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74] 태업하며 세비 챙기는 국회의원은 자격 있나

방송인 김제동 페이스북.
방송인 김제동 페이스북.

대전시 대덕구가 방송인 김제동 씨를 초청해 진행하려던 청소년 대상 행사를 취소했습니다. 당초 강연대상은 지역 중‧고등학생과 학부모 등 1600여명이었는데요. 보수성향 정치권과 언론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무산됐습니다.

특히 보수 정당은 김 씨를 ‘좌편향 방송인’이라고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았습니다. 또 90분 강연에 1550만원을 받는 것도 과하다는 겁니다. 대덕구 재정자립도(16%)도 꼬투리 잡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행사 취소를 어떻게 보십니까. 개인적으로 대덕구가 마련한 이번 행사가 왜 정치공세를 받아야 하고, 취소까지 했어야 했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행정이 다양한 의견과 정체성을 가진 주민들의 요구를 100% 만족시킬 순 없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다수 의사와 공익적인 면을 감안해 사업을 진행합니다. 강연 내용과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습니다. 지역의 어떤 시의원은 '주체사상 교육이라도 시키겠다는 거냐'고 일갈하기도 했는데요. 김제동 씨와 주체사상이 도대체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방송인도 정치성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인 김제동 씨가 좌편향적 주장이나 주체사상 등을 입에 담았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김 씨가 촛불집회에 나가 헌법강의를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대한민국 헌법가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좌편향이고, 주체사상이라는 걸까요? 비논리가 논리를 질식시키고 있는 현실입니다.   

다음으로 김 씨 강의료 1550만원(부가세 포함)이 고액이라는 부분인데요. 어떤 정치인은 그 돈을 시간 단위로 쪼개 “알바생 1856명을 1시간 씩 고용할 수 있는 돈”이라고 합니다. 물론, 산술적으로 따지면 그런 계산도 나오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문화와 교육 사업을 ‘돈’이라는 물질과 비교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유명 인사를 데려다 1시간 반 동안 웃고 떠들고, 사진도 찍으면서 학업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앎의 즐거움을 전달한다면 1550만원이 ‘고액’이라는 생각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또 아이들의 그런 행복한 모습을 곁에서 함께 박수치며 지켜볼 학부모들은 얼마나 흐뭇할까요?

혹시, 김제동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보셨나요? ‘힐링캠프’와 ‘톡투유’ 같은 방송에서 그는 시청자와 방청객들에 ‘공감’과 ‘소통’을 전달했습니다. 그렇다보니 그의 토크콘서트 장은 청년들로 가득 찹니다. 그 돈으로 알바생 1856명이 1시간 일할 순 있겠지만, 1시간 뒤 일자리는 누가 책임져야 하나요. 어쩌면 그 알바생들도 김 씨 강연을 보면서 고단한 마음을 잠시 치유 받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김 씨 토크콘서트 입장료가 7만~8만 원 정도라니 이번 강사료가 그리 비싸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열악한 대덕구 재정자립도에도 국비로 받은 예산을 허투루 쓴다는 주장인데요. 이 부분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생활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도 가끔씩 ‘외식’할 수 있는 겁니다. 외식비를 줄이면 가계에 보탬은 될지 몰라도 ‘집 밥’만 먹으면 질리잖아요. 고급 레스토랑은 아니어도 이따금 소갈비도 먹고, 양장피도 먹고 살아야 ‘인간다운 삶’ 아니겠습니까. 비싼 음식을 먹더라도 맛이 있으면 돈이 아깝지 않고 다음번에 또 가고 싶은 법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김 씨를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려 일할 기회를 박탈하고, 먹고 살기 어렵게 만든 정치 집단이 누구입니까. 그래도 그는 그들을 향해 불만도, 비난도, 막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정치적 색깔을 밝힌 적도 없습니다.

저보고 누가 그랬어요. “넌 새누리당이냐? 민주당이냐?”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난 무가당이다. 아무것도 나한테 첨가하지 마라!” “좌파냐? 우파냐?” 그래서 “나는 기분파다” 그랬어요. 아니, 좌파, 우파가 어디 있어요? 좌냐? 우냐? “너 칼 쓰냐? 창 쓰냐?” 이런 얘기 아니에요? 칼이든 창이든 들고 전투를 하는 것이 진짜 용장이죠. 그러니까 좌든 우든 칼이든 창이든 양쪽에 들고 대한민국에 이득이 되는 행위를 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칼 쓰는 놈은 안 돼?” “창 쓰는 놈은 안 돼”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죠. 《김제동,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김제동의 헌법독후감. 나무의 마음, 2018》

민생 경제 위기와 청년 일자리 중요성을 아는 국회의원이라면 본업에 충실해야 합니다. 몇 달째 태업하면서 국민 세금은 꼬박꼬박 챙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이 때때로 무료 강연도 하고, 번 돈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는 김 씨를 욕할 자격이 있을까요. 보수정당의 비난은 지지층 가세로 이어졌습니다. 관련 기사나 대덕구 홈페이지에는 김 씨 강연을 비난하는 댓글이 차고 넘쳤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고 했는데요. 여야와 보수‧진보 진영이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정치‧사회적 현실에서 ‘통합’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보수정당은 어이없고 안타깝게도 ‘김원봉’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누구나 보수적이기도 하고 진보적이기도 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의 역사가 모두 함께 어울려 있습니다. 상대의 정치적 성향을 존중하고, 이해와 포용의 노력으로 국민을 통합하는 노력이 오늘의 정치가 할 일입니다.

저는 김 씨를 한 번도 본적 없습니다. 그가 방송에서 하는 말을 듣고, 직접 쓴 책만 읽어봤을 따름입니다. 정치권의 ‘막말 퍼레이드’보다 그의 말 한마디, 글 한 줄이 어쩌면 세상살이에 지친 국민들에 ‘애국’하는 길 아닐까요. 모처럼 대전을 찾으려던 김 씨나,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김 씨를 초청하려던 대덕구나 욕먹고 비난받을 행사는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김 씨 강연을 오매불망 기다려온 청소년들이 가졌을 실망감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 씨는 행사 취소에 미안함을 전하면서 청소년을 위한 별도후원을 약속했습니다. 국민과 한 약속은 어기기 일쑤고, 책임조차 안 지려는 정치인보다 김 씨가 1550배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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