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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성찰자, 시간의 철학까지 담다
삶의 성찰자, 시간의 철학까지 담다
  • 리헌석
  • 승인 2019.07.30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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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리헌석, 이광희 소설집 『시계소년』의 작품세계

이광희 디트뉴스 대표가 펴낸
이광희 디트뉴스 대표가 펴낸 단편소설집 '시계소년'.

1. 이광희 작가에 대하여
언론인으로서 틈틈이, 때로는 치열하게 소설 창작 활동을 계속해 온 이광희 소설 작가, 그가 등단 20여년 만에 《한국소설》을 비롯하여 여러 문학지에 실렸던 작품들을 한데 모아 단편소설집을 발간하였다.

단편소설집 『시계소년』은 총 7편의 단편을 모은 것으로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대적 아픔,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인간의 삶에 있어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다. 소설적 요소와 형상화의 재미를 결합하여 인문학적 고민을 진지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방관자적 입장에서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의 경계를 살아오면서 겪어야 하는 인간관계, 삶의 목적, 시대적 변화에 따른 사회문제 등, 비교적 무거운 철학적 물음을 가볍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탄탄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광희 소설가는 1959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살고 있다. 호는 무계(茂溪, 아름다운 골짜기)를 쓰고 있다. 대전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충청투데이 편집국장과 상무, 금강일보 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디트뉴스24’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중견 언론인이다. 그는 대전충남 기자협회장을 역임하며 지역 언론문화의 발전에도 이바지한 바 있다.

문화부 기자로서 인연이 된 소설가 구인환 선생과 윤병로 선생의 추천을 받아 《순수문학》 으로 등단하였으며, 주로 장편소설을 창작해 왔다. 『붉은새』 상하 2권, 『청동물고기』 연작 3권, 『소산등』, 『진시황과 녀』등 장편소설 7권을 상재하였으며, 2019년에 대전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단편소설집 『시계소년』을 발간한다.

또한 문화재 기초해설서 『문화재가 보여요』와 충청인물을 중심으로 조사하여 집필한 『호서인맥』을 상재했다. 한국소설가협회, 한국문인협회, 대전문인협회, 문학사랑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밭수필가협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대전광역시문화상, 국세청장상, 오늘의문학상, 올해의소설가상을 수상하며, 언론인이자 소설가로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2. 이광희 단편소설 읽기
# 「시계소년」- 시간을 잡아두다
소설집 제목과 같은 단편소설 「시계소년」은 그의 대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사단법인 문학사랑협의회에서 2018~2019년의 ‘우수소설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올해의 소설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서두에 시대적 배경, 어린이의 시선을 통한 스토리 전개, 작가의 고유한 시점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내재되어 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그동안의 경험상 시간은 정한 간극의 연속처럼 째깍째깍 뛰어가지 않았다. 달빛이 밤하늘에 흘러가듯 갔다. 그렇게 미끄러져 갔다. 강물 같은 것이었다.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한자리에 서 있는데 시간은 지나는 기차처럼 가고 있었다.
강물이 거슬러 오르지 않듯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추억 속의 어린 시절은 흘러간 강물의 한 단면이었다. 기억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만큼 나는 그곳에 서있었다. 기억 속의 아이는 매일 아침마다 숨 가쁘게 동네를 뛰어다녔다. - 「시계소년」 일부(서두) 

‘기억 속의 아이’는 시계가 없으면서도 시간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집안에서 자란다. 그 마을에서 시간을 알 수 있는 것은 기차가 지나는 시각, 그리고 시계를 갖고 있는 몇몇 집을 찾아가 알아오는 것이다. 출근해야 하는 누나와 형들에게 시간을 알아다 주는 일을 하며 재미와 보람을 찾는 아이가 스토리의 중심을 이룬다.

이와 함께 그 마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어린이의 시각’이 작품의 전편을 이룬다. 여러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소제목이 매겨져 있다. ‘시간은 가는 법을 안다’ ‘마을이 시간을 안다’ ‘집나간 송아지’ ‘살구나무집’ ‘계집아이’ ‘초상’ ‘거짓말’ ‘새벽청소’ ‘만남과 헤어짐은 한길로 간다’ ‘기둥에 묶인 시간’ 등에서 1950~60년대 경상도를 배경으로 한 시골마을의 실상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사람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그 앞을 지나갔다. 여러 대의 택시가 지나갔다. 강물이 흘러갔다. 계절이 지나고 바람이 지나고….
지진계의 바늘과 도표처럼 우리는 바늘로 서있고, 시간은 도표처럼 흘러갔다. 늘 오늘만 있다. 천방에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지켜보면 강물은 흘러갈 뿐이다. 꽃잎이 물 위에 떠서 흘러가듯이….
시계소년은 오늘도 거기 서있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이 끝나고 시계소년이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흘러가는 시간도 우주로 사라질 것이다. 영원한 어둠 속으로…. 그리고 멀리 별 하나가 반짝일 것이다. - 「시계소년」 일부(끝부분) 

끝부분의 <나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에서 이 작품이 시종일관 1인칭 관찰자 시점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시계소년’과 자신의 유년을 정서적 교집합(交集合)으로 제시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시간과 삶이라는 철학적 명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동시에 서사적 작품에 정서적 감성을 결합하여 소설의 미적 구조를 생성한다. 택시가 지나가는 것과 <강물이 흘러갔다. 계절이 지나고 바람이 지나고….>라든가, 강물이 흘러가는 것과 <꽃잎이 물 위에 써서 흘러가듯이….>라든가, 시간과 인간이 모두 우주로 사라질 것이라는 유추와 함께 <멀리 별 하나가 반짝일 것이다.> 등으로 표현한 것은 비유적 감동을 통한 수사적 성공이다.

이렇듯이 이광희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시선이 섬세하고 서정적이라는 것이다. 감동을 생성하는 이광희의 단편소설 「시계소년」은 근대사의 거울을 통하여 철학적 명제에 근접하면서, 흘러간 시간을 작품에 묶어놓음으로써 특정 시공(時空)을 공유하게 한다. 이러한 마력을 단편소설에 담아낼 수 있는 그만의 자질이 오롯이 드러나고 있다.

# 「구경꾼」- 타인은 타인일 뿐
어쩌면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 구경꾼이다. 나는 타인을, 또 타인은 나를, 서로서로 구경꾼이 되어 슬그머니 객체적 입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 작품이 바로 「구경꾼」이다. 이 작품에서 ‘일수(원금과 이자를 날마다 거두어들이는 일, 그리하여 그의 별명이 되었음)’를 거두는 주인공은 어느 날 시장통에서 벌어진 싸움을 구경하며 삶과 죽음의 모습을 목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상의 현상으로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관망하고 관찰자적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그 일들이 과연 그, 나, 우리와 무관한 일인가를 작품을 통해 되묻는다. 한 생명체가 스러져 가는 순간 다른 생명체의 이기적 행위로 이어지는 우리의 삶, 그 도가니 속에서 우리가 오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머리 위로 향기로운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굵은 비를 다시 부르는 전주곡 같은 것이었다.> <간밤의 과음으로 간이 녹아내린 느낌이었다. 얼마지 않아 피떡이 되어 옆구리를 차고 나와 선지처럼 쏟아질 것이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로 시작되는 ‘서두’에서 소설의 진행방향을 유추하게 한다.

그가 무심하게 던진 담배꽁초에 다방 여종업원이 맞는다. 이로 인해 그녀를 관찰하게 되고, 그녀에 대한 외양 묘사는 앞으로 그와 그녀가 엮이어 갈 예시(암시)로 기능한다. <양팔이 고스란히 드러난 남색 블라우스는 허리에 비해 넉넉해 보이는 젖가슴을 완벽하게 숨기지 못했다. 길게 늘어뜨린 가는 머리카락은 쉴 새 없이 좌우로 나폴거렸다.>며 관심을 환기한다. 그는 일수 돈을 거두는 과정에서 시장 사람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대부분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이 ‘일수’를 통하여 사실성을 확보한다. 남들은 ‘사채업자’ ‘일수쟁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자존심을 지키려는 자세를 취한다.

점포나 난전에서 물건을 들여놓거나 갑자기 막아야 할 급전이 필요할 때 그들은 나를 찾았다. 돈을 빌려주는 일뿐만이 아니라 불려주는 일도 했다. 매일 몇 첫 원씩 우수리를 받아 목돈으로 돌려주었다. 움직이는 작은 은행인 셈이었다. 그래서 내 손에는 한시도 빠지지 않고 손가방과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중략) 난전 사람들에게 은행에서는 돈을 빌려주지 않아도 나는 빌려 주었다. 떼인 적도 많지만 그래도 남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구경꾼」 일부

하루는 시장에서 큰 싸움이 벌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싸움 구경을 하고 있는 사이에 ‘일수’도 구경꾼으로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다방의 아가씨와 한 자리에 밀착하게 된다. 뒷사람들이 밀어붙이자 그의 손은 <비단처럼 매끄러운 미니스커트 아래로 둥근 엉덩이선이 어떤 저항도 없이 만져졌다. 촉수의 예민한 감각으로 미루어 그녀는 치마 속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는 것이 확실했다.>며 순간적으로 그녀를 정욕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시행한다. 이때의 상황을 작가는 <한 점 빗줄기도 없는 원시의 어둠이 진하게 고여 있다는 점과 동굴의 벽에서는 연신 눅눅한 습기를 뿜어내고 있다는 것도 감지할 수 있었다.>고 묘사한다.

장대한 사내가 처음에는 싸움을 주도하였지만, 왜소한 사내가 칼로 대적하여 살인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일수’와 ‘다방녀’의 엽기적인 성교가 진행된다. 칼에 찔린 장대한 사내가 마지막 경련과 비명으로 죽어갈 때 두 사람의 성교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분노가 좁은 분출구를 향해 미친 듯이 뿜겨져 나간 기분이었다.>고 카타르시스를 묘사한다.

두 사람이 싸우다가 한 사람이 죽어가는 데도, 구경꾼인 남녀는 성감의 클라이맥스를 즐기는 타인으로서의 삶을 즐긴다. 경찰관이 찾아오고, 구경꾼들이 떠날 때 바라본 다방녀는 <엉덩이가 잘 익은 복숭아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돌아보며 곁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축축하게 젖은 까만 눈동자가 뜨거운 열기 속에 빛났다. 내 눈길도 그녀의 눈부처 속에 들어 있었다.>로 묘사한다. 이 작품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타인으로서의 삶일 뿐, 자신들과는 무관(無關)함을 ‘관찰자 시점’을 통해 명징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 「할아버지 어디가」- 선과 악의 경계
작품 「할아버지 어디가」에서는 평생 올곧게 살아왔으며, 자식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노인이 부인의 죽음을 마주한 채 벌어진 일련의 안타까운 사건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사회에 대한 배신감과 삶의 회의에 시달리게 된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간의 부양과 관련하여 시대·사회적인 변화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삶에 있어 절대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삶은 선택의 여지없이 헌신적일 수밖에 없지만, 부모세대는 책임과 헌신의 경계에서 헌신으로 경도할 수밖에 없지만, 자식세대에게 부모 봉양은 자신의 삶보다 우선일 수 없다. 이와 같은 세대 간의 괴리, 이에서 비롯되는 상황을 역전(逆轉) 구성에 의한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투항하라. 당신은 완전 포위됐다. 총을 버려라.” 이 작품의 서두는 총을 든 노인을 향한 경찰관의 메가폰 소리로 시작한다. 상황은 갱단의 도주, 혹은 흉악한 범법자를 체포하려는 것처럼 급박하게 진행되지만, 주인공 ‘노인’은 세 들어 사는 집 아이 ‘진필’이와 유유자적이다. 월세를 사는 집의 여섯 살 아이는 부모가 맞벌이하는 동안 노인의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노인이 아이를 더욱 귀여워하는 것은 늦게 본 손자 녀석과 같은 또래여서다.

“그런데 할아버지, 나쁜 사람이 누구야?”
“나쁜 사람? 음…. 많지.”
“나쁜 사람이 많아?”
“그럼. 우리 진필이 같이 착한 사람이 어디 또 있을라구.”
노인은 아이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할아버지,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 갔어?”
“할머니?”
노인의 주름진 마른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 「할아버지 어디 가」 일부

노인의 눈에 눈물이 핑 돌게 된 것이 이 작품 줄거리의 발단이다. 노인은 원칙에 충실한 교육자였다. 꽉 막혔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타협할 줄 모르는 채 자신의 양심을 지켜온 삶이다. 또한 제자들을 훌륭하게 육성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최선을 다하였다. 유학생활을 하는 아들을 위해 경제적 삶까지 모두 희생하였다. 그런데 아내의 수술을 앞두고 아들에게 전화를 하였지만 돌아온 대답은 <참아보세요. 그리고 주변에 융통을 좀 해보시구요.>였다. 미국에 있는 아들을 위해 교사로서 정년퇴임할 때, 연금으로 받지 못하고, 일시금으로 받아 송금하였다. 아내의 수술을 급하게 받아야 하는데 아들은 시간 타령이다. <일시불로 받은 아버지 퇴직금과 연금도 돌려 드릴 게고>라는 대답에 노인은 낙담하게 된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과 노인의 암담한 상황이 급박하게 교차되며 스토리는 절정에 이른다. 노인의 아내가 수술 중에 사망한다. 그런데 제자가 병원장인 그 곳에서 치료비를 완납하지 않으면 시체를 내주지 않겠다는 강한 통보를 받는다. 그리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였을 때 들여온 권총으로 은행털이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경찰이 출동한 것이다.

결말에 이르기 전, 아이 ‘진필’이와 노인의 대화는 부모와 자녀의 간극과 함께 ‘훌륭함’의 가치에 대한 혼동을 제기한다. 아이가 “훌륭한 게 뭐야?” 묻는다. “훌륭한 게. 글쎄다.” 노인은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교육자로서 늘 훌륭한 인간이 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지만, 정작 훌륭한 인간이라는 말을 풀자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곧 훌륭한 인간이 라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 확신을 가지고 있던 노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아내의 시체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노인이 은행 강도를 기획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진필’이가 저금통을 가지고 나온다. “응 말이야. 내가 할머니 아파하는데 맛있는 거 사드리라고 저금한 거야.” 이 말에 노인은 아이를 덥썩 끌어안고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은 다음 색 바랜 가방을 들고 현관을 나선다. 그 가방에는 월남전 참전 직후부터 줄곧 가지고 있었던 리볼버 45구경 권총과 실탄 다섯 발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둔 채 경찰이 쏜 탄환에 의해 주검으로 변한다. <얼굴에 복면을 한 사내들은 곰 사냥을 끝낸 사람들처럼 권총을 거두고 구둣발로 노인의 몸을 젖혔다. 그러자 총탄이 관통한 얼굴은 흉하게 반쪽이 되어 있었으며, 벌집같이 패인 가슴이 허공에 떠도는 영혼을 빨아들이는 듯 벌름거렸다.> 평생 선량하게 양심을 지켰던 ‘노인’은 삶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감한다. 

이 작품을 읽으며 ‘그 노인의 아내는 누가 장례를 모셨을까? 미국의 아들이 왔을까? 은행 강도를 한 아버지가 부끄러워 오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일게 구성한 이광희 소설의 플롯을 체험하는 독서였다.

# 「쓸개」 - 본성이 들어나다
작가의 사회적 문제의식은 작품 「쓸개」에서 나타난다. 비록 1970년대를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인간 내면의 욕심, 그 욕심은 돼지쓸개를 날 것으로 먹다 죽음으로 파경을 맞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 세세한 묘사와 서사는 소설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으며, 어린이의 눈을 통한 관찰자적 시점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밍승’이로 불리는 아이의 옆집 ‘종철이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상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돼지 도살’에 따른 여러 에피소드(逸話)들이 스토리를 이룬다. 아이는 종철이네 집에 가서 부침개와 밥을 얻어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초상집은 어른들이 부산스러워 아이들은 몸 붙일 곳이 없었다. 게다가 가로 걸친다는 핀잔 듣기 일쑤였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받아쓰기 숙제를 하다가 꾸벅거리며 조는데 “꽤액 꽤액!” 갑자기 귀청이 쩌렁쩌렁 울렸다. 초상을 치르기 위해 돼지를 잡는데, 붙잡혀 온 돼지가 소리를 치는 거였다. 

돼지 잡는 것이 궁금한 아이는 사다리를 흙담에 세웠다. 조심스럽게 올라가 용마름 너머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구경한다. 그렇게 바라본 이야기들이 시간적 질서로 구성되었고, 초점을 맞춘 인물들의 이야기가 간략하게 덧붙여진 플롯이다.

① 온 집안이 부산스러웠다. 종철이네 아버지는 벌써 건드레한 모습으로 문상을 받고 있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종종걸음으로 개미장처럼 부엌을 드나들었다. 한쪽에서는 물을 척척 발라가며 돌절구에 떡을 찧고, 마당 저편에서는 무쇠솥뚜껑을 엎어놓고 야채 전을 부쳤다. 흰 수건을 쓴 엄마의 모습도 보였다. 

② 시멘트로 사각지게 턱을 만든 펌프 샘가에는 족히 백 근이 넘어 보이는 검정돼지가 옆으로 누워 있었다. 앞뒤 다리가 새끼에 꽁꽁 묶인 채였다. 돼지는 나를 보자 까만 눈을 반짝거렸다.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돼지는 살려고 간간이 발버둥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목청이 터지라고 꽥꽥거렸다./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백씨 아저씨가 뒤곁에서 작은 도끼를 들고 나왔다.- 「쓸개」 일부

①은 70년대의 상가(喪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간략하게 묘사한 부분이다. 그리고 ②는 돼지를 잡기 전의 광경을 간략하게 묘사한 부분이다. 이러한 광경의 묘사를 현대에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또한 앞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어서 소설에서의 경험적 묘사는 사실주의적 가치를 담보하는 작업이다. 이후 도살 장면이 세세하게 묘사되거나 서술되고, 때로는 설명이 가해진다.

<그는 도끼머리로 장작을 패듯이 돼지의 백호를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다리를 쭉 뻗고 장작처럼 굳었다. 뒷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벌써 돼지는 목에 칼을 맞고 피를 흘리며 널브러져 있었다. 굵은 목 아래 받쳐둔 놋양푼에 선혈이 울컥울컥 쏟아져 내렸다.> <말끔하게 털이 뽑힌 희멀건 돼지몸통을 아래위로 훑어본 다음 면도를 하듯 정성들여 털을 깎았다.> <백씨 아저씨는 먼저 손을 내장 깊숙이 넣고 더듬다 내 주먹보다 큰 쓸개를 잘라냈다. 어눌한 손놀림으로 쓸개의 주둥이 부분을 지푸라기로 대충 묶은 다음 내가 선 담장으로 다가왔다.

담장을 덮고 있는 용마름 위에 쓸개를 올려놓고 샘가로 돌아갔다.> <청녹빛이 감돌고 가마푸레한 주머니를 가늘고 노란 힘줄과 얇은 핏줄이 촘촘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찹쌀떡처럼 몰랑몰랑해 보였으며, 아직 식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손가락으로 만져보고 싶었지만 비릿한 냄새가 지독해 손이 가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쓸개를 찾았다. 비린내가 날 만큼 비쩍 마른 상필이네 삼촌이었다.>

상필이 삼촌부터 쓸개를 먹기 위한 도전이 여러 명 진행된다. 그는 병약하여 군대도 가지 못하였고, 결혼도 못한 상태였다. 쓸개가 몸에 좋은 것이라서 먹으려고 여러 번 시도하지만 <우물거리다 여러 번 헛구역질만 하고 쓸개를 뱉어냈다.> 그리하여 그는 말없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물러난다.

다음에는 지렁이며 생쥐까지 잡아먹는 박씨 아저씨가 도전한다. 그는 침이 묻은 쓸개를 바가지 물에 두어 번 헹군 다음 입으로 가져갔지만, 용마름에 쓸개를 올려놓을 뿐이다. 그 다음으로 호식이 아버지가 도전한다. 몇 차례 시도하였지만 울컥 헛구역질로 마친다. 그 뒤로도 두어 사람이 도전하지만, 너무 큰 쓸개여서 모두 토해내고 만다.

마지막으로 ‘병호’ 아재가 도전한다. 가난한 집 출신이자 마을 출신으로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는 사람이다. 부자이지만 마을 사람에게 소주 한 잔 낸 적이 없어 ‘왕소금’ ‘소태’ ‘쇳독’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 <돈이 된다면 닥치는 대로 하는 거야. 생사람을 송장 치루라고 해도 마다할 일이 아이지.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잖아. 살아보니께 모든 게 돈이더라고, 돈.>이라고 내뱉어, 마을 사람들이 탐탁찮은 눈빛을 보내는 사람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쓸개 먹기에 도전한다.

<담장에 놓인 쓸개를 발견하자 음흉하고 메스꺼운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그는 쓸개를 가져가 다른 사람들처럼 샘물에 헹궜다.> <사탕을 문 것처럼 우물거렸다.> <헛구역질을 여러 번 하면서도 우물거렸다.> <순간 토할 지경이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드디어 쓸개를 삼킨 것이다.> <하지만 병호 아재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다시 ‘웩’하는 소리와 함께 좀 전에 삼켰던 쓸개가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쓸개는 목 한가운데 걸려 튀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몇 차례 헛구역질을 하다 그 자리에 쓰러지며 발버둥 쳤다.> <쓸개가 그의 숨통을 막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현장감 넘치는 묘사, 서술, 설명이 있었지만, 핵심 부분만 간략하게 정리한 예문이다. 그 날 저녁때 아이의 아버지가 “마을에 줄초상이 났어. 욕심이 화근이제.”라는 말로 ‘병호’ 아재의 죽음을 확인한다. 이렇게 끝난 소설에서 독자들은 많은 이야기를 스스로 완성해야 할 듯싶다. 그런 소설이다.

3. 남은 작품에 대하여
이광희 첫 번째 단편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시계소년」「구경꾼」「할아버지 어디 가」「쓸개」 네 편을 심도 있게 독서하였다. 그러나 「박주사」「친구」「마지막 회의」 등도 그의 소설에 새로운 감동을 생성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작품 「박주사」에서 주인공은 주변머리 없는 그저 아주 소박한 소도시의 공무원으로 평범하게 살았다. 어느 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소나무 밭이 아파트촌이 되면서 보상금으로 졸부가 된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친지와 사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게 되고,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면서 돈도 써보지 못하고 암에 걸려 불행한 결말을 맞는다. 인간의 욕망이 돈이든, 명예든,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는 다소 뻔한 결말이지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친구」라는 작품을 통해 이 시대 지성인이며 엘리트라 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통해 불신하는 인간관계를 폭로한다. 이들은 동창관계를 통해 오랜 친교를 맺고 있지만, 사막에서 불시에 발생하는 사건으로 인해 내면의 이중적인 저급함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막에서 만난 이방인의 순수하고 긍정적인 아름다움을 직시하면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작품 「마지막회의」는 세월호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꽃다운 나이에 삶을 영위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어린 친구들을 통해 몇몇 사람들의 관계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공동의 선’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그리하여 삶의 진실을 스토리로 엮어 세상에 내놓은 이광희 작가의 작품들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소이연(所以然)이다. 

끝으로 이광희 작가는 어린이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그려내어 순수하고 진솔한 스토리를 창작한다. 그만큼 작가 자신이 순수하고 진솔하기 때문일 터이다. 그의 단편 소설에 녹아있는 주제, 주제를 구현하기 위한 소재와 소재의 유기적인 결합, 마지막으로 작가의 표현 능력이 작품을 작품답게 만드는 요체로 작용한다.

소설집 제목이기도 한 작품 「시계소년」을 통해 시간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계가 거의 없던 동네에서 시간을 묻기 위해 이집 저집을 뛰어다니던 어린 소년, 그에게 시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세월이 흘러 죽음의 문 앞에 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또 시간은 무엇이었는가를 되묻는다. 

우리의 삶 속에서 시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인가.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그 오늘 속에 소년의 인생이 있고 삶이 있고 희망과 꿈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년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다시 노인이 될 터이기에 이광희 소설은 ‘삶의 축도’로서의 기능에 충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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