선생께서 구한말시기에 민족계몽운동, 구국운동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음이라 하겠다. 

• 선생께서 근대 민족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898년 독립협회가 전개한 만민 공동회 운동에서 문교 분야  간부급지도자로 활동하면서 부터이다. 

• 선생께서는 신민회를 비롯한 여러 민족운동단체에서 민중계몽운동을 전개하였고, 오성학교, 서북협성학교의 교장을 맡아 본격적인 민족교육을 실천하였다. 

•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을 비롯한 여러 신문과 잡지에 애국계몽운동을 고취하는 논설을 써서 전 국민이 애국사상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 선생께서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에 선출되어(1925. 3. 24) 노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독립과 임시정부의 통합화를 위해 노심초사하셨다. 
선생께서는 독립 쟁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단결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66세를 일기로 상해에서 서거하셨다.(1925. 11. 1) 

그야말로 선생의 66년 삶은 민중계몽활동, 언론활동, 교육활동, 역사서 저술활동, 정치활동 등으로서 이 나라 독립의 제단에 바쳐진 숭고한 삶이라 하겠다.
(지면 관계상 선생의 눈부신 독립운동활약 상을 다 담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 선생의 역사서 저술활동, 그것이 독립운동이었다.
 선생에게 있어 한국사연구와 저술은 곧 독립운동이었고 독립운동을 위한 힘의 축척과정이었다 하겠다. 
그리하여 선생께서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독립운동전선에서 한 날 한시도 붓을 놓지 않고 역사서를 저술하셨다.

① 선생은 1919년 4월 만주에 있는 윤세복 동지의 집에 1년간 머물면서 역사서 저술에 전념하였다. 
동명성왕실기, 발해태조건국사, 천개소문전(연개소문전) 등과 같은 민족영웅들의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이는 우리 국민이 민족영웅들의 기상을 본받아서 독립 쟁취의 기상을 기르도록 함이었다. 
그리고 만주에 있는 동포들의 교육 교재로 사용하게 하였다.

② 선생께서는 한국통사(韓國痛史)를 저술하여 중국인출판사에서 간행하였다.(1915) 
3편 113장으로 구성된 한국통사는 1864년 대원군 집정부터 경술국치 직후인 1911년까지의 한국근대사를 다루었다. 
특히 일제침략 사에 초점을 맞추어 대외적으로는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잔학성과 간교성을 폭로규탄하고 대내적으로는 민족적 통분과 적개심을 유발하면서 동포들의 각성과 반성을 촉구하였다. 

③ 선생께서 상해에서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발행과 독립운동사료 편찬 작업을 수행하던 중 국내에서의 3.1운동 소식을 듣고 곧바로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집필을 시작하였고 1년 후인 1920년 상해에서 간행하였다. 
이 책은 1884년 갑신정변부터 1920년 독립군 항일무장 투쟁까지의 일제침략에 대한 한국민족의 독립투쟁사를 3.1운동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다. 

이 책에서 선생은 일본제국주의 침략만행을 낱낱이 고발하는 한편 3.1운동이 갑신정변이래 발전되어온 민족독립운동의 주체적 역량에 의해 봉기한 것임을 밝혔다. 

선생은 이 책에서‘백번 꺾어도 꺾이지 않고 열 번 밟혀도 반드시 일어나 비관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결과는 반드시 승첩(勝捷)을 올릴 것이다.’라 하여 국내외 동포들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최후의 승리를 위한 독립투쟁을 고취 시켰다.

▴ 역사를 보존하는 것이 나라를 되찾는 원동력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나라를 멸할 수는 있으나 역사를 멸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그 것은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역사)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이 통사(痛史)를 짓는 까닭이다. 
정신(역사)이 보존되어 멸하지 아니하면 형체(나라)는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박은식의 한국통사 서문에서)

▴ 그렇다. 옷깃을 여미고, 선생의 숭고하신 독립의 삶을 기려 본다.


김충남 대전시민대학 강사.
김충남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堂)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 대전 KBS 1TV 아침마당 "스타 강사 3인방"에 출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