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면회 녹취와 녹음파일 원본, 항소심에서 증거채택
항소심 재판부, "정치계 영향력 가진 사람으로 금품 요구 및 수수"

전문학 전 대전시의원이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돼 형량이 징역 1년에서 징역 1년 6월로 늘어났다. 사진은 전씨가 지난해 11월 5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는 모습.
전문학 전 대전시의원이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돼 형량이 징역 1년에서 징역 1년 6월로 늘어났다. 사진은 전씨가 지난해 11월 5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는 모습.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불법선거자금 요구 사건과 관련해 구속 기소된 전문학씨(49, 전 대전시의원)가 항소심에서 형량이 늘어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관위 조사부터 검찰 수사, 그리고 법정에 이르기까지 줄곧 혐의를 전면 부인해 왔던 그인 관계로 항소심에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부분까지 유죄로 뒤바뀌면서 당사자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그렇다면 항소심 재판부(대전고법 제3형사부)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전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한 근거는 뭘까.

대략 2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하나는 구치소에 있을 당시 전 전 의원이 면회온 가족들과 나눈 대화다. 실제 전씨는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된 지난해 11월 5일 오전 9시 12분께 구치소로 면회 온 부인과 동생을 만난다. 사흘전인 같은 달 2일 긴급체포해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전씨는 영장심사를 앞두고 부인에게 속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는 가족들을 향해 "내가 진술을 좀 바꿀게 하나 있어. 방 서구의원한테 돈을 달라고 해서 변씨가 차리는 거 도와주려고 했거든. 그걸 얘기해야될 것 같아"라며 "방 서구의원한테 선거자금을 달라고 한거지. 그걸 변씨가 알고 있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조사받을 때는 부인했는데...5000만원 받아서 변씨 주려고 했었어. 나는 방 서구의원한테 5000만원 달라고 한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이라며 "근데 2000만원 받아놨더라고. 내가 캠프 나오면서 다 돌려주라고 했는데 그걸 지금까지 챙기고 있었더라고"라는 취지로 얘기를 나눴다. 

이같은 대화 내용은 면회 장면을 지켜보던 교도관들이 녹취해 검찰에 제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현행 규정에는 수형자와 면회객이 주고받는 대화는 의무적으로 녹취되며 녹취된 대화내용은 검찰에 제출돼 법원 공판 과정에서 증거로 사용된다. 검찰은 1심 마지막 공판에서 이 대화 내용을 재판부에 전달하면서 유죄를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변호인들은 전씨가 구속되면서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잘못 얘기했다는 취지로 변론했지만, 재판부는 전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 증거로 인정했다.

또 하나는 전씨의 지시를 받아 김소연 대전시의원과 방차석 서구의원에게 불법자금을 요구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아 온 전직 국회의원 변재형씨가 제출한 녹취파일 원본이다. 검찰은 지난해 변씨에 대한 수사 당시 변씨의 자택과 차량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 결과 변씨 컴퓨터에서 변씨와 전씨의 대화가 녹음된 파일을 압수하고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전씨 측 변호인은 해당 녹취서가 가공 등 편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증거 채택을 거부했고 이에 따라 재판부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 첫날 변씨가 직접 갖고 있던 녹취파일 원본이 담긴 녹음기를 재판부에 제출할 뜻을 밝히면서 변수가 생겼다. 녹음 파일은 변씨와 전씨가 구속되기 전 서로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총 3개의 파일이다. 검찰 압수수색 당시 녹음기를 숨겼던 변씨는 항소심 재판이 시작된 이후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외부기관에 포렌식 감정을 의뢰하면서 증거로서 제출할 뜻을 내비쳤다.

결국 검찰은 감정결과를 토대로 재판부에 증거 채택을 요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수용해 일부 녹취서가 증거로 채택됐다. 변씨가 1심에서는 제출하지 않다가 항소심 법정에 증거로 채택해 달라고 내놓은 이유는 전씨와 관련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김 시의원에 대한 금품요구 혐의를 입증시키기 위함으로 풀이됐다. 전씨 입장에서는 다소나마 불리한 내용이 녹음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변씨의 노림수는 통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녹음파일 등을 근거로 전씨의 공소사실 모두를 유죄로 인정했다. 1심에서 무죄로 판단했던 김 시의원에 대한 금품요구 공모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변씨가 전씨와의 대화를 녹음해 제출한 여러 건의 녹취서에는 변씨가 범행을 자백하겠다고 하면 전씨가 이를 만류하면서 범행을 부인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취지로 설득하는 내용"이라며 "변씨는 전씨가 형사책임에서 빠져나가고 변씨 단독범행으로 사건을 몰아간다고 느끼고 배신감에 자백을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전씨는 이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에는 대전교도소에서 배우자 등 가족들과 접견하면서 '방 서구의원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아 이를 변씨에게 주려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면서 "전씨는 전직 서구의원이자 대전시의원으로서 지역 정치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후보자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고 실제로 금품을 수수했다"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자신의 일을 돕는 변씨로 하여금 금품을 받도록 지시했으며,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에는 관련자들을 회유하거나 증거를 인멸함으로써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며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고 공판 과정에서 아무런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한 뒤 징역 1년을 선고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지난달 25일 진행된 항소심 결심공판 당시 "한사람이라도 억울함이 없도록 면밀히 사건 기록을 검토하겠다"며 재판을 마쳤던 재판장은 본인의 말대로 사건을 철저히 분석해서인지 1심 당시 28쪽에 불과하던 판결문이 43장으로 늘어났을 정도로 유무죄를 자세하게 가렸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던 10여분 동안 전씨의 표정은 담담함에서 침통함까지 읽혀졌고, 항소심 판결로 인해 상당기간 수감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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