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충북 오송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충북을 방문해 바이오헬스 산업을 수출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충북 오송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충북을 방문해 바이오헬스 산업을 수출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청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강호축은 국토균형발전의 일환”이라며 강호축 개발을 강조했다. 강원~충청~호남을 잇는 ‘강호축(江湖軸)’은 충북이 내세우고 있는 국가발전 전략이다. 대통령이 이 용어를 그대로 받아 의미를 부여하고 강조한 것이다. 대통령은 지방을 순방할 때 으레 그 지역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는다. 대개는 대통령의 립서비스에 불과하지만 ‘강호축’ 발언은 무게감이 다르다.

강호축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부합하는 데다, 이미 예타면제사업 등을 통해 강호축 구축 사업이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호축은 호남선과 충북선을 통해 북한과 러시아로 진출하는 유라시아 철도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철도 사업에 적극적인 문재인 정부와 궁합이 잘 맞는다. 지난번에 1.5조 원 규모의 충북선고속화사업을 예타면제로 승인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예타면제 사업에서 충북이 따낸 성과는 이것만이 아니다. 평택~오송복복선화, 세종~청주고속도로, 제천~영월고속도로, 충주~문경고속화철도 연장 등은 다른 지역에서 신청된 것이지만 그 수혜의 절반은 충북의 차지다. 이런 사업들까지 합하면 충북의 수혜 규모는 6조 6000억 원에서 최대 12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대전 4000억 원). 예타면제 총 예산의 21%에서 많게는 42%에 이른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예타면제 사업이 발표되자 “충북은 잘 되는 집이다. 충북은 대박을 터뜨렸다”며 기뻐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강호축’을 언급하면서 충북이 그린 그림은 척척 현실이 돼 가고 있다. 충청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를 보낼 일이나 대전시민 입장에선 축하만 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된다. 강호축은 우리나라의 교통지도가 대전 중심에서 충북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대전 ‘경부축’ 아닌 ‘강호축’ 맞나

‘강호축’은 시사상식 사전에도 올라 있을 만큼 충북이 야심차게 준비한 충북 발전 전략이다. ‘충북도가 2014년 최초로 제안한 초광역 국가발전전략이며, 반세기 가까이 경부축 중심의 국토개발 정책으로 인해 소외되었던 호남과 충청 강원 등의 강호축을 연결하는 국가발전전략’으로 소개돼 있다. 여기에서 대전은 경부축이 아니라 강호축 도시에 들어가 있다. 경부축엔 서울 대구 부산 등을, 강호축에는 강원 충북 세종 대전 충남 광주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대전을 강호축에 넣은 것은 대전도 강호축 개발의 수혜자란 뜻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지금으로선 수혜보다 피해 우려가 크다. 

강호축 발전 계획(출처 : 충청북도)
강호축 발전 계획(출처 : 충청북도)

대전은 경부축과 호남축의 교차점으로 발전해온 도시인데 새로운 강호축이 구축되면 호남축이 떨어져 나가면서 경부축의 일개 도시로 남게 된다. 호남축에 비하면, 강호축에서 대전은 패싱 지역에 불과하다. 호남선의 기점이던 서대전역은 죽어갈 수밖에 없고 경부축과 강호축의 교차점인 충북 오송은 앞으로도 더 활기를 띠게 돼 있다. 그런데도 강호축 그림에 대전까지 수혜 지역에 포함시켜 놓고 있는 것은 대전 사람들의 착시를 노린 듯하다.

대통령은 “이젠 경부축과 강호축이 동반 발전해야 한다”고 했으나, 경부축은 과거이고, 강호축은 미래다. 대전이 강호축의 명실상부한 일원이 될 수 없다면 강호축은 대전에겐 기대하기 어려운 미래일 뿐이다. 이는 서대전역을 일부라도 살릴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충북은 서대전역 살리기에 반대하고 있다. 대전과의 공생을 어렵게 보는 게 충북의 강호축 논리다.

그런 충북이 그린 그림에 따라 대전의 운명이 바뀌고 있다. 충북엔 활기가 넘치고 대전엔 미래가 안 보인다. 충북을 탓할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 지역의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충북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충북이 그런 노력을 할 때 놀고 있거나 엉뚱한 짓만 하는 대전이 문제다. 충북지사가 충북의 미래를 위해 대한민국 지도를 펼쳐놓고 강호축을 그리고 있을 때, 대전시장은 경치 좋은 갑천에 아파트 사업을 벌이기 위해 몰래 대전도시계획도를 펼쳐놓고 천변도로부지를 지우는 일을 했다.

서대전역을 조금이라도 살리려면 서대전~논산 구간 직선화가 절실한 데도 예타면제 신청에 넣자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없다. 충북선 고속화의 비용의 3분의 1이면 충분할 텐데도 거론조차 안 된다. 대신 초미세먼지가 나와 해롭다는 LNG 발전소는 시민들 몰래 들여오려 한다. 다른 지역에선 결사 반대하는 발전소지만 집권세력에겐 필요한 발전소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런 일을 꾸미는지 알만하다. 

대전엔 충북지사 같은 인재가 없는가?

대전에는 ‘강호축’ 같은 그림을 그릴 만한 인재가 정말 없는 것인가? 아니면 혹 그런 인물이 있다고 해도 대전은 강호축에 비견될 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인가? 전자도 후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에도 인재는 있다는 성현의 말씀은 고금이 다르지 않을 것이며, 전국의 중심인 지리적 여건이나 ‘과학도시’라는 이름만으로도 대전만큼 유리한 도시도 드물다. 이런 도시가 인구도 비슷한 이웃 ‘농촌 道’에게 자기 운명을 내맡기고 끌려가는 중이다.

지난 2월 대전 충남북이 공동 선언한 아시안게임 유치는 충북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성과가 의문시되는 행사지만 충북의 단결을 과시하면서 이시종 지사를 띄우기 위한 이른바 ‘으쌰 충북’ 프로젝트라는 소문도 있다. 이런 행사에 왜 대전 충남까지 놀아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이 지사는 요즘 충북에선 총리감으로 추앙된다. 한 충북지는 이낙연 총리의 거취에 대한 충북의 관심을 언급하면서 “이 총리가 내려오면 이시종 지사가 차기 총리후보군에 오를 것이란 관측”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대통령의 강호축 발언을 듣고, 충북이 그려 놓은 ‘강호축’을 다시 찾아보면서 감탄과 탄식이 절로 나왔다. “충북, 대단하구나! 그런데 우리 대전은 뭐하고 있는 거지?” 혹자들은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이 충북 출신이란 점을 떠올릴지 모른다. 일리 있는 판단이긴 하나 이는 일부일 뿐이다. 대전의 인구가 훨씬 많은 데도 청주 쪽에 국제공항이 생기고, 직선으로 달려야 할 고속철도노선을 잡아 끈 듯 움푹 들어간 오송에 호남고속철도 분기점을 만들어낸 건 충북의 저력이지 실세 정치인이어서 이룬 공은 아니다. 그보다는 열정과 노력의 산물이다.

도시에도 흥망성쇠의 운명이 있다. 철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강경은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을 가진 큰 도회지였으나 지금은 인구 1만 명도 안 되는 작은 어촌이다. 공주는 청주와 더불어 충청도의 대표 도시였으나 이젠 인구 10만도 위협받는 군소 도시다. 대전도 쇠락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도시에도 어쩔 수 없는 운명 같은 게 있다면 백약이 무효겠으나, 지금 대전이 어려운 건 운명이 아니라 사람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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