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 법무사

흑가이도(北海島)․ 혼슈(本州)․ 시코쿠(四国)와 함께 일본열도를 구성하는 4대 섬 중 가장 남쪽에 있는 규슈(九州)에는 후쿠오카(福岡)· 사가(佐賀)· 나가사키(長崎)· 오이타(大分)· 구마모토(熊本)· 미야자키(宮崎)· 가고시마(鹿兒島), 오키나와(沖縄) 등 8개현(県)이 있다.

그런데 부산에서 후쿠오카 현과 사가 현까지는 약 180㎞ 거리여서 페리를 타고 3시간이면 갈 수 있다. 또, 남해 바닷가에서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조류에 밀려서 후쿠오카며 사가 현 해안가에 쌓일 정도라고 해류가 흐른다고 하는데, 이런 지리와 해류의 영향으로 규슈지방은 일찍부터 한반도와 교류가 활발했다.

특히 사가 현의 가라쓰시(唐津市)는 예부터 한반도를 거쳐 중국 당(唐)나라로 가는 가라쓰 항은 우리의 태안반도의 당진시와 한자 지명까지 똑같다.

인구 13만 명이 살고 있는 사가 현 제2의 도시 가라쓰 시내에는 서쪽에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출병하던 왜군의 본부였던 히젠나고야 성(肥前名護屋城)이 있고, 시내 북쪽 가라쓰 만(唐津灣)에는 가라쓰성(唐津城)이 있다.

가라쓰성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2년부터 1608년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의 심복 데라자와 히로다카(寺沢広高: 1563~1633)가 쌓은 성으로서 바닷가에 있다고 해서 해성(海城)이라고 하지만, 성의 추녀가 마치 소나무 숲에서 학이 춤추는 것 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마이즈루성(舞鶴城)으로도 불린다.

1. 주차장에서 본 가라쓰성
1. 주차장에서 본 가라쓰성

 후쿠오카에서 JR규슈열차를 타고 가라쓰 역에 내리면, 가라쓰성까지는 도보로 약 20분 거리다. 그러나 우리는 후쿠오카에서부터 렌터카를 타고 다자이후로 가서 다자이후 텐만구와 규슈국립박물관을 돌아본 뒤 가라쓰에 도착했다.

가라쓰성 입구에서 도로 건너편에 무료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앞 도로는 왕복 2차선이지만, 왼편이 급커브인데다가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량으로 교통사고를 막으려고 행인들은 반드시 지하도롤 이용하라는 시장과 경찰서장의 안내문 겸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계단을 내려갔다가 지하도를 건너 다시 계단을 올라가는 짧은 양쪽 벽면에는 가라쓰 성과 관련된 벽화를 컬러 타일로 빽빽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 마치 작은 갤러리 같다.

서울 청계천의 산책로 벽에 정조의 수원화성 행차도를 타일로 그린 것보다 더 알기 쉽게 여행객들에게 가라쓰성을 알려주려는 훌륭한 착상이라고 생각되었다.

가라쓰 성은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간 산꼭대기에 있는데, 안내문은 입구에서 등나무 숲까지 177개, 그곳에서 정상까지 45개 등 모두 222개의 돌계단이 있고, 또 천수각은 5층까지 116개의 계단이 있는데, 천수각까지 올라가면 해발 70m라는 상세한 설명을 그림과 함께 소개한 것이 무척 정성스럽다고 생각되었다.

1-1. 지하도안내문
1-1. 지하도안내문
1-2. 지하도 타일벽화
1-2. 지하도 타일벽화
2. 안내도
2. 안내도
2-1, 성입구 돌계단
2-1, 성입구 돌계단
2-2. 등나무 숲
2-2. 등나무 숲

가라쓰 성을 올라가는 길이 워낙 가팔라서 왼편 담장을 돌아가면, 맨 끄트머리에 정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의 편도 요금은 100엔이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성에서 내려올 때에는 돌계단을 이용했다.  가라쓰성의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천수각을 올라갈 경우에는 입장료 500엔을 내야 한다.

일본은 오랫동안 천황을 명목상 국가의 상징으로 하고, 실제는 쇼군(將軍)이 통치하는 막부가 유지되었는데, 각 지역은 쇼군에 의해서 임명되는 다이묘(大名)와 가신, 사무라이들에 주종관계라는 봉건제가 형성되었다.

또, 성곽은 3구역으로 나누고 이것을 마루(丸)라고 했는데, 마루는 중심이 되는 혼마루(本丸)와 이를 보좌하는 니노마루(二の丸), 산노마루(三の丸) 등으로 나눈다. 니노마루 어전(御殿)에는 영주인 다이묘(大名)가 살고, 산노마루에는 가신들의 저택을 배치했다.

그런데, 성으로 들어가는 곳에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해자를 만든 이외에 성 안에서 니노마루와 혼마루 사이에 또 해자를 만든 것은 다이묘가 심복들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가라쓰 성은 중앙에 혼마루를 배치하고, 그 서쪽에 니노마루, 산노마루를 일렬로 배치한 연곽식 평산성이지만, 그 사이에 해자가 없다.

3. 가라쓰성
3. 가라쓰성
3-1. 성입구
3-1. 성입구
3-2. 내부의 성벽
3-2. 내부의 성벽

1591년 10월 도요토미의 명령을 받은 가토 기요마사와 심복 데라자와는 규슈의 여러 다이묘를 독촉하여 불과 5개월만인 1592년 음력 3월에 히젠나고야성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듬해 4월 조선침략을 단행하면서 가토를 조선침략의 선봉장 세 명 중 한 사람으로 임명했지만, 데라자와는 초대 가라쓰번(唐津藩)으로 임명하여 왜군의 보급과 병력수송 임무를 맡겼다.

그런데 1598년 8월 도요토미가 죽자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주도권 다툼인 세키가하라 전쟁(関ヶ原合戰) 때에는 도쿠가와 편에 섰다. 데라자와는 그 공적으로 나가사키 반도에 있는 아마쿠사 번(天草藩)으로 가증되었는데, 그는 도요토미 생전에 자신과 가토가 함께 쌓았던 히젠 나고야 성의 석재를 뜯어다 가라쓰 성을 쌓았다.

그가 배신의 아이콘인지 현실감각이 뛰어난 처세의 달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가라쓰 동쪽과 육지로 이어져 있던 미쓰시마 산을 육지와 분리해서 마쓰라 강이 가라쓰 만으로 흐르도록 물길을 변경했다고 한다.

그는 영지인 가라쓰와 아마쿠사의 호족들을 혹독하게 탄압하여 그가 죽자, 1637년 아마쿠사에서 일본 최대의 반란인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島原・天草の乱)이 일어났다.

가라쓰 성은 왕정복고 직후인 1871년 폐번치현(廢藩置県)으로 성이 폐지되고 민간에 불하되었다가 마이즈루 공원으로 바뀌었다. 가라쓰성은 1966년 모의천수를 비롯하여 성문, 망루 등을 재건했는데, 천수각은 2층은 기념품판매점, 3층과 4층은 가라쓰 성 유적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5층 천수각에 올라가면 가라쓰 앞바다는 물론 날씨가 맑으면 멀리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4. 천수각에서 본 가라쓰시내
4-1. 가라쓰시내
4-1. 천수각에서 본 가라쓰시내
5. 가라쓰성 전경
5. 가라쓰성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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