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혼자 말처럼 중얼거리며 무겁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권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팔을 떨구었다.

알렉세이는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뒷모습을 감추었다.

채린이 살아 있다니

그러자 긴장됐던 근육이 일순간에 물먹은 휴지같이 맥이 풀렸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권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팔이 늘어졌다.

채린이 정말 살아있을까?”

눈물이 울컥 솟구쳤다. 그녀를 찾아 지금까지 숨 막히게 달려온 순간들이 우박같이 쏟아졌다.

채린의 실종을 알렸던 따냐의 다급한 전화와 블라디미르 선상호텔에서 있었던 하스볼라토프 홍의 죽음, 쥐들이 물결치던 심문실의 어둠, 극동대의 텅 빈 기숙사, 비밀 홍등가의 신음소리, 우수리스크의 앞에서 만났던 야마모토, 중국계 마피아들, 따냐와의 밀월, 호텔에서 빚어졌던 알리에크의 처참한 죽음, 루스 카야 이즈바의 사내, 박 인석의 난자 살해된 피사체…….

이런 모든 것들이 한편의 파노라마 영상같이 그려졌다.

더욱이 간절했던 채린의 모습이 오롯이 골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여보. 난 당신 없이 단 한순간도 살 수가 없어.”

정말?”

그럼, 내게 있어 당신과 관이는 모든 것이나 다름이 없어. 내가 왜 이렇게 밤낮없이 뛰어 다니겠어.”

그래요. 하지만 나는 정말 당신이 나만을 사랑하고 있을까를 의심할 때도 있어요. 왜 그런지 몰라.”

그렇게 생각 하지 마. 내가 항상 당신 곁에 이렇게 있잖아.”

당신이 내 곁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당신이 내 곁을 떠나면 나는 당신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아니야. 정말 당신은 나만을 사랑해야해.”

그럼.”

내가 죽어도 나만을 사랑할 수 있지?”

그렇다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배신해도 나만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야.”

여보. 고마워요.”

눈을 감았다. 채린이 내 목을 끌어안았다. 뜨거운 입술이 갈증을 더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거실 한편에 놓인 장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보? 정신 차려.”

…….”

여보? 정신 차리라니까?”

나는 갓 건져낸 빨래같이 힘없이 두 팔을 떨어뜨린 채린을 끌어안고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간호사. 살려주세요. 의사 선생님은......?”

왜 그러세요?”

하혈을 했어요. 하혈을. 너무 피를 많이 흘렸어요.”

언제부터?”

간호사는 다급하게 채린을 침대에 눕히고 당직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부터 하혈을 했냐니까요.”

몰라요. 어제부터 하혈을 했다고 들었는데…….”

이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말 이예요?”

…….”

의사선생님이 이리로 오고 계시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환자를 바로 눕혀 주세요. 시트를 발아래 놓고……. 아니 발을 높여 주세요.”

하혈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지혈제를 주사했으니까 조금은 좋아질 거예요.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어요. 너무 많은 피를 흘리셨어요.”

흰 가운을 엉성하게 걸친 당직의사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