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83] 위기대응 능력 강화 계기 삼아야

리얼미터 홈페이지. 자료사진
리얼미터 홈페이지. 자료사진

난국(亂國). 왜의 침략에 조선은 무기력했습니다. 왕은 백성을 버리고 도망쳤고, 버려진 백성은 왜군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도망친 왕은 피난지에서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조정 대신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위기대응 능력’이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이야기입니다. 당시 일본은 무력으로 조선을 침략했지만, 이제는 ‘경제’로 공격했습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는 이번 일본 수출규제 사태에 맞서 여러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는데요. 다만 그 대응 방안이 산업계에 치우쳐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원상태로 복귀하는 것 아닌지 우려도 됩니다.

일부 야당과 보수 언론은 ‘뭉쳐야 사는’ 이때 국론 결집에 반하는 행태로 분열을 조장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국내 여론을 동요시켜 우리 기업과 국민을 누란(累卵)의 위기로 빠뜨리려는 게 아베가 난(亂)을 일으킨 의도인데 말입니다.

일본은 당장 ‘경제’로 싸움을 걸어왔지만, 또 무얼 갖고 시비를 걸지 모릅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호시탐탐 우리 약점을 파고들려는 주변국도 경계해야 합니다. 이번을 계기로 어떤 나라가, 어느 분야를 치고 들어와도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습니다. 국력을 키우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자생력을 높여야 합니다. 이는 곧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는 경제 체질과 산업생태계 개선과 결이 같습니다. 자생력을 높이려면 위기대응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위기대응 능력을 기르려면 각 지자체마다 취약점을 점검하고, 그에 따른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정치권과 중앙 정부는 컨트롤타워로서 해당 분야에 입법과 행‧재정 지원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위기가 닥칠 경우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대전시를 예로 들어 “대부분 에너지를 타 지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위기가 온다면 지역 기반 자체가 무너진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관점에서 지역을 관찰하고, 깊이 있게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은 ‘징비론’을 강조했는데요. ‘징비(懲毖)’란 위기 속에서 지난 잘못과 비리를 경계해 후환을 대비한다는 뜻입니다. 한일 외교 현안이 생길 때마다 우리가 일본에 밀렸던 이유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실을 철저히 분석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징비정신’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는 책에서 “적어도 류성룡의 《징비록》을 읽고 치욕과 분노와 가슴을 치는 수고가 있었다면, 조선은 결코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류성룡은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의 영웅이었지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이순신이 노량 앞바다에서 최후를 맞던 날 파직됩니다.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공로 역시 묻혀 집니다. 지난 주 종묘(宗廟)에 다녀왔는데요. 한쪽에 조선왕조 때 공로가 큰 신하들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신당(功臣堂)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류성룡도, 이순신도 없습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서울 편》에 종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공신당 부분에 “공신으로 누구를 모실 것인가는 후대에 결정하는데 조선 후기에 붕당으로 인한 정파적 파워게임이 작용하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최호택 배재대 교수는 “지금의 사태는 정치가 만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국회는 일본 이슈를 갖고 전면전을 벌일 게 아니라, 민생 개혁 법안 통과에 주력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라고 단언합니다. 일본발(發) 이슈에 총선 이슈는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현역 의원들은 꽤 나라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내심 이 사태가 오래 가길 바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치와 행정은 위기상황에서 국민을 안정시키고, 나라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국론은 저절로 모아집니다. 그것이 난국 극복의 길, 자강의 길, 나라를 다시 세우는 기본입니다.

오는 15일은 우리가 일본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지 74주년을 맞는 광복절입니다. 때가 때인 만큼, 올해 광복절 경축식은 민족혼의 성지 독립기념관에서 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거기서 문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다시 만드는 나라의 설계도를 내놓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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