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억울하다고요? 그것은 당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박경은의 힐링에세이] 억울하다고요? 그것은 당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 박길수 기자
  • 승인 2019.09.26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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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억울함’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이 진짜 억울함일까요? 그 안의 솔직한 마음은 무엇일까요? 그 억울함이 누구에 대한 분노일까요? 정말 보고 싶은 것은 억울한 감정이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기대가 좌절되는 것과 욕망대로 되지 않음에서 오는 억울함이었습니다. 진짜 억울하냐고 자신에게 묻고 답해야 합니다. 억울함의 의미가 자신에게 어떤 뜻을 지녔을까요? 사람마다 그 언어가 의미하는 것은 다르게 저장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치’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빨간 김치’를 떠올리게 되고, 어떤 사람은 ‘물김치’를 떠올리게 됩니다. 자신이 어떻게 경험했느냐에 따라 그 언어가 가지는 뜻은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억울하다’는 의미는 자기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누명을 씌운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는 채 무방비 상태에서 통보를 하거나 퇴출시켰을 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전혀 다르게 여자에게 차이는 것보다 내가 먼저 차지 못해서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처럼 자신 안의 잘못된 승부욕을 억울함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각자가 느끼는 그 뜻의 의미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당한 경우에도 참아야 하는 심리구조에서 성장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5살 때 어머니는 집을 나가셨고, 아버지는 규율에 엄격한 공무원이셨습니다. 연상의 여자들만 만났지만 매번 헤어졌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까지 참을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듯이 잘못된 사고와 생활양식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들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아버지의 엄격한 가정교육 안에서 돌봄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 때문에 연상의 여자를 만나긴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충분히 억울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장의 애인인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욕망이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않는 그 순간부터 일들은 꼬이기 시작하면서 부정적인 정서가 더 높게 표출되어 행동으로까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 여자에게 잘 해 주지 못한 미안함이라고 말합니다. 억울함이 또 미안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요? 자신이 이용당했다면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헤어진 사람입니다. 또한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상실감을 타인의 책임으로 전가해서도 안 됩니다. 정말 미안하다면 그냥 그 시간을 자신과의 싸움에서 견뎌주는 것입니다. 견뎌준다는 의미가 어렵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도록 놔두는 것입니다. 마치 계곡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어떤 외부의 자극으로도 막지 않는 상태와 같은 것입니다. 미안하다는 말에는 다시 만나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 사실 욕구를 넘어선 욕심에 가깝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미안함이고 억울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억울하다’ 라고 말할 때 그 억울함은 누구에 대한 억울함일까요? 자신일까요? 타인일까요? 억울함의 주체를 명백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또한 그 억울함을 누구에게 풀고 있습니까? 혹시 그 대상이 가장 가까운 가족이지는 않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어릴 때 사랑받지 못한 5살이 아닌, 지금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른이라고 하기엔 우리는 성숙된 성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대꾸도 못하고 하고 싶은 말도 참으며 아버지 눈치를 보는 5살의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의 의사표현을 정확히 할 수 있는 어른입니다.

억울함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매 순간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른 결과가 억울함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선택을 했을 때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설령 책임을 지기 위해서 외롭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려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여한(餘恨)이 없습니다. 과거에 얽매이다 보면 현재를 살지 못하고 현재를 잘 살지 못하면 미래는 현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중에서 어디 곳에 살기를 원하십니까? 매 순간 자신에게 ‘어떤 것을 선택할거니?’라고 물어보는 습관이 많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에게 이제는 말해줘야 합니다. “너는 이젠 그 때 두렵고 돌봄을 받지 못하고 늘 베풀고 참아야만 했던 5살 아이가 아니란다. 이제는 너무 힘들면 베풀지 않아도 되고 참지 않아도 돼. 지금부터는 내가 너의 엄마가 되어줄게. 두려워 하지마, 외로워하지도 마, 너가 너의 곁에 항상 있어줄게.” 자신을 스스로 토닥토닥해주며 안아주는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마주하기’가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진실’이 뭔지도 모를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어린 아이가 아프다는 거’ 그리고 그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그대로 아픈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정하고 안아주셔야 합니다. 이 또한 자신의 선택임을 잊으시면 또 다른 억울함의 형태도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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