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과 상해는 이제 중국 아니다”
김미란 성공회대 교수 '아파트인문학콘서트' 강의

작년 우리나라에선 미투(me too) 운동이 크게 일었다. 출발지는 미국이었다. 2017년 7월 미국 영화계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졌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에선 우리와 달리 미미했거나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김미란 성공회대 교수(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 주임)는 10일 송인창 대전대 명예교수의 둔산 국화아파트 505동 106호에서 열린 아파트인문학콘서트에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동아시아의 미투운동’을 주제로 한 콘서트에서 한 김 교수의 강의 요지다.

작년 한국의 미투운동은 법조계 문화계 정계 등 전방위로 확산됐다. 그러나 일본은 정계 학계 등 모든 분야에서 침묵했고, 가장 힘이 없는 프린랜서 직종에서만 미투가 일어났다. 중국은 10~20년이 지난 사건으로 북경우주항공대 교수와 남경대 교수 2명이 옷을 벗었을 뿐이다. 중국와 일본은 미투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일본 “애국심으로 뭉쳐야지 무슨 미투냐?”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미국이 무역적자가 너무 커지자 달러에 대한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절상한 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50% 이상 점프하면서 수출이 막히게 됐고 결국 불황과 함께 ‘일어버린 20년’으로 가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무너지는 일본 속에 남성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초식남’ 같은 부류들이 생겨나자, 일본의 기성세대가 '자기나라 역사를 몰라서 일본 젊은이들이 왜소화되고 있다'며 분노했다.

고바야시 요시노리 같은 극우 만화가는 “전쟁은 승인된 폭력이다. 평상시의 질서를 무질서로 변화시키고, 미친 상태가 아주 자연스러운 게 전쟁이다”라고 주장하는 ‘전쟁론’을 들고 나왔다. 이런 가운데 아베 정권이 등장해서 “이렇게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애국심을 가지고 뭉쳐야지, 페미니스트니, 성적 침범을 당해 고발하느니 남편과 이혼하느니 하는 행동들은 사회 안정을 해치고 국가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했다. 젠더 프리 즉 성적 평등 대한 주장을 사회의 공적으로 몰아가면서 젠더 운동의 입지가 좁아졌다. 

일본에선 젠더 얘기를 하면 짜증을 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미투 운동이 먹히지 않는 토양은 이미 1990년대부터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위축된 일본의 페미니스트들이 “한국위안부들은 스스로 원해서 돈벌러 갔다”는 전쟁론자들의 거짓 주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우익은 성평등론자와 조선인 위안부 두 집단을 침묵시키는 데 성공했다.

매춘 넘쳐나는 ‘국가주의’ 중국도 미투 한계

중국에서 미투운동으로 자리에서 쫓겨난 공직자는 2명뿐이다. 베이징우주항공대 천사오우 교수와 남경대(전 베이징대 교수)의 선양 교수다. 천 교수는 오래 전 자신이 지도하던 제자를 성희롱한 사실을 피해자가 웨이보에 올리면서 옷을 벗었고, 선 교수도 오래 전 자신의 성폭력으로 자살한 제자의 친구가 실명 고발함으로써 교수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정치 문화 종교계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지 않았다. 중국 인터넷에서 ‘me too’는 검색되지 않는다. 매춘이나 미투 관련 논문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성을 거래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중국이 추구하는 국가주의가 미투를 바라보는 기본 입장이다. 중국에서 미투가 활발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처럼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국가에서 일어나는  변화 중 하나는 매춘 여성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중국도처에 발마사지가 성행하는 것도 매춘과 관련 있다. 중국은 돈을 벌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배금주의가 팽배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투 운동은 힘을 받기 어렵다. ‘국가주의’로 가고 있는 중국 당국도 미투운동에 대한 응원은 힘들다.

미투운동으로 낙마한 두 명은 모두 중국의 ‘장강학자(長江學者) 프로젝트’에 선발된 교수였다. 이 프로젝트는 홍콩의 최고 부호 리카싱이 세계적인 인재를 끌어오면 자신이 돈을 대겠다며 만들었다. 전세계에서 인재 100명을 선발, 1인당 1년에 3억2000만원을 주고 있다. 장강 강사로 뽑히면 5억2000만원을 준다. (중국 교수들의 평균 월급은 아직 200만원이 안된다.) 

중국의 목표는 미국을 따라잡는 것이다. 그런데 2008년 뉴욕 한 복판에서 금융위기가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도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때부터 중국의 정책이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모델은 독일이다. 이젠 지식과 정보의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연결’이 중요하다는 게 독일이 먼저 나선 ‘4차산업혁명(inderstry 4.0)’이다.

중국은 핸드폰 만드는 공장을 가지고 한국과 경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단계를 뛰어넘어 곧바로 인터넷(연결)으로 가겠다는 것이 ‘중국제조 2025(Made in China 2025)’다. 현재 기술 수준은 미국 1위, 독일 일본 2위, 중국 한국 프랑스 영국이 3위지만 2045년이면 중국과 미국이 공동 1위, 2050년이면 중국 단독 1위로 만든다는 게 '중국제조 2025'의 목표다.

게임 업계 일당, 중국 300달러, 한국 200달러 역전

김미란 성공회대 교수.
김미란 성공회대 교수.

김미란 교수는 “중국은 이런 꿈을 이룰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그는 지금 중국과 우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상 하나를 소개했다. 일주일 전에 들었다는 얘기다. 게임산업을 하고 있다는, 김 교수의 한 동료 교수가 겪고 있는 상황이다. 동료 게임학과 교수가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기업을 하는데 중국에서 용역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상해서 김 교수가 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게임산업이 잘 나가는 것 아닌가요?
-그건 2005년 일입니다. 지금은 중국 사람보다 우리가 인건비가 더 싸요. 그래서 우리에게 (용역을) 주는 거예요.
-무슨 말씀이예요?
-맨데이(Man-day 일당)가 중국 사람은 300달러고 우리는 200달러예요. 중국은 하루 30만원, 우리는 20만 원이예요. 일본은 250달러, 미국은 300달럽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됐어요?
-5년 정도 됐어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우린 IT사업이 많이 죽었어요. 중국의 상해와 북경은 이미 중국이 아닙니다. 여기서 창업하는 사람들은 미국 영국 등에서 유학하고 왔기 때문에 중국 자체 인력을 쓸 수 없습니다. 한국은 인건비가 가장 싸기 때문에서 (용역으로) 쓰는 겁니다.

김 교수의 미투 강의는 미투가 단순한 여성 문제가 아니라 그 국가의 사회 경제적 상황과 밀접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점을 거듭 확인시켜준다. 이날 강의의 본래 주제는 ‘미투’였으나 “북경과 상해는 이젠 중국이 아니라”는 김 교수의 말에 참가자들은 더 놀란 표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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