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탈북 관련 이미지. 출처 :  KBS 캡쳐
탈북 관련 이미지. 출처 : KBS 캡쳐

올해 우리나라 전체 예산 가운데 복지예산은 약 150조 원이다. 그 돈을 5천만 국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골고루 배분하면 한 명당 300만원씩 돌아갈 수 있다. 2명이 한 가족이면 1년에 600만원씩이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 같은 부자들에게도 같은 기준으로 분배하는 경우에도 굶어죽은 한 모씨 모자 2명에겐 매월 50만 원 정도 지급돼야 맞다. 국가의 복지시스템이 그처럼 간단할 수는 없다 해도 기본적으로 그렇다. 

우리나라는 쌀이 남아돈다. 식량자급 국가는 아니지만 쌀은 소비보다 생산량이 많다. 남는 쌀을 보관하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라도 북한에  쌀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부가 쌀 재고 처리를 고민하는 나라의 수도 한 복판에서 40대 엄마와 6살 아들 모자가 굶어죽었다.

두 달 뒤 쯤 모자의 주검을 확인한 경찰은 “냉장고에는 거의 먹을 것이 없었고 유일하게 고춧가루만 남아 있었다”고 했다. 타살이나 자살 흔적은 없다고도 했다. 3858원을 마지막으로 인출한 잔고 0원의 통장도 타살이나 자살이 아닌 아사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경찰의 첫 반응은 아사에 무게를 두는 듯 했으나 사건의 민감성을 알고서는 “굶어죽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신중 모드로 바뀌었다.

송파 모녀의 사건과는 또 다른 탈북민의 비극

먹을 거라곤 냉장고 속 고춧가루가 전부고 잔고 0원의 통장이 발견되었다면, 더구나 타살이나 자살 흔적이 없다면 먼저 아사를 의심하는 게 상식이다. 이런 처지의 모자를 해쳐 죽음에 이르게 할 사람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모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다면 쌀 한 줌은 남아있고 3800원 잔돈까지 다 찾아 쓸 이유가 없다. 만에 하나, 먹을 게 다 떨어져 굶주림을 견딜 수 없어 수면제를 복용했다고 해도 그건 자살이 아니라 굶어죽은 것이다.

혹자들은 엄마를 탓하기도 한다. ‘그 지경이 되도록 엄마는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엄마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린 자식과 함께 굶어죽어 간 엄마의 마음을 우리는 헤아리기 어렵다. 모자가 남기고 간 ‘고춧가루’와 ‘0원 통장’에 관한 기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럴 수가!’ 하는 외마디 탄식만 유발한다.

모자의 딱한 사정이 드러나고 있다. 아들은 간질을 앓고 있었고 이런 아들을 받아주는 곳이 없어 엄마는 일을 나갈 수 없었다. 아동수당과 육아수당 합쳐 월 20만 원을 받다가 아들이 6살이 되면서는 육아수당 월 10만 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구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서류 미비 등의 문제로 허사가 되면서 아사의 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모자의 비극은 기본적으로 5년 전 세상을 울렸던 송파 세 모녀 사건과 다르지 않다. 생활고를 견딜 수 없었던 세 모녀가 집세와 공과금 70만 원을 남겨놓고 자살한 사건이다. 이후에도 증평 모녀 사건 등 유사한 사건이 잇따랐다. 그럴 때마다 구멍난 복지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다. 이번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전과 다른 점은 비극의 주인공이 현 정부에서 민폐 취급을 받는다는 탈북민이란 점이다.

현 정부가 북한과의 평화체제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고, 그 협력 대상인 김정은 정권이 탈북자를 좋게 볼 리 없다는 건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남북 간의 관계가 탈북민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탈북자가 굶어죽었으니 단순 아사 사건이 아닐 수 있다. 희생자가 탈북민이라는 점이 비극의 또 한 가지 요인으로 드러나면 ‘탈북민의 인권’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이 때문에 탈북 모자 비극은 송파 모녀 사건과는 또 다른 큰 사건이 분명한 데도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언론들은 헤드라인에서조차 빼내고 뉴스 후반부에 기사를 배치, 의미를 축소했고, 다른 당들은 곧바로 논평이 나오는데 여당은 하루가 더 지나도록 논평을 내지 못했다. ‘아사로 보이지만 아사여선 안 된다’ 우려 때문 아니었겠나?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와 사는 탈북민이 3만3000명 정도다. 상당수는 출신이 북한이라는 점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접촉을 기피하기 쉽다.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손을 내밀지 못 한 걸 보면 한 씨도 그런 성격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가 정부한테 ‘민폐’ 대상이 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 탈북민 ‘민폐’ 대상 아니라는 것 보여줘야

모자의 아사가 가난도 서러운데 북한이란 출신 때문에 숨죽여 살다 맞은 비극은 아닌지 정부는 확인해야 하고, 탈북민이 민폐가 아니라는 점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이 모자와 비슷한 처지에서 신음하는 탈북민들을 위로하고 보살펴야 한다. 남북 평화가 지고의 목표라 해도, 그것 때문에 탈북민이 희생되어선 안 된다. ‘사람이 먼저’라면서 ‘사람보다 정치가 먼저’인 정치에 불과할 뿐이고 이런 정치는 성공할 수 없다.

복지예산 150조가 어떻게 쓰이는지는 필자는 잘 모른다. 그러나 젊은 엄마와 6살 아들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전국민이 똑같이 나누더라도 두 모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몫은 월 50만 원인데 10만 원밖에 못 받으면서도 그들은 손을 내밀 줄 몰랐다. 그 사정과 이유가 무엇이든 이런 사람들부터 먼저 챙겨야 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 버스 운전사가 사고로 승객을 숨지게 해선 절대 안 되는 것과 같은 중대 의무 사항이다. 

모자는 무능한 정부를 만나 비극을 피해가지 못했다. 가난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온 남한이 이런 지옥이 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정부는 사죄해야 하고, 서울시장과 해당 구청장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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