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응징

호텔로 돌아온 나는 공항에 전화를 걸었다. 다음 한국행 비행기가 언제 있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일주일 후에나 다시 출항한다는 것이 공항 당국자의 말이었다. 다만 그는 하바롭스크에서 출항하는 비행기가 있으니 그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의자 등받이에 고개를 젖혔다. 김천수의 말을 회상하고 있었다.

폐따차에는 모두 여덟 명의 탈출자들이 흩어져 숨어 있디요. 보시는 것 같이 사는 것이 말이 아님네다.”

식량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그저 그렇게 죽지 못해 살고 있디요. 낮에는 사람들의 눈에 띌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산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사냥도 하고 들쥐 굴도 파고해서리 연명하고 있디요.”

들쥐굴 이라니요?”

들쥐들은 겨우내 먹을 양식을 준비하기 위해 굴속에 알곡을 묻어 두거든요. 30센티미터 정도를 파면 들쥐들의 굴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나무 열매나 야생 옥수수 같은 것들이 들어있디요. 한 번에 많은 것은 1킬로그램 정도가 들어 있는 곳도 있디요.”

“..........”

한 달 전에는 큰 곰을 한 마리 잡아 서리 우리 모두가 배불리 먹은 적도 있디만 요즈음은 쥐도 잡아먹고 그럭저럭 살디요. 지금은 그나마 여름이라 괜티않지만 날이 추워지면 걱정이야요. 여기는 겨울이 빨리 오디요.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고 서리.”

러시아 정부에 망명을 요청하면 되지 않습니까?”

모르는 소리 말라요. 러시아 당국에 망명을 요청하면 얼마 전에 러시아와 북조선이 맺은 범인 인도 협정에 따라 즉각 북조선으로 송환 당하고 말디요. 내가 누굽네까. 천지종합상사에서 그런 일도 담당을 했었는데 러시아에 망명을 요청해요?”

그러면 한국 영사관에 망명을 요청하시던지..”

그것도 믿을 수 없디요. 누가 나서서 그런 일을 해주기 전에는 우리 발로 한국 영사관에 찾아가기도 전에 러시아 경찰에 붙잡히거나 아니면 북조선 애미나이들에게 붙잡히고 말거야요. .......그래도 김 채린 동지가 그동안 이런 일을 추진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했다가 그만 이지경이 된거야요. 사실 그때 일을 추진했다 해도 알렉세이에게 죽고 말았을 거야요.”

그는 맥을 풀고 앉아 손으로 바닥에 흩어진 풀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말인데 어렵겠디만 장 선생님께서리 영사관에 다리를 놓아 달라요. 부탁입네다. 물론 극비리에 말입네다.”

“......”

김 동지를 잃어 가슴 아픈 줄은 알디만 어쩌갔시요. 잊어시야디요. 대신 우리 좀 살려주기요. 영사관에 높은 사람과 친분이 있다면서요?”

영사관에 높은 사람?”

따냐 선생에게 얘기를 들었시요. 정말 우리 좀 살려 주기요. 이남으로 가고 싶습네다.”

알겠습니다. 빠른시일 내에 소식을 전해 드리지요. 다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 그것을 처리하고....”

고맙습네다. 대신에 절대 높은 사람과 직접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할 겁네다. 누구도 믿을 수 없습네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