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망국적 국가 분열 부추기는 진영감정

충청도 당 자민련이 50석을 거머쥔 때가 있었다. 96년 총선이었다. 3김 지역구도에다 ‘충청도 핫바지론’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요즘엔 ‘충청도 핫바지’란 말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지역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말은 조심하는 편이다.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했다가는 지탄을 피할 수 없다. 

지역감정이 본래 나쁜 의미는 아니다. 이 말은 애향심과 동전의 양면이다. 자기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스런 감정이다. 정부가 충청도에 예산을 다른 지역보다 적게 배정하고 장관 인사 때 충청도 출신이 한 명도 없다면 서운한 건 인지상정이다. 영남이나 호남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런 애향심을 이용만 하려들면 ‘지역감정’에 빠지고 만다.

지역감정 조장이 국가적 해악이 되는 이유

‘지역주의’ ‘지역패권’ 등도 지역감정과 이웃해 있는 말이다. 일면 긍정적인 뜻도 없지 않으나 지역 대결과 분열을 부추기는 용어다. 이런 말들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면 지역을 ‘1등 지역’과 ‘2등 지역’으로 구분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결국엔 국가 분열과 국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감정 조장은 국가적 해악으로 간주된다.

지역감정 조장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지역감정은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업적이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실적도 비전도 없는 무능한 정당·정치인이 지역감정에 불을 지르는 말 한 마디로 당선되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많은 국민들은 이제 그런 정치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지역감정 조장 발언은 여지없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지역감정 자제’가 무슨 소용인가 싶은 현상들이 심해졌다. 진보와 보수, 여와 야로 쪼개진 정치판은 ‘진영 논리’ ‘진영 감정’에 매몰돼 있다. 그 심각성은 지역감정은 저리 가라 수준이다. 정파마다 서로 다른 이념과 목표를 갖고 경쟁하는 게 정치라지만, 동쪽을 서쪽이라고 말해선 안 되며 누가 봐도 말(馬)인데 사슴이라고 우길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판에서 그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검증 대상이 콩을 좋아하는 말이라는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도 한편에선 ‘(말이라는 뉴스의) 95%는 가짜인데 왜 5% 사실만 가지고 따지냐’며 성질을 낸다. 인사청문회는 지록위마의 감별장이 된 지 오래다. 검증 대상이 말로 드러나더라도 사슴 상표를 붙여 주는 행사로 전락했다. 말의 주인도 TV중계를 통해 이런 억지를 알 텐데도 “의혹만으로는 거부하면 나쁜 선례가 된다”며 통과 낙점을 찍는다.

‘진영 감정’으로 두 쪽 난 나라

과거에도 이런 식의 엉터리 인물 감정(鑑定)이 적지 않았으나 지금 대통령에 와서 정도가 훨씬 심해졌다. 더 심각한 건 이런 현상이 일반 국민들까지 영향을 주면서 나라가 두 쪽 나 있다는 점이다. 조국 장관 임명의 적절성에 대한 여론은 찬성과 반대가 대략 반반이거나 4대 5 정도로 나온다. 이게 조 장관에 대한 국민들의 진심이라고 보긴 어렵다.

찬성 입장을 보인 사람들 중엔, 만약 조 장관과 똑같은 인물이 이전 정권에서 장관 후보자로 나왔다면 결사반대 했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고, 반대 입장을 보인 사람 중에도 전 정권의 인사였다면 찬성으로 돌아설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영적 반대’는 늘 있어 왔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지면서 상호 적대감의 수위가 크게 높아져 있다는 게 문제다.

그제 본 한 인터넷 기사에는 “〇〇(상대 정파)가 일본놈보다 더 밉다. 100배는 더 증오한다”는 댓글이 달려 있다. 유사한 글들을 종종 본다. 어느 한쪽만의 반응은 아니다. 쌍방이 서로를 대하는 증오의 감정이다. 이런 상황에선 무엇이 옳고 그른지보다 오직 내편이 이기는 게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사실을 부정하고 거짓을 믿고 싶다. 장관 후보자의 자질이 어떠하든 우리 편이니까 감싸고 상대편이니까 더 가혹하게 대한다. 과거엔 정치인들 중심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났으나 지금은 일반 국민들까지 진영 싸움에 휩쓸리고 있다.

지역감정이 너무 심해, ‘싫어하는 내국인 집단에 대한 선호도’가 ‘좋아하는 국가(외국)에 대한 선호도’보다 낮다면, 정부는 국민통합 노력을 하든가 지역을 분리 독립시키는 게 낫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이 있었다.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지역감정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뜻이었다. ‘진영 감정’ 문제를 여기에 대입해본다면 지금의 분열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오죽하면 방송에서 명절 때 ‘조국을 화제에 올리지 말라’는 말까지 하겠는가? 절반은 농이라고 쳐도 웃어넘길 말이 아니다.

우리는 안으로도 밖으로도 힘든 상황이다. ‘내우외환’ 사자성어 그대로가 우리의 현실이 돼 있다. 경제도 외교도 어려운 처지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나라가 둘로 쪼개져 있는 점이다. 국가든 집안이든 진짜 위기는 바깥보다 안에서 생기고 내분에서 시작된다. 나라가 쪼개지고 국민들이 갈라져 있으면 경제든 외교든 백약이 무효다. 그래서 고금을 막론하고 일국의 지도자라면 국민들의 단합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대통령도 국민통합 중책 버리고 진영논리 빠져

“군대에 반드시 장수가 있는 것은 군대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고, 나라에 반드시 군주가 있는 것은 나라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다.”『여씨춘추 집일(執一)』 경제는 경제부총리에게 맡기면 되고 국방은 국방장관에게 맡겨도 되며 더 중요한 업무조차 총리에게 맡길 수 있다. 하지만 국민통합만은 오직 대통령의 몫이고 책임이다. 국민통합은 누구도 대통령을 대신해서 할 수 없는 일이면서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책무다. 

국민들과 각 정파(政派)는 저마다의 이익이나 명분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경쟁하는 게 마땅하다. 그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조화시키는 게 대통령 책임이다. 현대 정치에서 대통령은 특정 정파의 소속이면서 표를 통해 권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국민통합 역할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는 건 사실이나,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포기하고 무조건 중립에 서야 하는 건 아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목표와 국민통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염두에 두면서 나아가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국민 통합을 포기해선 안 된다. 나라를 쪼개놓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역감정보다 더 과감하고 뻔뻔한 진영감정

우리는 지금 너무 갈라져 있다. 최저임금 문제 4대강보 철거 등 사사건건 얼굴을 붉힌다. 건전한 대결과 경쟁이 아니라 악다구니고 적대감이다. 조국장관 임명 과정에서 가장 심각하게 드러난 건 조 장관의 자질 문제보다 대한민국의 망국적 분열상이다. 특히 중심을 잡아야 할 대통령까지 진영 논리, 진영 감정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걱정 때문이라고 해도 진영 논리일 뿐이다. 그런 결정이 권력 유지에 잠깐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누가 봐도 말인데 사슴이라고 해서 국민 전체를 통합시킬 수는 없다.

지역감정은 진영감정에 비하면 도리어 순박한 점이 있다. 진영 감정은 욕심의 차원이 다르다. 지역감정은 내 고향이 소외돼선 안 된다는 데서 출발하고, 진영감정은 국가 권력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진영감정이 더 과감하고 뻔뻔하고 살벌하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에겐 뭇매를 가하면서도 논리도 상식도 벗어난, 단순한 ‘진영감정’에 호소하는 말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에겐 엄지척을 하며 환호한다. 이런 논리라면 자민련에게 50석을 안겨준 ‘핫바지’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고, 지금 지역감정 발언을 해도 문제삼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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