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KBS 홈페이지 캡처.
KBS 홈페이지 캡처.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들에게 다음 선거에서 진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해찬 의원의 ‘20년 집권론’은 권력에 대한 집착을 솔직하게 말한 것이다. 선거의 승패 문제는 현재 집권 세력으로서는 더욱 절실한 문제다. 야당에게도 권력 쟁취 욕구는 절실하지만 집권자가 권력을 잃는 충격에 비하면 약과다. 

권력을 잃는다는 건 수많은 밥그릇을 빼앗긴다는 말이며 무엇보다 살벌한 보복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여야는 권력을 빼앗겼을 때 어떤 험한 꼴을 당하는지 겪어봤다. 그래서 권력의 쟁패는 더욱 절실한 문제다. 수단 방법을 가릴 여유가 없다.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권력은 절대 놓쳐선 안 되는 게 정치판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그렇다.

권력 유지가 정권의 최대 목표.. ‘공영방송’ 어려워

그 선거에 무엇보다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기관이 공영방송이다. 위세가 과거에는 못 미치는 게 사실이나 권력에겐 여전히 중요한 기관이다. 그런 공영방송을 권력이 그냥 놔둘 리 없다. 대부분의 권력은 방송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도덕적이지 못하고 유능하지도 않다. 공영방송 독립은 권력자가 이 두 가지를 다 갖추더라도 쉽지 않은 일인데 무능하고 도덕성도 별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신문없는 정부보다 차라리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할 만큼 언론의 자유를 중시했던 토마스 제퍼슨조차 대통령이 된 뒤엔 신문을 매수했다고 한다. 매수하고픈 언론사가 ‘국민의 방송’일 경우, 권력자가 어떻게 여길지는 뻔하다. 집권자에겐 권력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지상의 과제이고, 이 문제에 방송이 큰 영향을 주는 게 분명하다면 ‘공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남겨두기 어렵다. 공영방송은 권력의 나팔수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방송의 공정성을 위한 장치는 마련돼 있으나 이것이 제대로 지켜진다고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 여권 지지층은 이전 정권에서 방송의 편파성을 경험했을 것이고, 현재 야권 지지자들은 지금 방송이 형평성을 상실했다고 느낄 것이다. 정치적 중도파들도 우리나라 공영방송이 공정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방송이고 청와대 방송이다. 

권력 눈치 보기 너무 심한 KBS

조국 장관 사태는 싫든 좋든 최대의 국민적 관심사가 되어 있다. 조 장관은 현 정부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어서 국민의 눈과 귀가 전부 여기에 쏠려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만 봐선 조국 사태가 정말 어떻게 돌아가는 알 수 없다. 필자는 얼마 전 차 안에서 KBS 라디오로 조국 뉴스를 기다리다 포기하고 말았다. 방송은 20~30분을 돼지열병 뉴스로만 이어갔다. 돼지 열병 뉴스 재난 방송의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한 두 꼭지는 먼저 내보낼 수 있으나 시급성도 없는 정보까지 돼지열병으로 채우는 건 누가 봐도 권력 눈치 보기다.

공영방송은 매일 매일을 정권 입맛에 맞는 뉴스를 짜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권이 좋아할 뉴스면 헤드라인으로 뽑아 대대적으로 반복해서 보도하고 정권이 싫어할 기사는 뉴스 후반부에 작게 쓰거나 빼버린다. ‘조국 관련 뉴스’는 현 정권의 도덕성이 걸린 문제여서 어떤 사안보다도 뉴스 가치가 크다. 어찌보면 정권이 오락가락하는 뉴스다. 그런데도 공영방송에선 “왜 이리 조국 뉴스가 많느냐”며 불평한다.

여기에 동조하는 국민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만일 조국 사건과 똑같은 사건이 박근혜 정권 아래서 벌어진 일이라도 “이런 뉴스가 왜 이리 많느냐고 불평할거냐”고 묻는다면 뭐라 답하겠는가? 공영방송이면 더더욱 차별을 두어선 안 된다. 그러나 편향성이 가장 심한 게 공영방송이다. KBS에선 조국 사건을 제대로 취재해보려고 나선 기자들에 대해 징계를 추진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놓고 권력의 방송으로 가고 있다. 

이런 ‘권력 방송’을 위해 국민들이 시청료를 내는 건 아니다. KBS 시청료는 전기요금과 함께 묶여 있어 안 내면 안 되는 벌금처럼 강제로 물고 있다. 그 방송이 권력을 위한 방송이라면 전 국민이 현 정권에 정치자금을 대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정당들은 돌아가며 방송을 장악할 수 있으므로 그런 권력 방송도 괜찮을지 모르나, 국민 입장에선 늘 손해만 보는 방송이다. 이런 방송에 시청료를 낼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공영방송은 전국민이 주인인 국민의 방송이다. 특정 정파나 계급을 대변하는 방송이 아니다. 민간방송이면 몰라도 공영방송을 자처하고 있다면 정치적 중립과 균형이 프로그램 제작의 기본이어야 한다. 과거 NHK는 공영방송의 모델이었다. “NHK는 너무 공정해서 자기 주장이 없다. 이 때문에 신뢰감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NHK도 이젠 권력의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영방송의 독립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준다.

기자들 징계 무릅쓰면서 정권의 충견 노릇

공영방송의 독립은 끊임없는 노력과 투쟁이 아니면 어렵다. KBS 기자들의 저항은 그런 노력이라고 본다. 그러나 지금 공영방송은 정권에 업혀 방송을 장악하고 기꺼이 권력의 홍위병이 되어 방송권력을 누리는 자들만 행세한다. 이들의 ‘방송 민주화를 위한 노력’은 방송국을 수중에 넣을 때까지뿐이다. 일단 방송이 장악된 뒤에는 정권과 코드를 맞추면서 정권을 다시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돕는 게 최대 과제다. 그래야 앞으로도 방송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바람만 타지 않는다면 공정성과 신뢰도에서 타의 주종을 불허할 수 있는 곳이 공영방송이다.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공영방송의 책임자라면 그런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되는데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진실을 보도하려 애쓰는 기자들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권력의 충견이 되고자 한다. 

유트브 채널 등 개인매체의 등장으로 다양한 뉴스가 쏟아지면서 가짜뉴스도 범람하고 있다. 어떤 언론 어떤 뉴스가 진짜인지 몰라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런 때 기준을 삼을 수 있는 언론이 공영방송이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아닌 어용방송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권력만 좋아하는 뉴스는 국민들은 싫어한다. KBS 뉴스 시청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MBC 시청률이 바닥을 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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