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93] 불공정한 취재 관행 청와대부터 바꾸어야

국회의원과 검사, 기자가 식당을 가면 ‘식당주인’이 밥값을 낸다는 난센스.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 사회 권력층의 ‘갑질 문화’를 비꼰 말입니다. 특권과 반칙이 몸에 밴 사회에 사는 국민들은 ‘공정’과 ‘정의’를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개혁’이 필요하고, 대한민국 현실이 또 그렇습니다.

2년 전 한 여론조사 기관이 ‘국민 신뢰회복을 위해 개혁이 가장 시급한 기관’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법원, 검찰 등 사법기관’이 1위, ‘국회’가 2위, ‘신문사, 방송사 등 언론기관’이 3위였습니다. 이 삼각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면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공정사회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치개혁은 국민들이 직접 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법개혁은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잘 뽑으면 정치도, 사법도 개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요. 언론도 국민이 개혁할 수 있을까요? ‘유튜브’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만 해도 그 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국민들이 일일이 ‘가짜뉴스’를 판단하고 걸러내긴 쉽지 않습니다.

올해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세계 38개국 언론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언론 신뢰도는 22%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꼴찌였습니다. 그것도 4년 연속이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 직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례적으로 ‘언론개혁’을 언급했습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언론 스스로 그 절박함을 깊이 성찰하면서 신뢰받는 언론을 위해 자기 개혁의 노력을 해 달라”고 당부할 따름이었습니다.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란 ‘언론의 자유’와 ‘언론 탄압’을 의식한 발언이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없는 구간도 있습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개혁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 출입방식을 등록제로 바꾸었습니다. “기자실에 대못을 박는다”는 거친 표현을 써가며 기자실을 폐쇄했습니다. 그리고 브리핑시스템을 새롭게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MB) 정권 출범과 함께 대못이 빠지면서 기자실은 다시 열렸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어렵게 갖춰진 ‘브리핑 시스템’이 사실상 마비된 겁니다. 청와대와 ‘풀기자단’ 사이에는 여느 기자들이 헤집고 들어가기 힘들 정도의 ‘장막’이 쳐집니다. 이 장막 안에서 정보를 두고 펼치는 두 권력 집단의 권력놀음은 박근혜 정권까지 이어집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떨까요. MB‧박근혜 정권보다 개선됐다고 하나, 청와대와 풀기자단의 ‘핑퐁게임’은 여전합니다. 게다가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라도 ‘급(級)’이 다릅니다. 풀기자단에 속하지 못한 기자들이 ‘내가 이러려고 청와대를 출입하나’하는 자괴감은 정권이 바뀌어도 그대로입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모든 내‧외부 취재는 그들만의 몫입니다. 지난해 판문점 정상회담 같은 굵직한 행사도 그들이 독차지했습니다. ‘기회의 평등’이나 ‘공정 사회’를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의 진심이 의심되는 대목이죠.

정부 부처와 지방정부는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출입처마다 ‘기자단’이나 ‘회원사’라는 조직이 주요 정보와 광고를 독점하는 건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나 검사가 밥값을 낼지언정, 기자가 지갑을 여는 경우는 보기 드문 ‘현실’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개혁 대상은 사법이나 정치보다 ‘언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론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나 공공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합니다. ‘워치독(Watchdog, 감시견)’으로 비유하지요. 하지만 열악한 경영 환경에 놓인 수많은 언론사의 현실은 다릅니다. 지금 시대의 언론은 문 대통령이 말한 ‘성찰’이 아닌, ‘광고’에 더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자들이 출입처를 온전히 감시하지 못하고, 받아쓰기만 하는 ‘랩독(lapdog, 무릎 위에 앉히는 애완견)’으로 바뀌는 것이죠. 심지어 남이 쓴 기사를 베끼기까지 합니다. ‘기레기(기자+쓰레기)’를 배출한 근원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약자 편이 아닌, 사회 지도층과 권력에 기생해 여론을 왜곡하고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언론은 그 자체로 ‘적폐’입니다. 서초동 집회에서 검찰개혁과 함께 ‘언론개혁’ 구호가 따라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 최고기관이라는 청와대부터 언론개혁에 나서기 바랍니다. 오랜 기간 불편부당하게 운영해온 ‘풀기자단’이란 장막을 걷어내고, 모든 출입기자들에 최소한 공정한 취재 기회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요.

춘추관에 갇혀 대변인이 불러주고, 기자들이 받아쓰는 관행도 벗어나야 합니다. 경호나 보안이 허용되는 범위에서 내부 취재를 허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예 출입처 제도를 없애는 방법도 있습니다.

윗물인 청와대가 언론 권력의 적폐를 씻어낸다면, 아랫물인 정부 부처나 지자체까지 흘러가지 않을까요? 그래야 자치‧재정분권을 포함한 지방분권이 이루어져도 공직사회나 지역 토호세력과 결탁한 ‘무늬만 기자’가 판치는 일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언론을 개혁하면, 사법‧정치개혁의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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