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밤새 환청이 들린다. ‘넌 인생 낙오자야, 실패자야, 인간관계에서도 완전 패배자야. 살아서 뭐할래’ 평소에 이명(耳鳴)이 있어서 파도소리는 간간이 들리지만, 이렇게 자신을 향한 무차별한 말은 너무 자신에게 가혹했다. 죽어야 될 것 같은 밤을 꼬박 뜬 눈을 새어보는 일은 손가락을 뽑을 정도다. 어설프게 아는 것이 병(病)이라고…… 망상, 우울증, 강박, 공황 등 아는 단어들을 별을 헤아리듯 세어본다. 무서움과 두려움에 누군가를 찾으려 했지만, ‘이 새벽에 다른 사람한테 민폐야’ 그 생각이 먼저 자신을 제압했다.

자신을 더 괴롭게 했던 것은 오만가지의 생각이었다. ‘왜 그들은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볼까?’, ‘왜 나에게 냉정하게 다할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이 생각들은 스스로가 만들어 낸 허상이고 거짓임을 알면서도 과거에 사로잡힐 때는 내어맡기질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본다. 거기에는 이유도 알 수 없고, 어떠한 이유도 없다. 그들의 개인적 상황도 있을 수 있고, 부분만 보고 있는 서로의 관점을 인정하지 못함에서 오는 ‘마음돌보기’가 되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은 각자가 ‘자신 돌보기’로 바쁘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 어쩌면 타인에게 아직도 인정받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해서 허상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한다. 타인에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여기 있는 나 좀 봐달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자신, 허공을 향해 손을 계속 흔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자신을 스스로 인정해 주면 되는데, 그것이 어찌 말처럼 쉬울 것인가 안쓰러운 마음이 몰아치는 것은 왜일까? 울고 있는 자신의 그림자가 왜 이리 안타깝고 그렇게 열심히 잘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괴로워하니 마음이 아플 뿐이다.

밤새 환청이 들리고 불안과 분노가 고조되어 자신을 스스로 처단하기까지에는 자신도 놓쳐버린 감정이 있었다. 타인이 자신의 감정과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의 이득만을 챙기는 것에 대한 분노와 시기심, 현재 놓여진 자신의 처지 등을 생각하면서 자신 속에 있는 히스테리적 사고방식을 알아차리지 못함에서 엄청난 분노를 어찌하지 못함으로 밤을 새야 했다. 어찌 들으면, 그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환경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비난과 평가, 판단은 금물이다. 사실은 보여 지는 사실적인 행위에 문제의 초점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친밀도 차이에 따른 감정의 변화였다. 자신이 마음이 이용당했다는 피해의식이 자신을 힘들게 했다는 사실이다. 이게 진실일까?

더 깊이 탐색해보면, 자신은 정말 어떤 사람인가? 피해자인 척하면서 가해자는 아닌가? 자신이 믿고 싶은데로 허상을, 거짓을 믿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자신조차 잊어버리고 싶어 하는, 실제 잊어버렸던 아픈 기억들은 무엇이었는가? 너무나 도덕적이고 양심적이어서 스스로 부모되어 자신을 처벌하고 있지는 않는지? 쉽지 않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문구일 수 있다.

머리는 이성적이다보니 윤리적인 도리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생각한다면, 무의식 속에 있는 자신은 본능에 충실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이성과 본능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클수록 자신 안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천사와 악마가 서로 싸우고 있다라고 표현하면 이해하기 쉬울 수 있을 듯 하다. 자신이 심리적으로 많이 아플 때, 스스로가 부모도 되면서 자신을 처벌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애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자기연민, 자기혐오 등으로 인한 자기비하 등 결국 자신이 자신을 용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애도(哀悼) 작업을 온전하게 마치지 못하면 자기 연민과 슬픔에서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실감한다. 또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에 대한 자책에서 벗어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있는 자체만으로 충분하고 사랑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있는지는 자신 안의 깊숙이 묻어있는 상처와 결핍에게 물어보면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답을 하고 싶지 않다면 ‘답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자신이 참아야 했던, 자신이 자신답게 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애도가 필요할 뿐, 그 과거의 모습이 자신임을 배제하지 않았으면 한다.

현재는 외향적인데, 과거의 내향적으로 행동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가 아닐 수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외향과 내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누구의 아픔도, 그 어떤 누구의 행동도, 비난하거나 판단하게 되면 그 사람을 두 번 죽이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말기’를, 자신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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