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세상 톺아보기]
대전시청은 나우(Now), 지금부터 변해야 한다

대전시청 전경. 자료사진.
대전시청 전경. 자료사진.

벌써 26년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나는 당시 제일기획이라는 삼성광고회사에서 근무했다. 광고기획을 했던 나는 1993년도 6월 이건희 회장이 계열사 사장단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부르면서 본격 시작한 ‘삼성 신경영’에 때맞춰 전략기획실에 차출되어 3년간 제일기획의 신경영 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신경영’은 변화의 상징으로 크게 회자된다. 그러나 정작 조직 내에선 당시에 광고회사의 창조성을 깨뜨리는 ‘관리의 삼성’다운 발상이라고 밤에 좋은 안주거리가 되기도 했다.

삼성은 지금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돌아보면 “마누라하고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뒷다리 잡지 마라”, “1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 등 많은 유행어를 남긴 이 때의 의식변화운동이야말로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몇 가지 불미스런 일들이 대전시청에서 발생했다. 이에 대한 비판과 함께 변화의 목소리가 높다. 시장은 시장대로 “공직기강을 바로잡고 나쁜 관행을 뿌리 뽑겠다”고 말하고 아래는 아래대로 “뭐하는지 모르겠다. 위부터 제대로 해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어쩌면 변화 필요성의 원인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시민들만 힘들다. 결국은 모두들 ‘나부터’ 변하고, 그래서 ‘함께’ 변해야 하는 것이 답이다. ‘나부터 우리함께’ 나우(Now), 지금 당장 변해야 한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을까? 20여년 전, 삼성신경영의 경험을 들춰본다. 비단 한 수퍼기업의 전설로만 남기엔 아까울 듯싶다. 따올 것은 따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10가지 변화모습을 이야기해본다.

첫째, 조직은 물론 조직 밖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고 체감할 수 있는 변화의 상징으로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이라는 7.4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이는 9시 출근 6시 퇴근의 사회통념을 깬 가히 혁신적인 조치다. 

물론 일부 고객들과 프로젝트 특성내의 이유로 조직 내의 볼멘소리도 많았지만, 예외는 협소하게 허용한 채 강력하게 진행되었다. 직원들은 근무습성에 이어 근무 후 자기계발 활동 등 생활습성에도 변화가 이루어졌다. 조직의 변화는 이렇게 누구나 인정할만한 확실한 조치가 있을 때 더욱 강력해진다.

둘째, 이때까지도 삼성은 ‘A/S의 삼성’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는 더 이상 자랑일 수 없었다. 만들어 판 것을 잘 고치는 게 아니라 애당초부터 고치지 않게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전환이 이루어졌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광고카피와 함께 세계1등 제품 개발이 가장 중요한 기업의 과제였으며, 모든 조직이 구체적 목표를 담은 비전을 만들고 비전선포식을 통해 공유했다. 지금의 삼성로고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만들 때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조직 내외에 공유해야 한다.

셋째, 평가의 기본 틀이 바뀌었다. 양적 지표중심의 평가에서 질적 평가가 매우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우선 매출중심의 기업과 사업 평가가 아닌 손익중심의 평가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규모는 크나 실제 내실은 없는 사업, 겉보기엔 큰 규모로 잘 돌아가나 실제로는 부실하게 운영되는 조직에 대한 솎아내기도 이루어졌다. 고객만족평가, 종업원 만족평가 등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졌으며 조직운영에 반영되었다. 평가는 인색하면 안 된다. 평가는 현재의 내실을 진단해 주고 미래의 방향을 말해준다.

넷째, 변화과정에 있어서 조직 내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연일 사내방송을 통해 변화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나는 무엇을 변화할까?’에서부터, 부서, 그리고 회사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일 회의가 진행되었다. 

단순한 업무혁신에서부터 회사전반의 중장기적 개혁까지 건전한 제안제도가 한층 활성화되고 이는 평가의 주요 대상이기도 했다. 부서의 칸막이가 낮아졌다. 그리고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 캠페인을 전개했다. 결국 일은 함께 하는 것이다. 소통은 일을 일궈내는 동력이자 조직을 하나로 모으는 에너지다.

다섯째, 파격적인 인사 혁신이 이루어졌다. 연공서열이 아닌 능력중심의 인사와 연봉제의 근간이 만들어졌다. 생산성 격려금 등 능력과 실적에 따른 보상체계가 구축되었다. 여성들의 처우도 남성과 동등하게 되었으며 ‘여성전담팀’도 이 때 만들어졌다. 

삼성그룹 최초의 부사장을 역임한 ‘프로는 아름답다’의 최인아 카피라이터가 발탁된 것도 바로 이때다. 완전한 사업부 책임제가 이루어져 사업부장은 많은 재량과 함께 엄격한 책임이 부여되었다.

여섯째, 모든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임원들의 현장근무제가 도입되었다. 1주일의 이틀 이상은 현장에서 근무해야 한다. 삼성계열 보험회사의 ‘찾아가는 서비스’ 광고가 안방극장에 자주 방영된 것도 이때다. 

책상에서 보고만 받는 관습에서 현장의 문제를 직접 파악하고 현장에서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풍토로 전환되었다. 자연스럽게 사무실 안에 있는 시간과 개인의 능력은 반비례 관계가 되었다.

일곱째, 지식경영의 서막이 올랐다. 모든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가 진행되었다. 기록문화가 강조되어 모든 업무를 기록으로 남기도록 독려했다. 당시는 윈도우시대가 아닌 MS DOS시대였다. 복사와 타이핑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많은 자료가 쌓이기 시작했고 정보가 공유되기 시작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정보화의 핵심은 기술여건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콘텐츠다. 대표적인 콘텐츠가 기록물이다.

여덟째, 창의력이 본격적으로 중시되기 시작했다. 제일기획은 광고회사이기에 본래 창의력이 업의 본질이기도 했지만, 여기에 다양한 강화책들이 부가되었다. 협업을 위한 정서적 교감의 목적도 있었던 다른 직군 동료들과 함께 무작정 떠나는 2박3일 ‘신사고여행’, 각 직군의 중간간부급들이 함께 모여 회사현안들을 토론하는 ‘21세기 디자인그룹’, 사원대리급의 경영회의체인 ‘청년중역회의’ 등이 가동되었다.

강영환 정치평론가
강영환 정치평론가

아홉째, ‘관리의 삼성’이라고들 한다. 회사의 경영관리가 엄격하다. 그런데 여기에 직원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덧붙여졌다. 스스로 하루에 무엇을 했는지 ‘타임리포트’를 30분 단위로 쪼개서 써야 한다. 

외국의 저명 컨설팅회사나 로펌들은 고객들에게 시간에 따른 비용청구를 하는데서 배운 조치다. 초기에 직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결국 ‘시간이 원가’임을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열째, 사회적 공헌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사회공헌팀도 만들어졌다. 이때만도 팽배했던 ‘얄미운 삼성’에서 ‘배려의 삼성’으로의 이미지전환이 필요했다. 사회공헌이 인사고과와 회사평가에도 반영되었다. 

많은 미담들이 만들어지고 정보가 공유되면서 조직분위기에도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사회봉사로 훈훈해지는 마음은 업무에도 연결되고 결국 조직에도 공헌한다. 그래서 사회공헌은 조직공헌이기도 하다.

내가 실무자로서 경험하고 느낀 범위 내에서 삼성의 신경영을 10가지로 정리해보았다. 경쟁 환경이 치열한 상황에서 삼성은 최근 위기의식을 느끼고 제2의 신경영을 추진한다고 한다. 아마도 변화가 절실했던 26년 전의 그 정신을 되살리자는 각오일 것이다. 

삼성이라는 기업조직과 대전시청이라는 공무원조직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조직엔 사람이 모여 있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남이 시켜서 하는 변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스스로 해야 한다. 10가지의 변화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그 절실함이 중요하다. 스스로 변화가 절실했으면 좋겠다.

‘나부터 우리함께’ 나우(Now), 지금부터 변하자.

*외부기고자의 칼럼은 본보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