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픔은 관계 속에서 시작되며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할 대상이 없을 때, 위로해 줄 사람이 없을 때 아파도 더 아파할 수가 없게 된다. 스스로 아픔을 억압하거나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감각을 둔화시킨다. 오랜 시간 감각을 둔화시켰다면 아파할 대목에서 오히려 더 아무렇지 않는 듯 자기를 방어, 보호하게 된다. 우리의 감정은 태어날 때부터 엄마로부터 생겨나며 관계 속에서 구체화된다. 관계 속에서 아픔을 자주 경험한 사람들은 사람을 기피하게 된다. 이런 경우 흔히 ‘대인기피, 대인공포’ 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관계를 단절하면 할수록 자신의 감정은 말라버리기 마련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들은 아파하지 않는다. 아파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파하지 않으므로 사랑을 알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사랑은 아픈 것이다’ 라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날 때의 온도는 따뜻할까? 차가울까? 따뜻하다. 산모가 분만할 때 산파는 따뜻한 공기를 형성하고, 따뜻한 물을 준비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담요로 아이를 감싸준다. 엄마의 양수 속에 있을 때 그 온도는 따뜻하다. 그래서 아기들이 좋아하는 것은 따뜻한 담요, 부드러운 인형 등을 좋아한다. 그러나 엄마가 냉정한 표정을 젖을 물렸을 때는 아이의 눈빛은 불안이란 감정으로 엄습하게 된다. 즉 아이는 젖만 먹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엄마의 눈을 바라본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는 눈빛을 통해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아이뿐만 아니라 성인, 노인까지도 눈빛에서 받는 사랑의 에너지는 크게 작용한다. 사랑을 서로 주고 받을 때까지는 기쁨과 행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 속에서 아픔이란 고통을 경험한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서 그것이 아픔이 아니고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된다. 흔히 ‘사랑은 아픈거야’라는 말로 통할 때도 있다.

대상관계이론의 심리학자 도널드 우즈 위니캇은 ‘부모가 사랑 없이 아이를 키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기는 불행하게도 자율적인 인간으로는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란 말 속에 정서 발달은 출생 이전 즉 태교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개성이 그 사람 자신이다’라고 말한 위니캇은 관계 맺는 방식을 중요시 한다. 어떤 상황이 되면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고 익히는 방법에도 스스로 감정을 억압하여 무의식의 흔적으로 남을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다. 사랑도 아픔도 기쁨도 마찬가지다. 말하지 않으면 즉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감정, 느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표현해야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거짓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기에 그것이 좋다고 좋지 않다고도 말 할 수 없다. 자신만이 채워짐과 공허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표현을 했을 때 관계가 회복이 되고 완성되어진다.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침묵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다. 

아픔도 익숙해지면 괜찮아지는 시점이 온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는 익숙해지기보다는 회피해버리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익숙해지기까지는 괜찮지 않는 아픔과 상처, 외로움과 절망, 눈물과 분노 등의 소화시키지 못한 감정들을 괜찮아지는 순간까지 스스로 싸워야 한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괜찮아지는 순간, 자신의 삶이 익숙해진다, 익어가고 있다 라고 말 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가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동안 나의 아픈 이야기를 온전히 말 할 곳이 있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받아 줄 대상이 있었는지, 혹시 믿는 대상에게 또 다른 아픔을 겪는 경험은 없었는지’를 탐색해 보는 것도 좋다. 그 대상이 성인되어 만들어졌다면 어릴 때 대상이 있었던 사람과는 다르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탐색하면서 더 처절한 외로움이 올라와서 울 수도 있다. 그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항상 어른인 척을 했던 자신을 보면서 오열을 토할 수 있다. 우리가 영원히 믿을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사람을 피할 수는 없다. 부딪히면서 둥글게 자신을 다듬어가는 혹독한 훈련도 필요하다. 대상관계이론에서는 그것을 ‘마더링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즉 상담사나 치료사가 마더링을 제공해 줌으로써 관계의 질을 향상시켜 줄 수 있게 된다.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자녀와 부모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 등 사랑의 대상은 다양하다. 다양한 사랑에는 아픔이 함께 따라다닌다. 아픔 없이 성장하는 것은 없다.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하기도 하고, 배신도 해 보고 모른 척 해 보고 다른 곳으로 헤매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단지 모양과 형태가 다를 뿐이다. 사랑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기에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한다. 길을 잃었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한 곳만 바라본 것이 아니고, 다양하게 주변을 살펴서 한 곳으로 가지 못해서 길을 잃게 된다. 즉 사랑에만 초점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즉 사랑에는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잃은 길을 되찾으면 된다. 무조건적 사랑은 아카페 사랑이다.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랑말이다. 절박함을 가져보는 것도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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