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대전효문화뿌리축제 발전을 위한 제언 ⓶

대전효문화뿌리축제가 열린 뿌리공원 전경. 자료사진.
대전효문화뿌리축제가 열린 뿌리공원 전경. 자료사진.

‘페이스북’이 세계를 제패하기 한참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싸이월드’가 이미 만들어져 국내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싸이월드는 안타깝게도 사라졌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시작부터 글로벌을 지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당초 세계로 뻗어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두려워했다. 오직 우리나라의 작은 시장 안에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속 유지는 고사하고 사망했다. 생존 및 발전을 위한 시대적 명령은 바로 ‘국제화’라는 뼈저린 교훈을 주는 사례다. 

이와 달리 부산국제영화제는 처음부터 세계를 바라보고 시작했다. 애초에 부산의 한 호텔에서 고객서비스의 일환으로 기획한 조그만 행사였으나, 23년 전인 1996년 시작부터 민간 주도에 맡겼다. 전문가들을 동원한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 국제화에 성공했다. 덩달아 관광산업까지 국제적 수준으로 올라갔다.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었다. 

영국의 에딘버러 페스티벌은 제2차 대전 직후 지역 주민을 결집시키고 희망을 살리겠다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로 시작되었다. 세계적 명성은, 공식 초청을 받지 못한 공연팀들이 뜻밖에도 자신들을 알리고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얻게 되었다. 소위 프린지(fringe, 주변) 페스티벌이다. 판매되는 티켓 수만도 200만장에 육박할 정도로 세계 최대의 공연 축제로 성장하였다. 

일본의 삿포로 눈 축제에 매년 2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시작은 미미했다. 1950년 삿포로의 중 · 고등학생들이 오도리 공원에 눈 조각 작품 여섯 개를 설치하고 눈싸움, 전시회, 카니발을 열었다. 이 소박한 학생 행사에서 시작한 축제가 오늘날 세계적 겨울 축제로 발전한 것이다. 이 축제는 이제 지구촌 최대 축제인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과 600만 명이 찾아오는 독일의 옥토버페스트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손꼽힌다. 

세계적 축제들이 모두 그렇게 조그맣게 시작했다. 대전 중구의 뿌리축제도 가능하다. ‘효자’를 원한다면 키워야 한다. 물론 지난한 시간이 걸린다. 10년, 30년 후를 내다보며 국제적 축제로 키우려면 이제 발전 방향과 운영방식에 혁신을 도모할 때다. 출발점은 버려야 할 것(대부분 과거 성공 요소)을 버리는 과감한 결단이다.

축제, 민간 주도 필요한 이유

남충희 바른미래당 중구위원장.
남충희 바른미래당 중구위원장.

무엇보다 먼저 현재 자문 성격의 추진위원회를 민간 주도의 명실상부한 조직위원회 및 집행위원회로 발전시켜야 한다. 민간의 무한한 창의력과 국제적 안목을 지금부터 동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역 정치인이나 지자체장은 지역주민만 잔뜩 모이는 행사를 당연히 선호할 것이다. 정치와 행정이 원하는 개념을 이제 벗어나야 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러한 민간 주도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조직위원장인 부산시장은 ‘개막을 선언합니다’ 라는 단 한마디가 역할의 전부다. 대통령 후보가 참석해도 소개하지 않는다. 국제적 행사라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와 행정은 지원하되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기본 원칙 정립이 발전의 출발선이다. 

행정이 주도하고 추진을 공무원 근로 동원에 의존하는 행사는 이제 지양해야 할 때가 되었다. 시대 흐름에 따라 가치관은 마땅히 변한다. 젊은 세대는 다르다. 공무원이더라도 부당함을 결코 인내하지 않는다. 당연히 저항한다. 민간주도 및 자원봉사 위주로 변해야 한다. 행정은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평가 시스템을 운용하면 된다. 국제적 행사는 모두 그렇게 한다. 이제 중구청장이 과감히 손을 놓아야 할 때다. 

축제의 주제 및 프로그램 재정립 필요

우리는 조선시대에 들어서 유교문화의 세례를 받았다. ‘효문화’가 대표적이다. 효문화는 우리가 공유한 ‘조상 섬김’의 가치관 및 행동양식을 말한다. ‘뿌리문화’는 조상이 남겨준 고유문화를 의미한다. 정확히 따져 보자. ‘테레비 및 전자제품’이라고 말하면 어색하다. 테레비는 전자제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효문화뿌리축제’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효문화’는 ‘뿌리문화’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뿌리축제’라는 단순한 제목과 주제가 더 낫지 않을까? 조상이 남겨준 전통문화의 자부심을 확인하며 다음 세대에 계승하는 행사임을 명쾌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제 주제의 재정립은 해결해야 할 큰 숙제다. 명료하고 확장 가능한 주제가 필요하다. 이는 아래와 같이 좀 더 이야기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효? 조상? 전통문화? 아니면 통기타 콘서트와 걸그룹 커버 댄스?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분장한 피에로를 동원하고, 댄스 및 록밴드 페스티벌, 영&시니어 패션쇼, 걸그룹 커버 댄스, 통기타 콘서트 등도 준비하였고, 7080콘서트, 트로트 공연까지 다양성도 마련하였다. 성공할까? 이런 백화점 나열식의 프로그램 기획은 실패의 첩경이다. 축제의 생명인 주제의 일관성 및 차별성을 크게 희석시키기 때문이다. 

만약 ‘진주소싸움축제’에서 다양성을 꾀한다고 닭싸움, 개싸움 등도 벌리면 어찌 될까? 전자제품 전문 매장이 망하는 지름길은 의류나 야채도 함께 파는 무분별한 이미지 희석 행태다. 축제 주제와 프로그램의 일관성 확보가 발전 방향 중 하나다. 

효문화 교육 및 전파? 

대전은 효문화 전통이 뛰어난 선비의 고장이었다. 한남대의 한기범 교수에 의하면 스토리가 많다. 미음죽만 먹으며 여묘살이(부모 사망 후 무덤 근처의 초막에 기거하며 무덤 지키는 일)를 계속하다가 상중에 35세로 죽은 민환의 헌신적인 효행, 여성으로서 3년 여묘살이를 해낸 성씨부인의 효행, 돌아가신 부모의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여 평생 요를 깔지 않고 잠잤다는 송시열의 효행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런 미담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과연 통할까? 물론 현 5060 기성세대도 여묘살이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효자’ 소리를 듣지는 않았다. 세대를 거치며 가치관은 당연히 변한다. 시집살이라는 개념은 이미 없어졌다. 결혼하자마자 따로 산다. 손주도 잘 낳아주지 않는다. 연로하신 부모를 24시간 보호사가 상주하는 요양원에 모신다. 매장 대신 화장한다. 모두 유교문화에 어긋나는 행동들이다. 과연 ‘불효’일까? 

효문화의 가치 폄하가 아니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다음 세대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집안에서 교육한다면 몰라도, 며칠간 축제에서 가치관을 ‘교육’할 수는 없다. 뭔가를 가르치려는, 가치관을 전달하려는 ‘교육적’ 의도, 즉 요즘 사람들 표현대로 ‘꼰대’ 의도를 표방하는 축제나 엔터테인먼트 시설은 필히 망한다. ‘교육받겠다’라고 작심하고 찾아오는 관광객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축제 참가자들은 즐거움, 삶의 일탈, 색다른 체험, 호기심 만족 등을 원한다. 오직 독특하고 재미있는 볼거리, 먹거리, 살 거리, 즐길 거리 그리고 손쉬운 접근성이 축제 방문객 유인 요인이다. 효문화 축제? 가치관이 급변하는 이 시대에 달성 불가능한 목적을 내건 듯하다. 당위론을 벗어나야 한다. ‘효’라는 축제 주제에 대한 고객의 현실적 호응성, 즉 축제의 지속 및 발전 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때다.

효문화뿌리축제 부대 행사인 문중 퍼레이드 모습. 자료사진.
효문화뿌리축제 부대 행사인 문중 퍼레이드 모습. 자료사진.

유교문화의 조상 숭배?

과거와 달리 이 시대에는 조상 숭배 사상이 희박해졌다. 현실이다. 기독교인이 전인구의 약 25%를 차지한다. 제사를 추도 예배로 대체한 기독교인도 많다. 조상의 묘소를 잘 써야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인식도 대단히 희석되었다. ‘조상’을 주제로 내건 축제가 10년, 30년, 100년 지속 가능할까? 차라리 ‘뿌리’ 즉 ‘전통문화’를 내건 축제가 지속 및 발전 가능성 그리고 국제화 도모 측면에서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사고의 확대는 발전을 이끈다. 어떤 물류회사가 자신들의 소명을 ‘항구와 항구를 연결하는 기업’이라고 잡았다. 결국 해운회사로 그치고 말았다. 반면 ‘전 세계의 물류를 이어주는 기업’이라고 잡은 회사는 해운사업뿐만 아니라 지상의 물류창고 운영 및 트럭 운송사업을 영위하는 종합적인 회사로 발전하였다. 축제 주제는 차별적이면서도 범주를 크게 잡아야 한다. 연필 축제보다는 필기구 축제가, 필기구 축제보다는 문구류 축제가 발전 가능성이 더 높다. ‘효’ 또는 ‘조상’보다는 ‘뿌리,’ 즉 전통문화로 주제를 잡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으로 주제의 확장

대전을 넘어 ‘한국의 전통문화’로 축제의 판을 발전시킬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 그러한 축제는 없다. 물론 전통문화는 보존할 것은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전통을 냉동고 얼음 속에 넣어 그저 보관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는 계승 발전이라는 우리의 의무 방기다. 축제에 2030세대를 끌어들여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또한 국제화를 위해서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방탄소년단’이 노래한 ‘아이돌’이라는 작품은 신명 나는 국악 느낌을 살렸다. 전 세계에서 무려 5억 5000 조회를 기록한 ‘아이돌’ 뮤직 비디오에는 ‘덩기덕 쿵더러러’ 같은 전통적 추임새까지 나온다. 탈춤 및 부채춤이 어우러진다. 한국말로 부른 이 노래가 타이틀로 실린 앨범이 놀랍게도 2018년 미국 빌보드 200차트에서 1위를 달성했다. 계승 발전시킨 우리 전통문화에 세계적 호응이 따라옴을 입증한 것이다.

전통문화 보존 차원에서 판소리 경연대회 등도 훌륭하다. 더 나아가 전통문화를 현대적 기법으로 승화 발전시킨 노래와 춤 경연대회도 훌륭할 것이다. 경쟁은 적극적인 참여를 촉발한다. 바둑이나 장기 대회 역시 인공지능 대결로 발전시킨다면 청년들의 참여 욕구를 충족시킬 소지가 크다. 

효문화뿌리축제 공연 모습. 자료사진.

지난 70년대 말에 만들어진 사물놀이는 전통 음악을 발전시킨 것이다. 더 발전할 수 없을까? 전국 학교에 사물놀이 동우회가 많다. 경진대회는 어떨까? 통기타 공연보다는 축제의 주제에 더욱 들어맞는다. 60년대부터 시작된 마당극 역시 전통 공연을 발전시킨 형태다. ‘사회비판적 내용’을 열린 마당에서 관중과 소통하며 신명을 유발한다. 이번 뿌리축제에 ‘효심 마당극’이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아니, ‘효심’을 ‘비판’하자는 의도인가? 그렇지 않으니 마당극 본질의 훼손이다. 퇴보다. 차라리 현 국내외 정치 및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 비판, 해학이 넘치는 ‘마당극 경진대회’가 관객의 참여와 호응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관람객에게 공급하는 음식 역시 발전해야 한다. 중구 자생단체들의 수고로 만드는 파전 등 간편식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중구와 대전을 넘어서야 발전한다. 전국 대학의 조리학과 학생들의 한식 경연대회는 불가능할까? 드라마 대장금에서 본 한식 고수들의 경진대회는 어떨까? 작게라도 시작할 만하지 않은가? 

맺음말 : 숙고의 시기

뿌리축제는 유아기를 넘어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이제 커진 몸에 작은 옷이 맞지 않게 되었다. 바람직한 청장년기를 맞이하려면 필히 치열한 인생관 고민이 긴요하다. 뿌리축제는 ‘효자’가 될 잠재력을 분명 갖췄다. 이제 키워야 할 때다. 국내 최고를 지향하기 위해서라도 ‘국제화’라는 삶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침착히 따져 봐야 할 시점이다. ‘그냥 놔둬! 이렇게 살다 죽게.’ 그러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생이다. 뿌리축제도 그렇다.

뿌리축제 개최의 목적은 무엇인가? 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창출할 수 있는가? 어떤 고객이 끌어와야 하나? 기획 및 추진을 위한 상설 민간 주도 조직은 효율적으로 만들어졌는가? 전문성과 창의력이 확보되었나? 축제의 주제는 차별적이고 명쾌한가? 주제와 행사 내용은 정확히 일치하는가? 그리고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평가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는가? 곰곰이 따져 볼 문제가 많다. 사춘기가 원래 그런 시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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