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에서도 서북쪽인 후쿠오카 현과 나가사키 현 사이에 있는 사가 현(佐賀縣)은 규슈의 교통의 중심지이다. 그중 사가 현의 서쪽에 있는 우레시노(嬉野市)는 2006년 1월부터 후지쓰 군 시오타 정과 우레시노 정을 합쳐서 사가 현의 9번째 시가 된 도시이지만, 우레시노는 1,300년 전부터 유명한 온천마을이다.

우레시노란 지명은 진구 황후(神功皇后: 200~ 270)가 전쟁에서 부상한 장병들이 이곳에서 목욕하면서 점점 건강해지는 것을 보고, ‘아~ 우레시나(嬉しいなあ: 기쁘구나)’하고 감탄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우레시노는 혼슈 남서쪽에 있는 시마네 현(島根県)의 히노카미 온천, 간토 지방에 있는 도치기 현(栃木県)의 기츠레가와 온천과 함께 일본 3대 미인온천(美人溫泉)으로 유명한데, 미인온천은 탄산나트륨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온천수가 피부를 매끄럽게 하고 탄력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로 가는 가도(街道)에 있는 우레시노는 온천으로 유명하여 시내를 흐르는 우레시노 강을 따라 60여 곳의 온천 호텔, 료칸(旅館)이 밀집해 있다. 또, 우레시노는 일본 전국에서 5년에 걸쳐 최우수 녹차로 선정될 만큼 유명한 녹차 밭에 둘러싸여 있어서 온천에서 녹차 향이 묻어난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서정적인 분위기가 있는 마을이다.  

1-1. 시내 전경
1-1. 시내 전경
1-2. 우레시노 거리
1-2. 우레시노 거리
1-3. 우레시노온 유래비
1-3. 우레시노온 유래비

우레시노는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규슈 급행버스로 약 2시간이 걸리고, 나가사키에서는 규슈 급행버스로 약 1시간 10분 걸리는 곳이다. 우리는 후쿠오카에서 렌터카로 다자이후로 가서 규슈국립박물관과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를 둘러보고, 사가 현의 아리타 마을(有田町)과 포세린 파크(porcelain park)등을 거쳐서 해질 무렵에야 우레시노에 도착했다.

아리타 마을에서 우레시노까지는 약40㎞쯤 떨어졌는데, 낯선 시골길이어서 내비게이션에 우레시노 시볼트 온천(ジ-ボルトの湯)을 입력한 뒤 조심스럽게 달렸다.

우레시노는 주민 약 28,000명(2018년)이 살고 있으며, 시내의 중심인 우레시노 네거리에는 온천을 찾아온 고객을 위한 공동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은 90분 동안은 무료이고 초과 시간마다 얼마씩 주차비를 내는 시스템이었는데, 극히 사소한 일이지만 가는 곳마다 주차비가 부담되다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행객들은 우레시노의 대형 료칸이 아니더라도 다른 군소 료칸에서 온천 숙박을 많이 하는데, 나가사키 현 시마바라의 운젠화산온천이나 오이타 현의 벳푸 지옥온천과는 또 다른 조용한 시골마을의 분위기에서 즐기는 우레시노 온천욕이 아주 좋다. 우레시노는 국내의 많은 여행사들이 규슈 온천여행에서 필수코스로 정하는 곳이다.
 

2. 무료족탕
2. 무료족탕
2-2. 유명온천 소개
2-2. 유명온천 소개
3. 시볼트온천

초기에는 마실 수 없는 뜨거운 지하수를 ‘악마의 저주’라고 불렀다는 온천수와 함께 료칸이 발달한 우레시노에서는 온천과 료칸을 겸하고 있는 업소가 많은데, 특히 와타야벳소(和多屋別莊)가 유명하다. 약5만평이나 되는 넓은 부지에 현대식 건물인 타워 관과 일본 전통양식의 별관이 있는 와타야벳소는 넓은 정원을 산책하기 좋게 꾸몄다. 본관 로비의 카페는 족탕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음료수나 술을 마시며 족욕을 즐길 수도 있고, 또 숙박객이 아니더라도 료칸의 식당에서 1,500엔 이상의 식사를 한 경우에는 온천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한편, 와라쿠엔(和楽園)은 일본 최초로 온천에 녹차를 결합하여 ‘미용온천’을 정착시킨 료칸인데, 본관 40실, 별관 11실, 별채 5실 등 료간이 50개가 넘는다. 와라쿠엔은 별관과 별채에는 노천탕이 있고,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는 전세 노천탕(가족탕)도 있다.

그러나 우레시노 주민들은 당시 유일한 서양 교역국이던 네덜란드 상관(商館)의 독일인 의사 시볼트(Philipp Franz von Siebold: 1796~1866)가 1832년 귀국 후 펴낸 책 ‘일본(Nippon)’에서 크게 칭찬한 우레시노 온천을 큰 자랑으로 여기는데, 시볼트가 개척했다고 하는 시볼트 온천은 네거리에서 우레시노바시((嬉野橋) 옆에 있다.

마을 공동주차장이 있는 네거리에서 약 50m 쯤 떨어진 ‘시볼트 온천’은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고딕식으로 지은 대중탕이다. 온천은 1922년 시볼트의 이름을 따서 목조로 짓고 시볼트온천이라고 했지만, 건물이 소실되자  재건축할 때 지금의 모습으로 지었다고 한다. 대중당의 목욕 요금은 성인 420엔, 70세 이상은 320엔이다. 
 

3-1. 시볼트
3-1. 시볼트
3-2. 나가사키역사박물관에 소개된 시볼트
3-2. 나가사키역사박물관에 소개된 시볼트
4. 우레시노 강과 료칸
4. 우레시노 강과 료칸

온천을 관광상품으로 만들게 한 시볼트는 독일 남부인 뷔르츠부르크 출신이다. 그는 뷔르츠부르크 의과대학 교수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도 1820년 뷔르츠부르크 의대를 졸업한 뒤 병원을 개업하였으나, 베를린대학교 의대교수로 있던 숙부의 소개로 네덜란드의 군의관이 되어 동인도회사가 있는 바타비아(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갔다.

평소 여행과 탐험을 즐겨하던 시볼트에게는 최고의 기회여서 자카르타로 갔는데, 몇 년 후  일본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상관(商館) 의사로 전출명령을 받았다. 당시 일본은 1839년 쇄국령으로 네덜란드와만 교역했는데, 외국인의 거주지도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로 제한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볼트는 데지마에서 상관원들 치료 이외에 일본인들에 대한 진료와 식물학에도 몰두하여 1824년 나가사키 교외에 나루타기 주크(鳴滝塾)이라는 학원을 설립하는 등 자유분방한 시간을 보냈다.

나루타기 주크는 일본 전역에서 온 유학생들에게 의학과 자연과학 등 서양의 새로운 학문을 전달하는 창구가 되었으며, 유학생 중 한 사람인 이토 겐보큐(伊東玄朴: 1801~1871)는 나중에 일본 궁중의관 중 최고직위인 법의(法醫)가 되었다.

그가 세운 서양의학소(西洋醫學所)는 후에 동경의대의 전신이 되기도 했다.
 시볼트는 1826년 데지마의 네덜란드 상관장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알현하러 에도를 방문할 때 동행하여 일본인 의사들에게 복수천자, 종양 절제술, 겸자(鉗子)를 이용한 분만술 등 당시로서는 최첨단 서양의학 기술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1829년 네덜란드 정부의 귀국명령을 받고 귀국하는 가방 속에 일본과 조선지도가 발견되자 일본정부로부터 일본을 정탐하러 온 첩자로 오인 받아 구금되었다가 1년 후 추방되었다. 
 

4-1. 우레시노 온천수
4-1. 우레시노 온천수
4-1. 우레시노바시와 료칸
4-1. 우레시노바시와 료칸

그러나 1832년 그가 네덜란드에서 펴낸 저서 ‘일본(Nippon)’은 유럽인들에게 일본을 소개하는 지침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페리 제독이 개항을 목적으로 일본을 침략하는 지침서가 되기도 했다.

일본은 시볼트의 저서를 계기로 추방된 지 28년만인 1859년 추방령을 해제하자, 일본에 온 그를 도쿠가와 막부의 외교부 고문으로 임명했다. 일본에서 추방되기 전 일본여성과 결혼하여 2살 난 딸을 두고 떠났던 시볼트는 성년이 된 딸과 재회했는데, 제자들로부터 의학을 배운 딸은 일본 최초의 여성의사가 된 쿠스모토 이네(楠本イネ: 1827~1903)다. 시볼트는 3년 후 다시 네덜란드로 귀환했다가 1866년 70세의 나이로 독일에서 죽었다.

마을 공동주차장이 있는 네거리에서 왼쪽 골목에 무료 노천족탕이 있다. 유성의 유성온천  국군휴양소 부근에도 무료 노천족탕이 있지만, 차원이 다르다. 또, 시볼트 온천의 오른쪽 우레시노바시(嬉野橋)는 H-빔으로 만든 다리인데, 이곳에서 다리 위에서 흘러가는 온천수들과 어울린 주변 풍경은 아주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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