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아리타 마을 도잔 신사
[120] 아리타 마을 도잔 신사
  • 정승열
  • 승인 2019.06.24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승열 법무사
정승열 법무사

규슈 지방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가까워서 일찍부터 교역한 흔적이 아주 많다.

특히 규슈의 북부 지역인 후쿠오카 현과 나가사키 현 사이에 있는 사가 현(佐賀県)은 규슈 지방의 교통의 중심지인데,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납치된 도공들에 의해서 발달한 도자기 마을 아리타(有田), 이마리(伊万里)가 있다.

특히 사가 현의 대표적인 도시 가라쓰(唐津)는 중국 당으로 가는 항구이자 온천으로 유명하지만,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인 ‘가라쓰 도자기’의 산지이기도 하다.  16세기에 도자기를 생산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중국, 조선, 베트남 3국뿐이었다.

 당시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막부는 문화선진국인 조선과 중국의 선비들처럼 차를 마시면서 좋은 차 그릇을 수집하는 다도문화(茶道문화)를 신분의 척도로 여길 정도였는데, 조선에 상륙한 왜군들은 보잘 것 없는 일본 토기보다 월등히 질이 좋은 조선의 찻잔, 주전자 등 다양한 차기(茶器)에 놀라 처음에는 차기 약탈에 혈안이 되더니 나중에는 아예 도공을 납치해 갈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그렇게 왜군에게 끌려간 조선의 도공만 5만 명이 넘었다.

1. 도잔신사 입구
1. 도잔신사 입구

1-1. 도리이
1-1. 도리이

1-2. 도잔신사 소개
1-2. 도잔신사 소개

1-3. 도잔신사 본전 계단
1-3. 도잔신사 본전 계단

대표적인 인물이 공주 계룡산 아래서 끌려간 이삼평과 전라도 남원에서 끌려간 박평의(朴平意), 심당길(沈当吉) 등이었다. 특히 정유재란 때인 1596년 왜군에게 끌려간 조선인 도공 이삼평(李參平)은 ‘일본 도자기의 시조(陶祖)’로 추앙받고 있지만, 조선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다만 일본 가네가에(金ヶ江) 가문의 족보에 따르면, 그의 본래 성은 이씨이고, 산베에(三兵衛)라는 이름으로 보아서 삼평(參平 혹은 三平)으로 추정하고 있는 정도이다.

 오늘날 일본 도자기산업의 메카가 된 아리타 마을은 후쿠오카에서 차로 약 1시간가량 떨어진 산골 마을이다. 주민은 약 22,000명이 살고 있으나, 국도 35호가 동서로 횡단하고, 후쿠오카와 도시권을 잇는 국도 202호가 남북으로 있고, 또 JR 사세보선이 동서로 횡단하여 이마리와 아리타를 연결하는 마츠우라 철도가 남북을 다니고 있다.

2. 도잔신사 본전 도리이
2. 도잔신사 본전 도리이

 JR아리타역에서 JR우에아리타역(上有田驛)에 이르는 약3㎞ 구간의 도로 양쪽에는 도자기 판매점이 줄지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1896년부터 지금까지 100년 이상 매년 5월에 국제 도자기 시장이 열리고 있다.

우리가 후쿠오카에서 렌터카로 다자이후로 가서 다자이후 텐만구와 규슈국립박물관을 둘러보고, 아리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석양 무렵이었다.

 공주 계룡산의 동학사 아래에서 도자기를 굽던 20대 청년 도공은 조선침략의 선봉장 중 한 사람인 가토 기요마사의 부장이던 지금의 사가 현인 나베시마번(鍋島藩)의 번주(藩主)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538~1618)에게 끌려와서 오기군(小城郡) 다쿠촌(多久村)에 살았다.

그가 일본 성씨로 귀화하고, 또 산베에라는 군사 직위를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아마도 조선에서 왜군의 길잡이 노릇을 하다가 국내에서는 살 수 없게 되자 퇴각하는 왜군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순왜(順倭)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은 1990년 일본인들이 공주 박정자삼거리의 조각공원에 ‘도공 이삼평 기념비’를 세우면서 비문에 임진왜란 때 ‘자발적으로’ 건너간 것으로 표기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 비는 2016년 10월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2-1. 도잔신사 본전
2-1. 도잔신사 본전

2-2. 자기로 만든 안내문
2-2. 자기로 만든 안내문

 아무튼 그는 다쿠촌에 살면서 질 좋은 도지기 원료인 고령토를 찾아다니다가 1616년 아리타 조하쿠천(上白川)의 이스미산(泉山)에서 고령토를 발견하고, 이곳에 정착해서 ‘덴구다니요(天狗谷窯)’를 만든 것이 일본도자기의 시초였다.

  당시 국제 정세는 임진왜란 후 대륙에서 명이 망하고 청이 건국되던 혼란기여서 중국도자기의 수출이 부진해지자, 나가사키에서 일본인들과 교역하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1650년 이삼평이 만든 백자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아리타 마을에서 12㎞ 떨어진 이마리 항을 통하여 유럽에 첫 수출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아리타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아리타 도자기를 수입한 독일 작센 황제는 장인들에게 아리타 자기 처럼 만들 것을 명령하여 18세기 초 유럽 최초로 마이센 자기(Meissener Porzellan)가 탄생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명품도자기로 인정받고 있다.

 1656년 8월 이삼평이 죽자, 일본인들은 백자를 처음 만든 그를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하여 1658년 도잔신사(陶山神祀)를 세웠다. 아리타 마을 뒤로 난 철도를 건너면 이삼평을 모신 도잔신사인데, 원래 오진 천황(應身)을 모시던 신사를 도공 이삼평의 신사로 명칭이 변경하면서 오진 천황을 함께 모신 것이다.

도진 신사는 도자기 신을 모시는 신사답게 도리이(鳥尾)부터 안내문 등 모든 것을 자기로 만들었으며, 매년 5월 도조 이삼평의 도조제(陶祖祭)를 지내고 있다.

또 도진 신사에서 가파른 산길을 약 300m쯤 올라간 산 정상에는 1916년에 세운 ‘도조 이삼평의 공적비’가 우뚝 솟아있다. 이로서 일본인들이 이삼평을 얼마나 존경하고 신격화 하고 있는지 잘 알게 된다. 이곳에서는 아리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3. 도공이삼평비 입구
3. 도공 이삼평비 입구

3-1. 이삼평비 가는길
3-1. 이삼평비 가는길

3-2. 산정상의 도공이삼평 비
3-2. 산정상의 도공 이삼평 비

4. 도공이삼평비에서본 아리타마을 전경
4. 도공 이삼평비에서본 아리타마을 전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