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79] 민‧관‧정, 역할 분담 필요
감정에 호소보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대응해야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空)든 탑’은 쉽게 무너집니다. 아래부터 튼튼하게 쌓지 않으면 아무리 높게 탑을 쌓아올려도 힘을 받지 못하는 법입니다.

대전과 충남이 혁신도시 지정을 위해 공든 탑을 쌓고 있는데요. 정작 탑의 밑돌 역할을 할 지역민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행정과 정치만 부산스럽습니다. 그렇다고 행정과 정치가 묘수를 내놓는 것도 아닙니다. ‘소외론’과 ‘역차별’ 같은 신파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홍성읍 광천시장에 와서 “혁신도시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한 이낙연 총리. 그는 어제(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타 지방이나 중앙에서 볼 때 세종시도 충청권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며 충청권에서 볼 때 서운할 수밖에 없는 말도 했습니다.

2005년 참여정부 시절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이 났습니다. 행복도시 특별법 통과에 사활을 걸었던 연기군민들은 일제히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5년 뒤 이명박 정부는 행복도시를 기업도시로 수정하려고 했지요.

연기군민들은 행복도시 원안 사수를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머리띠 매고, 촛불과 횃불 들고, 조치원역에 모여 궐기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행복도시를 지켜냈습니다. 행복도시를 지켜낸 이들은 비단 연기군민만이 아닙니다. 대전시민과 충남도민도 힘을 합쳤습니다. 누구는 삭발을 하고, 누구는 단식을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세종시’입니다.

당시 충남의 한 국회의원은 천안역 앞에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20일 넘게 단식했습니다. 언론과 그의 말을 빌리면 “목숨을 건 단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 충남의 도백(道伯)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숨을 걸고 지켜낸 세종시가 대전‧충남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형국입니다.

15년 전, 혁신도시 1기에 대전과 충남은 빠졌습니다. 행복도시가 생기면 공공기관과 기업이 이전해 주변지역까지 경제적 효과를 얻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죠. 그런데 말입니다. 세종시가 ‘특별자치시’로 분리되면서 대전‧충남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인구는 세종으로 빨려 들어가고, 지역에 있는 공공기관은 지역 인재 채용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대전‧충남 혁신도시 지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대전‧충남을 혁신도시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대전‧충남 혁신도시 지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대전‧충남을 혁신도시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그래서 대전시와 충남도, 국회의원들은 이틀 전(10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여론 결집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장관은 불참했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국회의원들도 대거 불참했습니다. 참석한 의원들도 축사가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떴습니다.

이러고도 대전시민과 충남도민들에게 혁신도시 유치에 참여해 달라는 서명을 받겠다고요? 내년 총선을 앞둔 면피용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혁신도시 지정에 실패해도 “우리는 할 만큼 했다”며 면죄부를 받으려는 ‘정치놀음’이 아니기 바랍니다.

충청권 4개 지자체장이 민주당 소속이고, 대전‧충남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민주당입니다. 당 대표 지역구는 세종시입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대전‧충남 혁신도시 당론 채택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 때나 가서야 큰 선심 쓰듯 내놓을 모양입니다.

‘혁신도시 시즌2’는 대전‧충남의 꿈과 도전만은 아닙니다. 이미 혁신도시가 있는 다른 광역단체들이 추가로 공공기관을 유치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광주는 이전 적합기관 35곳을 선정하고 공을 들이고 있고, 전남도 역시 해양 특수성과 연계한 기관 22곳을 유치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부산과 울산, 경북도 특정 공공기관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고, 부산과 전북은 금융관련 기관 유치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전‧충남이 혁신도시에 두 번 울지 않으려면 560만 충청도민이 의기투합해야 합니다. 과거 연기군민들처럼 머리띠 매고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일은 나중 일입니다. 감정에 앞서기보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관‧정이 역할 분담을 통해 정부를 설득할 논리를 개발하고, 이를 근거로 정부를 압박하고, 여론을 결집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촛불도 들고, 삭발도 하고, 단식도 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주권자의 최대 무기인 ‘표(票)’로 심판하면 됩니다. 그래야 정부도 흔들고, 국회도 흔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고, 적선이나 바랄 순 없습니다.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에 조예가 깊은 충남대 최진혁 교수(자치행정학과)의 조언을 실으며 정치레이더 마칩니다.

“처음 만들어놓은 정책결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대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보완‧보정할 수 있는 정책 전환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정책화 되는 과정에 정치인과 관련 학계, 시민단체, 언론이 보완 정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건강하고 균형있는 나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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