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60]
탈북자 [160]
  • 이광희
  • 승인 2019.05.29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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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렉세이의 별장 거실로 들어갔을 때 그는 사각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꼴레뜨네프와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은 눈싸움을 하듯 말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응시할 뿐이었다. 눈빛이 마주치자 섬광이 번득였다.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초원의 왕좌를 놓고 으르렁거리는 두 마리의 수사자를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의 눈빛은 맹렬했고 사나웠다. 주체하기 힘든 긴 침묵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알렉세이는 미간을 얇게 찌푸리고 연신 회갈색 눈알을 번득이며 마주앉은 꼴레뜨네프를 노려봤다. 그는 내가 성난 모습으로 거실에 들어선 것조차 개의치 않았다.

알렉세이는 꼴레뜨네프의 속마음과 그의 생각, 그리고 그의 모든 것을 읽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눈빛으로 깊은 내면의 세계를 엿보고 있었다. 바이올린 E현처럼 긴장감이 계속됐다. 파릇한 살기가 어슴푸레 감돌았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문간에 서서 쉭쉭 그렸다. 그의 별장에 도착하는 즉시 알렉세이의 머리에 총을 들이댈 계획이었다. 하지만 숨막히는 긴장감 앞에 선 내 모습은 생각과 달랐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침몰할 것 같은 분위기에 눌려 거친 숨이 이내 목안으로 기어들었다. 온 몸이 순식간에 석고처럼 굳어 갔다.

그때 꼴레뜨네프가 눈빛을 피하며 두서없이 말을 내뱉었다.

조직을 위해서였소. 나도 하나의 독립된 조직을 갖고 싶었다고. 알렉세이 당신은 패밀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나 알아. 앉아서 군림만 해 왔지 한 것이 뭐가 있소. 조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나 해?”

“......”

알렉세이는 말이 없었다.

알렉세이 당신은 당신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는 위선자야 위선자.”

“.........”

여전히 말이 없었다.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나 없이 혼자서 이 조직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

꼴레뜨네프의 발작적인 독설이 한차례 태풍같이 지나가자 별장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폐허 같은 적막 속에 긴장은 한동안 계속됐다.

호흡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만큼 턱밑까지 차올랐을 때였다. 꼴레뜨네프가 달뜬 목소리로 다시 말을 토했다.

알렉세이! 내가 잘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았습니까? 목숨을 걸고 …….”

하지만 알렉세이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회갈색 눈빛은 갈수록 광체를 더하며 선명해 지고 있었다. 강한 불길에 달구어진 텅스텐같이 숨 막히는 열기를 더욱 거세게 뿜어냈다.

제발 .알렉세이

꼴레뜨네프는 순간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흐느끼며 알렉세이의 구두에 입술을 비볐다. 연신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마룻바닥에 못자국 같이 묻어났다.

제발. 제발......”

꼴레뜨네프는 발아래 엎드려 그의 발목을 잡고 애원했다.

그의 모습은 비굴할 만큼 처절했고 역겨웠다. 얄팍한 입술 사이로 보이던 늑대 같은 이빨도, 죽음 앞에서도 전혀 흩으러 질 것 같지 않았던 그의 첫인상도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꼴레뜨네프가 애원하면 할수록 알렉세이의 눈빛은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작렬하는 햇살같이 자신의 발아래 무릎을 꿇은 꼴레뜨네프를 녹여 버릴 듯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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