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공섭의 빛 그림] 대전문화원연합회장 길공섭(시인, 사진인)

길공섭 대전문화원연합회 회장.
길공섭 대전문화원연합회 회장.

유년 시절 5일장에 가신 어머니를 동구 밖 고갯마루에서 해가 어둑해 질 때까지 기다리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어머니께서 머리에 이고 오시는 장 보따리가 정겹기만 한 그때의 5일장은 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유통수단이었다.

옛날의 5일장은 근처의 지역들이 장날을 달리 정하여 열렸으며, 이장에서 저장사이의 거리는 보통 걸어서 하루 정도였다고 한다. 보부상들은 장터를 돌며 물품을 팔았으며, 장터에는 좌판을 열 공간 이외에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주막과 같은 공간이 있었고, 장꾼들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국밥집과 국수집 같은 음식점이 생겨나게 되었다. 

보부상은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아울러 부르는 말로, 봇짐장수는 값이 비싸고 들고 다니기 쉬운 방물과 같은 물건을 팔았고 등짐장수는 소금, 미역, 생선과 같이 무게가 나가는 물품을 팔았다. 이러한 보부상을 장터와 장터를 오가며 생활 한다고 하여 장돌뱅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왁자지껄 떠들썩한 장터, 장돌뱅이들이 외치는 걸걸한 목소리가 좌판을 활기차게 만들고 시골 아낙 머리에 이고 온 곡식 팔아 생필품 구입하며 목로에 앉아 국밥 한 그릇이 꿀맛 같던 그때, 인정미가 철철 넘치고 사람 사는 냄새가 고소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그것은 아마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가고 이기주의가 만연해 정이 매 마른 현재의 세태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5일장에 애착을 갖는지도 모른다.

5일장의 정겨운 모습.
시골의 5일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정겨운 모습.

5일장터는 전통 상거래가 활기차고 정겹게 이루어지는 곳, 물건을 구매하면서 갑을 에누리 해 보려고 흥정소리가 고소하게 진동한다. 서로 옥신각신, 더 달라고 덜 주려고 벌리는 맛 나는 흥정의 묘미 또한 5일장에서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백미다.

우리 주변에는 유성장, 대평리장, 신탄진장, 옥천장, 금산장, 보은장, 영동장, 무주장 등 5일장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지금도 아련한 옛 장터의 추억을 간간이 볼 수 있다. 지역적으로 5일장은 그 지방의 독특한 문화가 흐르며, 또한 그들만의 주도적 농산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산은 인삼이 전통시장을 주도하고, 옥천은 올갱이가 청정하며, 유성장은 나물과 가축, 보은장은 대추, 영동장은 포도와 와인이 귀빈 대접을 받고 있다. 

5일장이 사라져가는 큰 이유는 대형 유통점과 마트 등 한곳에서 모든 상품을 쉽게 구매하는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산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중국산을 국산이라고 속여서 파는 현실에서 시골장터의 진실하고 소박한 인심과 더불어 생산자와 구매자가 직접 거래해 신뢰와 믿음, 그리고 정을 한바구니 담을 수 있는 곳이 바로 5일장이다. 

사는 사람은 더 싸게 파는 사람은 비싸게 팔기 위해 한판의 흥정 게임이 벌어지곤 한다.
사는 사람은 더 싸게 파는 사람은 비싸게 팔기 위해 한판의 흥정 게임이 벌어지곤 한다.

필자는 구수한 시골장터 내음을 호흡하기 위해 가까운 5일장을 자주 찾는다. 청정지역에서 잡아 올린 올갱이가 좌판에서 앉은뱅이 저울로 계량하는 시골아낙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함께 장터를 달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을 파는 아주머니의 덤 하나가 달콤한 팥 향기와 함께 우리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직도 시골인심이 넉넉하다고 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장터기행, 그 속에서 우리가 사는 소박한 삶의 진실을 찾기 위해 이 좌판 저 좌판을 기웃거린다.

5일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5일장은 대형 할인마트처럼 대량으로 상품이 거래되는 곳이 아니라 5일간 활용할 양식과 물품을 장만하던 소박한 유통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의 강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 간의 교류와 정(情)이라는 무형의 물품이 함께 유통된다는 것.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거나 교환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대처의 소식을 듣거나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광장이요 소통의 공간이었다.

5일장터는 계절마다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과 집에서 기르던 가축, 햇과일 등이 그곳에서 선을 보인다. 덤으로 하나 더 주는 정겨운 인심, 추위를 녹여주는 따뜻한 국밥, 텁텁한 막걸리에 호박전 안주, 고소한 뻥튀기, 칼갈이 아저씨,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 등 시골 장터의 정겨움을 마중하며, 추억을 가슴으로 보듬어 볼 수 있는 따뜻한 세상, 그런 세상이 그리운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5일장은 손수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5일장은 손수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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