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준 에트리 원장 ‘아파트 인문학 콘서트’ 강연

4차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낙관과 비관이 엇갈린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걱정도 있고, 일하는 시간은 줄고 여가 시간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있다. 낙관론자들은 기술이 발달해도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고 보기 때문에 일자리 걱정은 덜 하는 편이다. 과연 어떤 예측이 옳을까?

둔산 아파트에서 열리는 인문학 콘서트

8일 오후 대전 둔산의 한 아파트에선 이런 궁금증에 답해주는 인문학 콘서트가 열렸다. 한범 동양인문학연구소가 마련한 ‘아파트 인문학 콘서트’다. 회원들은 줄여서 '아인콘'라고 부른다. 송인창 대전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아파트(국화우성아파트 505동 106호)를 강의실로 만들어 매월 한 차례 여는 콘서트다.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이 아파트 인문학 콘서트에서 제4차산업혁명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이번 아인콘은 출범 5주년 60번째로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이 강사로 초청됐다. 주제는 '4차산업혁명의 현주소'였다. 우리나라의 4차산업혁명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는 과연 어떨 것인지를 이 분야 최전선에 서 있는 최고 전문가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지난 2월 17개국 대사관에서 했던 강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으나 참석자들은 ‘저자 직강’의 생동감 넘치는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김명준 원장은 4차산업혁명을 ‘디지털 탈바꿈(Digital Transformation)’으로 부른다. 그가 원래 부르고 싶은 이름은 ‘디지틀 변태(變態)’였다. 변태는 애벌레가 나비로 바뀌는 것처럼 모습을 완전히 바꾼다는 뜻이어서 의미로는 가장 적합한 용어지만,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있어 포기했다고 한다. ‘변태’는 4차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변화의 폭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김 원장은 4차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을 ‘ABCi’ 4자로 요약했다. AI(인공지능) B(Big data) C(Cloud) i(iot)를 말한다. 이 기술들이 제조 교육 의료 항공우주 쇼핑 자동차 소프트웨어산업 금융 유통 에너지 등 전분야 막강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는 '탈바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 에너지 파란불, 교육 의료 제조업은 빨간불

탈바꿈의 속도는 분야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김 원장은 이를 신호등에 비유했다. 금융 유통 에너지 분야는 이미 4차산업혁명의 푸른 신호등을 받고 질주하기 시작했고, 쇼핑이나 자동차 분야는 노란불로 아직은 본격 질주를 못하는 상태이며, 제조업 교육 의료 분야는 아직도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상태로 진단했다.

에너지 분야에서 속도를 내는 것은 컴퓨터 기술이 아니라면 고갈될 수밖에 없는 석유를 슈퍼컴이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시장의 경우 이미 인공지능이 도입돼 있지만 빨간불로 분류한 것은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데서 빈부의 차가 크기 때문이다. 교육은 기술 보급의 보편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이 결국 미래를 크게 바꿀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다만 그 혁명이 가져올 파급효과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적 견해가 갈린다. 대체로 이 분야 기술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데 비해 기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제학자 사회학자 등은 부정적인 편이라고 김 원장은 말했다.

4차산업혁명의 파급효과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지만 대체로 기술을 이해하면 긍정적, 이해하지 못하면 부정적인 편이라고 한다. 부정적 사람도 기술을 이해한 뒤에는 긍정적으로 바뀐다고 김명준 원장은 말한다.
4차산업혁명의 파급효과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지만 대체로 기술을 이해하면 긍정적, 이해하지 못하면 부정적인 편이라고 한다. 부정적 사람도 기술을 이해한 뒤에는 긍정적으로 바뀐다고 김명준 원장은 말한다.

‘미래 전망’, 기술 이해하면 긍정적 이해 못하면 부정적

엔지니어인 김 원장도 긍정 입장이다. 금년 4월 ETRI 원장으로 온 그는 서울대 공대를 나와 카이스트를 거쳐 프랑스 낭시제1대학에서 전산학을 공부했다. 데이타 베이스가 전공이다. 4차산업혁명 기술의 한 축인 빅데이터는 데이터 베이스가 뿌리다. “빅데이터는 데이터메이스의 이름이 바뀐 것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3년 전 4차산업혁명에 대한 논란은 그에게도 혼란스웠다. '검증'해볼 필요가 있었다. "4차산업혁명이 오면 직업이 없어지고 대혼란이 올 것이라는 부류와 이제야 비로소 노동에서 해방되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는 부류로 의견이 갈렸다." 그는 부서 직원들에게 관련 정보를 다 꺼내놓고 분류해보자고 했다. 기술을 이해하면 긍정적, 이해하지 못하면 부정적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부정적인 사람도 기술을 이해한 뒤에는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것도 이젠 알게 됐다.

이런 긍정적 전망을 반영하듯 미래 일자리 전망도 달라지고 있다. 3년 전엔 인공지능 때문에 지구에서 일자리가 100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으나 지금은 새로운 일자리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고 했다. 그 후 그는 4차산업혁명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자연과학도의 단순한 직관에 불과한 것인지 한 미래학자에게 물었더니 "(긍정적 전망이) 당연하다"며 인정해주었다고 한다.

당분간은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으나 결국 사람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 원장은 이에 대한 근본 대책은 기본소득같은 사회안전망밖에 없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5000만 인구가 1인당 '기본소득' 70만원(3인 가구 200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받을 경우 국가재정에서 30~40 조원만 늘리면 가능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이미 지급받고 있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소득’을 다 내놓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고, 따라서 사회적 타협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추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본소득 부분은 경제나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언급할 내용이나 아파트 인문학이어서 사견을 전제로 조심스레 언급했다.)

4차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 해체’와 ‘새 기업의 탄생’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떻든 4차산업혁명은 이미 우리 곁으로 달려오고 있다. 김 원장은 4차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디지털 신(新)풍경'도 소개했다. 다른 나라 사례는 많이 소개되고 있으나 국내 사례 연구는 드문 편이어서 김 원장은 국내 사례 발굴에 노력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은 입고 먹고 자는 일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의-식-주'로 구분해서 탐색해봤으나 '의' 분야에선 아직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송인창 대전대 명예교수의 둔산 아파트(국화우성 505동 106호)에서 매월 둘째 토요일에 열리는 ‘아파트 인문학 콘서트(아인콘)’는 ‘아파트의 온기가 있는 열린 공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래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네 번째(한가운데)가 송인창 대전대 명예교수.
송인창 대전대 명예교수의 둔산 아파트(국화우성 505동 106호)에서 매월 둘째 토요일에 열리는 ‘아파트 인문학 콘서트(아인콘)’는 ‘아파트의 온기가 있는 열린 공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래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네 번째(한가운데)가 송인창 대전대 명예교수.

김 원장이 말하는 4차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 해체’다. “과거엔 한 공장 안에 모든 공정이 모여 있었으나 이젠 공장 안의 모든 과정이 분리되어 새로운 기업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를 '언번들링(Unbundling)'이라고 하는데 구글을 쳐보면 많은 사례들이 나온다. 택배회사인 페덱스(Fedex)가 대표적인 사례다. 고래가 해체되듯 완전히 해체되어 새로운 기업들로 탄생했다. 은행도 그렇게 가고 있고, 자동차도 조립과 디자인만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김 원장은 또 택배 시스템을 확 바꾼 '브룽(Vroong)', 신선한 돼지고기를 배달하는 '정육각', 신선한 야채를 배달하는 '만나 CEA', 인테리어 공사를 도와주는 '집닥', 기업체의 전력 수요를 관리해주는 '그리드위즈', 참치 양식에 성공한 홍진실업 등을 4차산업혁명이 낳은 디지털 신풍경으로 소개했다. 모두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의 기술에 힘입어 탄생한 새로운 기업모델이다.

“4차산업혁명 때문에 인문학의 토대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한 참석자의 우려에 김 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매킨지는 인간 어날리스트 2000명을 내보내고 6명만 남겼다. 운전기사 등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직접 접촉해야 하는 직업, 가령 심리학자 교육자 등은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인문학적 요소는 위협을 덜 받는다는 얘기다. 나중에는 '가치'를 다루는 문제가 핵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무슬림 가치를 심은 로봇, 기독교 가치를 심은 로봇도 나올 수 있다. 이런 문제는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기자는 이날 처음 가본 ‘아인콘’이었으나 적지 않은 회원들이 예전부터 아무데서나 듣기 어려운 강의를 동네 아파트 거실에서 듣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아파트의 온기가 있는 열린 공간’으로 토론도 있고 음악도 있는 콘서트라고 한다. 송인창 교수는 누구든 환영이라며 연락처를 공개해도 좋다고 했다. (송인창 교수 010-8842-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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