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충남대 앞의 식당들 중에는 ‘충대에 몇 백만 원을 기부하고 받은 기부증’을 내건 곳들이 종종 눈에 띤다. 대학발전기금을 내고 받은 증서다. 충대는 내부 구성원들은 물론 식당, 병원, 기업 등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곳이면 기부를 부탁하고 있고 상당수의 인사들이 수 백만 원에서 수 억 원까지 기꺼이 괘척하고 있다. 전임 총장 때는 해마다 100억 원 정도의 모금 실적을 올렸다.

지역 주민들은 충남대를 위해 나름 성의를 다하고 있다. 그런데 충남대는 지역사회를 위해서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오덕성 총장은 얼마 전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들은 대부분 뛰어난 고등교육기관이 자리해 지역사회의 구심적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대전시민 가운데 충대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역 현안 고민하는 교수들 몇이나 되나

대학 교수의 임무는 크게 연구 교육 봉사 3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연구실적을 내야하고,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 하며, 자신의 전문지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교수가 보통 직장인과는 달리 사표를 내지 않고도 정치권에 들어가 폴리페서가 될 수 있는 것도 본래는 명분이 있는 일이다. 사회가 대학교수들에게 전문가와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부탁하고 인정해주는 뜻이다.

충남대의 교수들은 대전 충청권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전문적 지식이나 정보일 수도 있고, 조언이나 충고일 수도 있으며, 때론 비판과 감시의 역할일 수도 있다. 충대 교수들 중엔 이런 의무를 다하고 있는 분들이 없지는 않으나 극히 일부다. 지역 현안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교수들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이 점에선 오덕성 총장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얼마 전 허태정 시장의 미국방문 때 오 총장이 동행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듣고 또한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행이 맞다면 허 시장의 ‘선진지 견학’에서 오 총장이 가이드 역할을 한 것 같다. 장관급인 국립대 총장이 예우상으론 차관급인 시도지사를 수행한 꼴이다. 시장과 총장이 지위와 격식을 떠나 나란히 외국에 나가 지역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보기 좋다. 

그러나 적어도 오 총장에겐 이런 식의 동행이 오해를 살 만한 점이 있다. 충남대 교수 가운데 오 총장만큼 대전시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경우도 드물다. 그는 1998년 대전시 주도로 창립된 WTA(세계과학도시연합)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처음엔 이 조직의 사무총장을 대전시 경제국장이 겸임했으나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오 총장이 맡았다. 그는 12년 간이나 조직을 맡아 유네스코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수준까지 키웠다. 오 총장의 공이다. 

그러나 WTA는 너무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 사람이 장기 집권하면 어느 조직에서나 나타나는 병폐다. WTA는 오 총장과 그와 친한 몇몇 교수들만 노는 물이 됐다는 뒷말이 나온 지 오래다. 오 총장은 사무총장에서 물러났으나 이제는 WTA 대학총장포럼 의장교의 자격으로 참석한다. 2016년(인도네시아)과 2018년(베트남) 행사에 시장과 나란히 참석했다. 사무총장에서 물러났어도 WTA는 여전히 오 총장 수중에 있는 것 같다.

기득권이 된 오덕성 총장의 ‘해외 봉사’

WTA는 스스로를 ①지방정부(시장) ②대학 및 연구기관 ③혁신기업 등이 주축이 되는 이른바 ‘삼각접근법’으로 운영되는 조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중 시장은 4년마다 바뀌고 기업도 수시로 바뀌는 데 비해 ‘대학(교수)’ 파트만 장기집권을 구가하고 있다. ‘오 총장 일파’가 줄곧 WTA를 독차지하면서 카이스트나 연구단지 인재들의 참여는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

시장이 ‘전문가’에게 배우는 건 좋은 일이고, 그 전문가가 국립대총장이라면 더욱 좋다. 그러나 총장은 왜 늘 ‘함께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갈 때만’ 시장을 가르쳐 주는 것인가? 특별한 경우를 빼면 외국 출장은, 반 이상이 여행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시장이든 총장이든 국회의원이든 지방의원이든, 외국여행의 초보자든 베테랑이든 기회만 되면 기를 쓰고 나가려는 것 아닌가?

오 총장의 전공은 도시계획이다. 대전의 도시계획과 관련된 논문도 여러 편 쓰고 대전시의 용역도 여러 차례 했던 ‘관변 학자’로 기억한다. 이런 인연으로 WTA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사무총장까지 지냈다. 오 총장은 대전시에 공도 있지만 그가 받은 혜택도 작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총장 자리에 앉았지만, 그가 도시계획 전문가라는 점에서 지역사회에 대한 충남대의 역할이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변화는 없었다. 서대전역, 도안호수공원, 월평공원, 야구장 이전 문제 등 시민들이 걱정하고 논란을 빚는 현안에 대해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는 시장과 함께 외국 나갈 때만 ‘봉사 활동’에 나선다.

지역사회에서 대학은 고등교육을 시킨 자식과 같다. 지역사회가 부모라면 대학은 자식이다. 부모가 병이 들어 위태로운 데도 나몰라라 하면 진짜 자식이 아니다. 대전 충청의 맏아들 충남대는 지역사회에 어떤 아들인가? 부모가 중병이 들어가고 있는데 평소엔 거들떠도 보지 않으면서 외국 여행 나갈 때만 같이 가자며 찾아오는 자식이 아닌가? 이것도 효도라면 오 총장이 불효자는 아니다. 그러나 효도의 방법은 확 바꿔야 한다. 총장 임기가 내년 2월까지므로 시간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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