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순 친일파 치적비 이인면사무소 내에 그대로 서 있어
시민들, "공주시에 친일행적 청산 안돼 부끄럽게 생각" 지적
공주시가 3ㆍ1운동 100주년 역사적 가치 재 조명...청산해야

공주시 이인면사무소 앞엣 서 있는 가운데 친일파 박제순의 치적비.
공주시 이인면사무소 앞엣 서 있는 가운데 친일파 박제순의 치적비.

공주시가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항일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재 조명하고 있는 가운데 이인면사무소내에 박제순의 치적비가 아직도 남아있어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일부 뜻있는 시민들은 친일파인 박제순의 존재와 친일행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채 그들의 치적을 비에 담아서 지속되고 있는 점에 대해 매우 부끄럽다며 이제라도 제대로 된 친일청산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공주시 이인면사무소 앞에 몇개의 치적비가 서 있는 가운데 친일파로 알려진 박제순의 치적비가 우뚝 서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따르면 박제순의 당시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6·7·9·13·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돼 Ⅳ-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137∼153)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박제순은 문관·고위관료·정치가·친일반민족행위자였으며 조선 말기에 성균관 대사성, 호조참판, 이조참판, 농상공부대신 등을 역임하면서 악행과 친일 반민족행위를 일삼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한제국기에는 외부대신, 육군 참장, 의정부 참정대신, 내부대신 등을 지냈으며,1905년 11월 일본 특명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와 을사조약을 체결해‘을사오적’으로 지탄받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자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중추원 고문, 이문회 회장, 가정박람회 명예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시민들은 공주시가 3ㆍ1절 100주년을 맞아 항일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재 조명하고 있는 것도 좋지만 여전히 청산하지 못한 친일과거 행적과 치적비가 관공서에 세워져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모시고(?)' 있는 행태는 이해할 수 없다며 부끄러워야 해야 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입은 모았다.

공주시민 박 모씨(72,공주시 교동)는 "공주시는 박중양과 김관현의 치적비도 문제지만 박제순의 치적비가 인면사무소내에 있다는 것은 정말 치옥스럽다"며 "이제라도 제대로 조명해 죄상을 밝히고 없애든지 아니면 다른 곳을 옮기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 모씨(64,공주시 신관도)는 "친일행적의 죄상을 낱낱이 밝힌 팻말을 그 비석 앞에 세우고 그 후손들이 두고두고 부끄러워해야 하고 깨우치도록 해야 한다"며 "지금도 그런 자들의 후손이 활개치고 권력과 재력을 쥐고 있는 것이 후손들에게 부끄럽기 그지없다"고 토로했다.

이밖에 시민들은 "올해 3ㆍ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공주시가 친일과거청산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청산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고 지금이라도 끝까지 캐내 청산된 제대로 된 역사를 가지고 가야 후손들에게 부끌럽지 않은 역사를 보여줄 것 "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주시 관계자는 "3.1운동 추진위원회와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모아 친일과거청산에 대해 토론하고 숙고해 조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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