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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128]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 정승열
  • 승인 2019.08.1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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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열 법무사
정승열 법무사

터키여행 여드레째. 조반 후 보로포루스 해협을 한 시간 가량 크루즈한 뒤 돌마바흐체 궁(Dolmabahce Palace)을 찾아갔다. 돌마바흐체 궁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술탄 압둘메지트 1세(Abdülmecit I: 1839∼1861)가 1843년 보스포루스 해협의 유럽 쪽 해안을 메우고 새로 지은 궁전이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 말기의 화려함과 사치의 극치를 보여준 궁전 돌마바흐체란 “정원으로 가득 찬 궁”이란 뜻이라고 한다. 궁은 압둘 메지트가 왕자 시절에 파리에서 유학하면서 충격을 받은 베르사유 궁을 모방하여 술탄에 즉위하자마자 지은 서구식 건물이다. 압둘메지트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설계했던 발리안에게 의뢰하여 착공한지 13년만인 1856년 궁을 준공했는데, 당시 궁핍하게 살았던 백성들의 생활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의 궁전 내부를 장식하는데 무려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을 사용한 초호화 궁전이었다.

1. 크루즈 선에서 본 궁 전경
1. 크루즈 선에서 본 궁 전경

 사실 돌마바흐체 궁은 술탄 압둘 메지트의 어머니가 술탄을 위하여 국력이 급격히 악화되어가는 상황에서도 현실을 외면한 건축으로서 현존하는 궁전 중 가장 화려한 궁전이라는 평을 듣고 있지만, 궁전을 지으면서 쏟아부은 국가재정이 크게 악화되어 결국 '오스만 제국'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876년 압둘 하미드 2세가 첫 번째 터키의회를 이곳에서 열고 오스만 제국의 후기 6명의 술탄이 사용했지만, 1923년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고 성립된 터키공화국의 대통령 궁이 되었다가 수도를 앙카라로 이전한 이후에는 박물관으로 고쳐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돌마바흐체 궁은 남자들의 구역인 실라물리크(Selamlik), 술탄의 가족과 여인들이 거주하는 하렘(Harem), 각종 연회와 행사가 치러지는 황제의 방(Hall) 등 세 부분으로 크게 나뉘는데,  이것은 우리의 경복궁의 근정전, 내전, 경회루와 비슷하고 창덕궁과 별도로 후원을 둔 것과 비슷하다.

2. 돌마바흐체 궁 입구 시계탑(9시5분)
2. 돌마바흐체 궁 입구 시계탑(9시5분)

2-1. 궁 정문
2-1. 궁 정문

2-2. 정원
2-2. 정원

 

 돌마바흐체 궁의 입장료는 궁전은 30터키리라, 하렘은 20 터키리라이지만, 두 곳 모두 관람할 경우에는 40터키리라(한화 약8천원)이다. 궁은 아시아 국가의 궁궐처럼 3개의 대리석으로 세운 대문을 통과하도록 설계된 것은 톱카프 궁전과 비슷한데, 분수가 한 가운데에 있는 연못과 화단을 지나면 대리석으로 지은 서양식 대리석 건물 돌마바흐체 궁이 있다.

궁의 정문은 마치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하게 하는데, 궁전의 오른쪽 담장은 격자형 철제 담장이어서 담장 너머의 보스포루스 해협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에도 철제 출입문이 있는데, 프랑스 여왕 유게니,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조세프, 독일황제 빌헬름 2세, 영국왕자 에드워드 8세, 페르시아 황제 레자 팔레비(Reza Pahlavi), 아프리카 왕 에마 눌라, 이라크의 왕 파이잘 등 외국 임금이나 사신들은 당시 주요 교통로인 지중해를 통해서 이 문으로 입국했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의 내부는 박물관 소속 가이드가 터키어와 영어로 안내하기 때문에 입구에서 터키어와 영어 가이드에 따라서 입장하면 된다. 별도로 가이드 비를 지불할 필요는 없지만, 1일 입장객을 4000명으로 제한하고 있어서 폐장시간보다 일찍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3. 보스포루스 해에서 궁 출입문
3. 보스포루스 해에서 궁 출입문

 궁궐은 공식적인 집무실과 그 뒤에 내전(內殿)이라고 할 수 있는 침실 등이 있는 등 3층의 대칭구조이며, 궁전의 복도나 계단은 모두 카펫이 깔려 있어서 관람객은 신발에 비닐봉지를 덧씌워서 신고 다녀야 한다. 궁은 15,000㎡의 면적에 방 285개, 연회장 43개, 터키식 욕탕 6개에 화병 280개, 시계 156개, 크리스털 촛대 58개와 샹들리에 36개가 찬란하게 호화로움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접견실인 황제의 방은 가로× 세로 각 40m이고, 중앙 돔의 높이가 36m라고 하며, 56개의 기둥과 750개의 전등과 함께 방 한가운데에는 4.5톤의 샹들리에로 장식되어 있다. 이 거대한 샹들리에는 영국 에리자벳 여왕이 선물한 것으로서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의 샹들리에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궁의 계단 손잡이 받침대는 지금도 세계 최고라고 하는 베네치아제 크리스털로 된 계단의 방 등 볼거리가 다양하며, 인테리어와 장식은 모두 유럽에서 가져오고, 유럽의 명화로 장식되어 있다. 또,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수많은 헌상한 물건과 호화롭게 꾸며진 사방의 벽들을 보면 당시 오스만 제국의 위상과 술탄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대접견실 바닥에 양쪽으로 깔아놓은 곰 2마리의 가죽은 러시아 니콜라이 2세가 기증한 것이라고 하는데, 세련되지 못한 이런 발상은 오스만 제국의 아시아적 인식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밖에 큼지막한 청화백자 2점은 중국 명에서, 피아노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가 각각 기증한 것이라고 하며, 58개의 크리스털 촛대, 560점 이상의 그림, 손으로 직접 짠 대형 카펫 등이 전시되어 있지만, 퇴색한 색깔만큼 흘러간 오스만 제국의 영화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3-1. 돌마바흐체 궁 입구
3-1. 돌마바흐체 궁 입구

3-2. 황제 접견실 호랑이 가죽
3-2. 황제 접견실 호랑이 가죽

3-3. 접견실 천장 장식
3-3. 접견실 천장 장식

 

 홀의 위층에는 오케스트라와 외국사절들이 자리하고, 아래층 한가운데에 술탄이 앉고 그 맞은편에는 신하들과 남성들이 자리했다. 여성들은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고 술탄의 맞은편 창문으로 홀을 구경하여 술탄을 마주하고 앉은 남성들의 뒤에서 바라보게 되어서 남자와 여자들은 서로 마주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은 터키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대통령 궁이 되었는데, 1938년 11월 10일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집무하다가 죽었다. 이후 터키인들은 아타튀르크를 기리며, 궁 안에 있는 모든 시계를 그가 죽은 9시 5분에 멈추도록 했다. 또, 초대대통령 아타튀르크가 사용하던 서재, 침실 등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궁의 외부나 정원 등에는 제한이 없으나, 궁내부의 사진촬영은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3-4. 궁 내부계단
3-4. 궁 내부계단

4. 하렘 정문
4. 하렘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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