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59]
탈북자 [159]
  • 이광희
  • 승인 2019.05.27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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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피가 얼굴로 치솟았다. 모든 것이 어수선했다.

김천수의 말처럼 박 인석을 살해한 것도 그였을 거야. 그가 나를 만나기 위해 기바리쏘워로 온다는 것을 야로슬라브가 보고하자 즉시 친위대란 놈들을 시켜 살해토록 했을 거야. 박 인석이 자신들의 뒷얘기를 너무 많이 알게 되자 그를 살해했을 거야. 또 그는 박 인석 그리고 채린마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리만큼 잔인하게.......’

나는 알렉세이를 만난 뒤 취해야 할 행동을 시나리오를 적어 내려가듯 치밀하게 구성했다.

우선 그의 별장에 들어간 다음 나는 생경한 얼굴로 권총을 들이대고 그를 노려본다. 그러면 그는 나의 표정을 보는 순간 적잖게 놀랄 것이다. 그는 거친 숨을 내몰며 내게로 달려와 손에 들려진 권총을 낚아채려 할지도 모른다. 순간 나는 몸을 피하며 그의 머리통에다 권총을 들이대고 멱살을 잡아채며 거실 구석에 있는 소파 난간에 걸터앉게 한다. 그는 내게 왜 이러는 거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또 영문도 모르는 것처럼 어벙하게 나를 올려다 본다. 그 때 나는 고슴도치처럼 머리털을 세우고 입닥쳐.’라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당장 알렉세이의 머리에 권총을 갈겨 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그의 머리가 수박같이 퍽 하는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나는 모양을 구경하고 싶다는 잔인한 생각이 장대비같이 쏟아졌다.

내가 더욱 격하게 채린을 왜 살해했느냐고 몰아세우면 그는 순간 얼굴 색을 바꿀 게다. 내 행동을 심상찮게 느낀 뒤 곧바로 표정이 바위같이 굳어지며 독을 문 표정으로 도리어 나를 노려볼 거다. ‘네가 드뇸을 추진했고 그러다 채린이 장애물로 나타나자 없애 버렸지라고 말하면 그는 모른다고 시치미를 뗄 거야. 나를 감시하기 위해 내게 야로슬라브를 보냈고 또 중국계 승용차가 우리를 추격한 것도, 알리에크와 박 인석을 살해한 것도......’

혈압이 계수를 올리며 치솟았다. 나는 어느새 숨을 몰아쉬며 장전하던 손을 멈추고 신경질적으로 허공을 향해 총구를 치켜들었다. 팔에 힘이 들어갔다. 정신을 가다듬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제했다.

미스터 쟝이 데려간 채린을 어떻게 빼돌려 살해했을까. 김천수의 추측처럼 미스터 쟝이 배신을 했을까

나는 총구를 만지작거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가 뒤섞여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순간 내가 과연 그의 정수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풀썩 제자리에 내려앉았다. 혼자 이곳 마피아의 보스를 처단할 수 있다는 자신이 서질 않았다. 알렉세이가 채린과 박 인석, 그리고 알리에크와 또다른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확신을 얻었으면서도 처단한다는 데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권총을 테이블에 던졌다. 그러자 권총에 촘촘히 박힌 황금빛 실탄이 나의 심장 근육을 강하게 당겼다.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삑삑 거리는 메가폰같이 격앙된 목소리로 김 부총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알렉세이를 만나러 갈 겁니다.”

잠시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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