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71] 5.18 39주기, 이제 정치권이 답할 차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8일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유족 대표로 편지를 낭독한 김소형 씨를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8일 광주민주묘역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유족 대표로 편지를 낭독한 김소형 씨를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남공단 신흥금속에서 일하던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그는 1987년 3월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광주항쟁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했습니다.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은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 진상규명을 위해 40일간 단식 끝에 옥사했습니다.

올해 만 39세가 된 김소형 씨는 1980년 5월 18일이 생일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날 태어난 자신을 보기 위해 병원으로 오던 도중 계엄군에 의해 희생됐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光州) 전남(全南) 일원에서 신군부 집권 음모 규탄과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한 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39주년을 맞습니다. 진압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때리고, 찌르고, 하늘과 땅에서 총을 쏘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2001년 12월 18일 기준으로 확인된 피해자는 7000여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공식 사망자 수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주통합병원에서는 희생자 시신을 화장(소각)하거나 바다에 버렸다는 충격적인 증언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신군부를 지휘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또 당시 그가 광주에 왔었는지 확인되지 않은 채 논란만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청와대 본관 1층 복도에는 노태우와 최규하 전 대통령 사이에 전두환 초상화가 버젓이 걸려 있습니다.

5.18은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 뉴스, (민중)가요, 책,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해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차곡차곡 밝혀내야 합니다. 책임자는 응당 처벌을 받아야하고, 피해자는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도 받아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2년 전 광주 5.18기념행사에서 이 부분을 언급했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비극의 역사를 딛고 섰습니다. 광주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버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유한국당 일부 국회의원들은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망언을 쏟아냈습니다. 상식과 정의를 모르는 이들 족속은 5.18을 지역감정과 이념갈등을 부추기는 도구로 쓰고 있습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5.18 망언 의원들 징계 처리에 옥신각신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야 4당이 올해 기념일 이전 처리하기로 합의한 5.18특별법개정안 처리도 사실상 무산됐습니다.

5월 단체들은 내일(18일)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5.18기념식 참석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5.18 망언 의원들을 제명하고,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에 협조하지 않으면 광주에 올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범여권도 “무슨 낯으로 오겠다는 거냐”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5.18은 현대사의 비극으로만 역사에 기록해서는 안 됩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물론, 유가족 보상과 기념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청년 표정두와 박관현의 넋을 달래고, 김소형 씨 한(限)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지 않을까요.

5.18광주민주묘역 한 묘비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눈물을 주고 가슴엔 한을 남긴 이승의 못다 한 서러운 인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다시 만나리.’ 다시 찾아온 5월, 이제는 정치권이 답할 차례입니다. 삼가 5.18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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