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 관리 '사각지대'...공공조형물 지정 '시급'

지난 28일 오전, 대전 평화의 소녀상 꽉 쥔 두 주먹 위에 쓰레기 더미가 놓여있다. [사진=정인선 기자]

대전 보라매공원에 건립된 ‘평화의 소녀상’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수난을 당하고 있다. 소녀상에 일장기가 꽂히는가 하면 쓰레기 더미를 올려놓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시민들이 모금을 통해 건립하기는 했지만 법적으로 공공조형물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오전 대전 평화의 소녀상 위에서 쓰레기 더미가 발견됐다. 소녀상이 쓰레기 더미를 무릎 위에 올려 안고 있는 모습이어서 단순한 쓰레기 투기를 넘어 누군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국에 건립된 소녀상 대부분은 시민 모금으로 세워졌지만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보호·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자치단체가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이다. 

전국 118곳에 세워진 소녀상 가운데 공공조형물로 지정된 곳은 28곳(올해 2월 기준)에 불과하다.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보호를 받는 곳은 4곳 가운데 겨우 1곳 정도인 것.

대전 평화의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은 이제 막 시작됐다. 지난 2015년 3월 1일 대전 보라매공원에 건립된 이후 4년여 만이다. 소녀상 건립을 위해 전면에 나섰던 ‘평화나비 대전행동’과 양대노총 대전본부는 오는 8월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과 함께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하기 위해 대전시의원 등을 접촉하고 있다. 

오민성 ‘평화나비 대전행동’ 사무처장은 “오는 8월 보라매공원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우고, 소녀상과 노동자상을 공공조형물로 등록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동시에 보라매공원을 ‘평화공원’으로 개명해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교육의 장소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 처장은 “2017년 3월 대학 입학을 앞둔 10대 청소년이 대전 소녀상에 일장기와 욱일기를 꽂는 일이 벌어져 경찰이 수사한 바 있다”며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대표적 조형물인 만큼 공공조형물로 지정해 법적인 관리·보호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편성해 소녀상을 관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소유권이 시민단체에서 지자체로 넘어가게 되며, 공공조형물 지정·관리 조례에 따라 지자체가 안전한 관리는 물론 주기적인 점검도 해야 한다.

현재 일부 지자체는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해 관리·보호 중이다. 강원 원주시는 2015년 6월 전국 최초로 평화의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했다. 강원 속초시는 2017년 소녀상 설치 전에 미리 공공조형물로 지정하고, 해마다 예산을 세워 소녀상을 관리·보존 중이다.

소녀상 훼손은 대전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 1월 11일 대구 50대 남성이 소녀상 앞에 꽃과 쓰레기가 많아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소녀상 얼굴에 낙서해 경찰에 입건됐다. 2016년 9월 제주에서는 소녀상 옆 ‘빈 의자(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의 빈자리를 의미)’ 위의 방석이 흉기로 난도질당한 채 발견됐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2016년 6월 한 여성에 의해 망치로 훼손됐고, 2012년에는 일본 극우단체 회원이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적은 말뚝을 박기도 했다.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등록해 법적인 관리·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이유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