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탄허 발자취 대전 관광자원으로
[사설] 탄허 발자취 대전 관광자원으로
  • 디트뉴스
  • 승인 2019.10.0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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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呑虛)는 우리나라 근현대의 대표적 고승(高僧) 가운데 한 명이다.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는 화엄경의 한글 번역이다. 화엄경은 불교경전의 총화로 불리면서도 한글 번역본이 없었다. 분량부터 엄청나 번역은 엄두를 못 내던 것을 탄허가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으로 번역해냈다. 원고지만 6만 3000매로 한 트럭 분량이었다. 10권짜리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원고지가 1만 6000매였다 하니 짐작이 된다.

191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탄허는 유년 시절 면암 최익현의 후학 최익종에게 한문을 배운 뒤 사서삼경을 독파했다. 장자(莊子)도 천 번이나 읽어 뜻을 환하게 깨쳤다. 훗날 함석헌이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의 장자 강의를 듣고 감복했다고 한다. 자칭 국보 양주동도 그 소문을 듣고 학생 20명과 함께 장자 강의를 듣고 탄허에게 절을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탄허는 학문적 능력 못지않게 뛰어난 예언력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6.25전쟁 발발, 베트남전 미국 패망, 박정희 대통령 시해, 탄허 자신의 입적일 등을 미리 예측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예언 가운데 일본 영토의 3분의 2가 침몰하고 한국이 세계의 주역으로 나설 것이란 ‘일본 침몰설’은 아직 확인할 수 없는 예언으로 남아있다.

탄허는 평생 새벽 3시에 일어나 참선하고 불경을 번역하는 일을 철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가 즐겨썼던 휘호는 ‘천하에 두 가지 도(道)가 없다’는 말이었다. 진리가 둘일 수 없는데 왜 서로 싸우느냐는 의미가 담겼다. 요즘 둘로 쪼개진 우리나라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탄허와 우암 스토리’, 지역 관광자원으로 개발 필요

계룡산 자락 유성구 학하동에 위치한 자광사(慈光寺)가 탄허가 세운 사찰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절은 탄허가 1969년 세웠다. 자광사는 10월8일 창건 50년만에 처음 개산재(開山齋)를 지낸다. 탄허는 수도원을 지어 교육에 힘쓰고자 했다. 그는 누구든 배우기를 원하면 승속을 가리지 않고 제자로 받아주었다고 한다. 자광사 터가 우암 송시열이 후학 양성을 위해 서당으로 쓰던 곳이란 사실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탄허와 우암 모두 이 곳을 ‘교육의 길지’으로 보았다고 한다. 카이스트와 충남대의 유성 입지를 이와 연관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자광사에는 탄허의 유적과 유품이 남아 있다. 탄허는 전국에 흩어져 있던 자신의 소지품과 장경을 자광사로 가져와 불경 번역에 몰두했다. 탄허는 1969년 자광사를 건축한 이후 1983년 입적 때까지 주로 이곳에서 거처했다고 한다. 탄허가 쓰던 방은 지금은 탄허의 상좌 혜륜 스님이 쓰고 있고 탄허가 썼던 책상과 육필 원고도 그대로 남아 있다. 

대전시는 탄허가 대전에 남긴 발자취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했으면 한다. 눈으로 보이는 것 못지 않게 ‘스토리’ 자체가 관광 자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탄허가 유성을 교육의 길지로 여긴 이유가 무엇인지, 그곳이 하필 우암이 후학을 양성하는 서당으로 쓰던 장소였던 까닭은 뭔지 등은 흥미를 자아내는 스토리가 될 만하다. 이런 것을 관광자원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오대산 월정사와 탄생지 김제 등 그의 자취는 여러 군데 남아 있으나 그게 방해 요소는 못 된다. 대전은 대전에 남겨진 ‘탄허의 유성 스토리’를 찾아 홍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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