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1일까지... 은행동 소재 '카페 안도르'서 첫 전시 '내가 너를 기억해'
박수빈 작가 "길고양이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들의 삶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길"

우리 주변에는 야생에서 자란 고양이와 사람이 내다버린 고양이가 구분없이 길고양이로 살고 있다.

누구에게는 야옹이, 누구에게는 나비로 불리다가 소문없이 사라지고야 마는 길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사진전을 연 대전의 청년 작가를 <디트뉴스>가 전시 공간 '카페 안도르'에서 만났다.

카페 안도르 외부에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어우러진 박수빈 작가 作
카페 안도르 외부에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어우러진 박수빈 작가 作
실제 벽과 사진 속 거리의 경사를 맞춰 고양이가 걷고 있는 듯 유연하게 표현해 공간 미술의 형태로 전시한 박수빈 작가 作
순천 덕암동에서 만난 고양이는 담벼락에서의 사람구경을 좋아했다고. 카페 안도르 한 구석 저의 몸 색깔과 닮은 벽 귀퉁이에서 손님들의 눈동자를 구경한다. 박수빈 작가 作

발랄한 금발에 앳된 눈동자를 한 박 작가는 한사코 "전시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며 인터뷰 자리를 어색해했다. 그러면서 "길고양이를 불쌍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멋졌던 삶을 알아주고,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변의 응원을 받아 첫 번째 사진전을 열게 됐다"라고 부연했다.

현재 1마리의 개, 8마리의 고양이와 동거중인 박 작가는 본인을 '고양이 집에 얹혀 산다'고 표현했다.

"20살에 반려견을 키우고 싶어서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을 했어요. 가족을 돈 주고 사온다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아서요."

그렇게 그는 반려견 '아리'와 만났다. 흰 털을 자랑하는 아리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사진을 찍게 됐다. 어느 순간 디지털카메라의 한계를 느끼고 더 예쁘게 담고자 장비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똑딱이 디카'로 만족할 수 없어서 DSLR을 구매했다. 사진을 따로 배우지 않아서 기술적인 테크닉은 취약할지언정 그는 빠른 셔터속도와 훌륭한 화질만으로도 DSLR을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고양이 몸통은 일정부분 사진 바깥으로 밀려나갔지만 발을 나란히하고 걷는 순수한 감성으로 충분한 박수빈 작가 作

그러나 8마리의 고양이는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박 작가는 어머니가 한 마리씩 데려온 길고양이들이 처음부터 마냥 예뻤던 건 아니라고 한다.

"고양이들이 점점 느니까 엄마를 말리게 됐어요. 그런데 엄마가 '이 고양이는 누구네 동생이다', '얘는 누구네 딸이다'라며 스토리를 들려주시는 거예요. 그 때부터 고양이들에게 관심이 갔고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도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다른 지역에 가서도 길고양이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러다보면 '캣맘'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다가와 고양이의 인생을 들려주곤 했다. 박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의 인생은 하나같이 '멋졌다'.

정형화된 구도와 사진 기술없이도 보는이로 하여금 충만한 감성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박 작가가 애정 어린 뷰-파인더로 고양이들을 살피기 때문일까. 박 작가의 사진은 길고양이들을 향한 염려와 따뜻한 온도로 차곡차곡 부피를 늘려갔다.

박 작가는 21살에, 어쩌면 이번 전시의 계기가 됐을 경험을 했다. 구조한 길고양이가 만 이틀만에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 고양이는 살고 싶어서 본인에게 구조 요청을 한 것인데,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박 작가를 본 지인들은 한 마디씩 거들었다.

"길고양이는 어떻게 살아남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한 문제예요. 제가 빵이라고 이름 붙인 '그 고양이는 저를 만나서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 죽을 수 있지 않았냐'는 말을 들었어요."

늘 새끼고양이들을 대동해서 식사를 챙기던 '아저씨'는 새끼들이 먹고 나서야 남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던 아빠다. 박수빈 작가 作
늘 새끼고양이들을 대동해서 식사를 챙기던 '아저씨'는 새끼들이 먹고 나서야 남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던 아빠다. 박수빈 작가 作

그 때부터 박 작가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이와 연관해 전시 작품 중 가장 눈에 밟힌다는 '아저씨'의 얘기를 들려줬다. 동네마다 고양이들의 '짱'이 존재하는데 박 작가와 어머니는 그 짱들을 아저씨라 부른다고 한다.

"실제로 사체를 본 건 아니지만 상태나 정황상 아저씨가 죽은 것 같았어요. 아빠 역할을 잘 해내던 멋진 고양이였는데 아저씨의 삶을 더이상 누가 알아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전시를 마음 먹게 됐습니다."

화순 연둔리에서 만난 고양이는 사람들의 말동무였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찾아오는 외부인은 반가운 존재인 듯 아는 척을 한다고. 박수빈 작가 作
화순 연둔리에서 만난 고양이는 사람들의 말동무였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찾아오는 외부인은 반가운 존재인 듯 아는 척을 한다고. 박수빈 작가 作

첫 전시공간을 카페 안도르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 작가와 안도르의 인연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곳은 고등학생 때 처음 온 카페였어요. 당시만해도 카페 문턱이 높아서 막상 들어오기가 어렵더라구요. 집이 근처라 매일 보기만 하다가 어느날 문득 들어오게 됐는데 너무 좋았어요."

약 17년간 폐가였던 카페 안도르는 8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개점했다. 폐가였을 때부터 살던 고양이들을 사장이 그대로 수용하며 카페 천장, 외부 등을 내어주었다고 한다.

박 작가와 카페 안도르는 고양이를 매개로 약 8년간 인연을 이어왔다. 박 작가의 어머니 역시 안도르를 드나들게 되며 사장과 좋은 이웃이 됐다.

인터뷰 내내 카페 곳곳에는 고양이가 자유롭게 머물렀다. 박 작가는 고양이를 쉽게 구분해냈다. 창 밖 고양이 이름은 '나비'로 현재 동네 터줏대감.
인터뷰 내내 카페 곳곳에는 고양이가 자유롭게 머물렀다. 박 작가는 고양이를 쉽게 구분해냈다. 창 밖 고양이 이름은 '나비'로 현재 동네 터줏대감.

박 작가는 고양이와 함께 태연하게 살아가는 삶을 꿈꿨다. 길에서 고양이를 만난다면 '만나는구나', 고양이가 자고 있다며 '자는구나' 할 수 있는 사회. 그러기 위해서는 길고양이에 대한 이유없는 학대가 멈춰야 하고, 길고양이를 마냥 '불쌍하다'고 연민하는 태도도 변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힌다.

"저는 고양이와 형제로 컸어요. 엄마는 길고양이들을 애끓는 마음으로 바라보셨는데, 저는 고양이가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박 작가의 사진 속 고양이들은 마냥 불쌍해보이지 않는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불안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양이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담백한 앵글로 시사하고, 담담한 작품으로 나왔다. 그의 작품이 보편적인 듯 흔하지 않은 이유다.

"저의 전시를 보면서 길고양이들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길 바라요. 이런 아이의 삶이 있었구나 이해하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31일까지 카페 안도르에서 박수빈 작가의 사진전 '내가 너를 기억해'가 이어진다.
오는 31일까지 카페 안도르에서 박수빈 작가의 사진전 '내가 너를 기억해'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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