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56]
탈북자 [156]
  • 이광희
  • 승인 2019.05.20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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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볼라토프 홍?”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하스볼라토프 홍. 그자였다. 블라디미르호텔에서 총격전을 벌였던 그의 얼굴이 낡은 사진같이 희미한 영상을 남기며 스쳤다. 저격병이 쏜 총탄에 맞아 구겨지고 일그러졌던 그자.

나는 눈 속으로 들어가듯 그를 지켜봤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같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중국계 마피아디요. 박 동지와는 막역한 사이구요, 박 동지는 그를 통해 이곳에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왔으니 끼니. 심지어 플루토늄을 반입하는 문제도 그 동안 그가 수행했디요. 그러다 보니 박동지와 그는 모든 것을 말하고 신뢰하는 사이가 됐디요.”

연락을 해서 무엇이라고 했답니까?”

김 채린 동지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디요.”

보호? 그렇다면 그가 채린을 데려갔단 말입니까?”

그렇디요. 하스볼라토프 홍과 알렉세이는 사이가 좋지 않으니 믿을 만한 사람이 그들밖에 없었던 거디요.”

그렇다면 왜 한국 영사관에 연락을 취하지 않았습니까? 채린을 그곳으로 보냈어도 될 텐데…….”

아니디요. 모르셔서 하는 말이 야요. 이곳에서는 한국영사관을 믿지 않아요. 마피아들이 없애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한국영사관 아니라 어디에 있어도 안전할 수 없습네다. 박 동지는 북조선이 알렉세이를 통해 김 채린 동지를 없애도록 종용할 것이란 것까지 계산을 했던 거디요.”

도무지 모를 언어들이 머리속에서 뒤엉키며 목이 뻣뻣하게 굳어 왔다. 손에 땀이 미끈거렸다. 따냐는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두커니 앉아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채린을 납치한 자가 미스터 쟝이라는 중국계 마피아였는데 어떻게?”

맞디요. 납치한 것이 아니라 보호한 것이디요. 미스터 쟝이 하스볼라토프 홍의 직계 부하니끼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계속해서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면 왜 내가 그들을 추적했을 때 달아났을까요?”

그것은 장 선생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한국영사관을 믿지 못해서디요. 한국영사관이 알렉세이의 첩보망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디요. 결국 그의 손에서 모든 정보가 가공되고 있단 말이디요.”

나홋카 제 4아파트에서 발견됐던 채린의 메모지가 생각났다.

이들이 나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 어디로 데려 가려는 걸까......왜 나를 데려왔을까?’

그들이 채린을 납치했다면 그대로 두지 않았을 거라는데 생각이 멎자 김천수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채린을...?”

문제가 생긴 거디요.”

무슨 문제?”

하스볼라토프 홍이 블라디미르 호텔에서 피살된 뒤 미스터 쟝이 혼자의 힘으로 사건을 감당할 수 없자 자취를 감춘 거야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단 말입니까?”

, 김 채린 동지가 죽은 것으로 미루어 미스터 쟝이 배신을 했을 가능성이 없디 않디요. 알렉세이가 김 동지를 쫒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알렉세이에게 김 동지를 넘겼을 수도 있고. 나쁜 새끼.”

나는 길게 숨을 토했다.

그렇다면 저들이 채린을 해칠 이유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렇디요. 우선 북조선 측에서 내가 탈출한 데는 김 동지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인정하고 김 동지를 제거해 달라고 알렉세이에게 당부했을 수도 있디요. 또 다른 하나는 알렉세이가 자신의 신분이 김 동지로 인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제거할 수도 있구요. 아무튼 송구스럽게 됐시다.”

그 부분은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때까지 말없이 앉아 자잘하게 어깨를 떨고 있던 따냐가 김천수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그녀는 속에서 분출되는 감정을 억제하며 외줄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연 것은 거미발 같은 손가락으로 눈물을 문지른 뒤였다.

그들의 부탁으로 제가 김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부탁이 이런 이유에서였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가슴이 더욱 답답했다. 더 이상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박 인석 동지도 알렉세이가 살해했을 겁네다.”

김천수는 고개를 숙이며 힘없이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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