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94] ‘협치’로 국민들 얼굴에 웃음꽃 피워야

지난 22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오른쪽)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화면 갈무리
지난 22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오른쪽)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화면 갈무리

무림의 두 고수가 제대로 만났습니다. 정치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 할 만큼 ‘볼매(볼수록 매력)’였습니다. 사흘 전(22일)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100분 토론’ 얘기입니다.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두 논객의 만남은 섭외부터 화제였습니다. ‘공정과 개혁을 말한다’는 주제도 관심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두 사람이 맛깔나게 차린 밥상에 국민들은 ‘유쾌‧상쾌‧통쾌’를 만끽했습니다. 같은 시간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보다 시청률이 높았고, 정규방송 후에 이어진 유튜브 중계도 15만 명이 봤을 정도니까요.

무림 고수들이 정치권에 던진 ‘조화’라는 메시지
조화로움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해‧인정에서 출발

두 정치 논객의 토론은 ‘대결’이나 ‘설전’이라기보다 오히려 화기애애했습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지도, 잡아먹을 듯 달려들지도, 막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순발력 넘치는 재치와 위트, 유머가 ‘만발(滿發)’했습니다. 국민들도 이처럼 재밌고 유쾌한 정치를 바라는 게 아닐까요.

애교 섞인 티격임에도 뼈가 있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어록(語錄)’이었습니다. 그 만큼 내공이 상당하다는 거겠죠. 절찬리에 방영된 두 사람의 토론은 ‘나만 맞고 넌 틀리다’며 치고 박는데 목맨 현실정치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화’입니다. 그 조화로움의 근원은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베트남 출신 승려 ‘틱 낫한’은 달라이 라마와 함께 생불(生佛)로 불리는데요. 그는 지난 2002년 출간한 《화(anger)》라는 책에서 “남을 응징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응징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면서 남을 용서하는 것도 화풀이의 한 방법이라고 했지요.

문 대통령, 2년 반 동안 진정한 ‘협치’ 노력했을까
민주당, ‘의존의 정치’에서 타협과 양보의 정치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뒤 민주당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뒤 민주당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다음 달이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절반을 마칩니다. 문 대통령은 며칠 전 종교지도자들과 만나 “나름대로 협치를 위한 노력도 해왔지만, 크게 진척이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공정’에 대해서도 “여전히 정치적 공방거리만 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는데요. 그래서인지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치권의 ‘협치’를 강조하고, ‘공정’만 스무 번 넘게 언급했나 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년 반 동안 보여준 것이 과연 진정한 ‘협치’였을까요? 야당 편을 들려는 소리가 아닙니다. 어쩌면 ‘반성’과 ‘참회’는 자유한국당이 더 많이 해야할 지도 모르니까요. 적어도 더불어민주당은 자기 성찰의 결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현역 의원이 2명(이철희‧표창원)이나 되지 않습니까.

운동경기에서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는데요. 강대강이 부딪치면 보는 사람은 재밌을지 몰라도, 선수들에겐 상처뿐인 영광만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정치판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다만 국정운영의 총책임자가 대통령이고, 정국의 흐름을 끌고나가는 주체가 여당이라면, 실권을 가진 편이 더 ‘노오력’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때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요. 문 대통령 취임 후 여야 5당 대표와 작년 3월에서야 처음 만났습니다. 지난 7월에 한 번 더해 두 번 만난 것이 전부입니다. 기자회견도 신년기자회견 두 번을 포함해 3차례에 불과합니다. 홍준표 전 대표가 토론에서 “문 대통령은 자기가 불편한 사람은 안 만난다”고 한 지적이 뼈를 때리는 이유입니다.

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저 자신부터,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 의견을 경청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과 함께 스스로를 성찰하겠다”고 다짐했는데요. 불편하겠지만, 언로(言路) 역할을 담당하는 기자들과 만남도 보다 적극적이기 바랍니다.

민주당 역시 ‘문재인’이란 원 플레이어에 의존하는 정치에서 그만 벗어나야 합니다. 그 의존의 정치는 딱 지방선거까지였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 대통령이라도 맹렬히 지적하고, 비판해 국정이 정도(正道)를 걷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이철희‧표창원 의원처럼 결기라도 보이던가요. 또 야당이 아무리 ‘밉상’이라도 한발 물러서 양보하고, 너그럽게 용서할 줄 아는 아량을 베푸는 게 여당의 역할입니다. 남은 임기 동안 ‘최악의 국회’라는 정치 밭에 ‘협치’라는 긍정의 씨앗을 뿌려 한숨과 주름살로 가득한 국민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과 같은 긍정의 씨앗이 있는가 하면 미움, 절망, 좌절, 시기, 두려움 등과 같은 부정의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앞서 소개한 ‘틱 낫한’이 쓴 책 첫 장에 있는 글입니다. 씨앗이나 꽃은 봄에만 뿌리고 피어나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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