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끝마다 위대한 영도자를 찾던 그가 북조선 체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그곳 체제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북조선 체제가 폐쇄성을 벗어나지 않는 한 멸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짧은 시간에 그렇게 변한 이유가 뭘까요?”

사실 짧은 시간에 변한 것은 아닙니다. 오랜 기간 이곳 생활을 통해 변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겁니다. 갑자기 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송환을 앞뒀기 때문일 겁니다.”

송환?”

그는 자신이 송환되면 이곳에서의 실책 때문에 숙청되거나 혹은 3급 노동자로 전락할 것이라는 말을 했으니까요. 그것에 대한 불안감이 자신을 그렇게 변하게 했을 겁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박 인석이 기바리쏘워 따차지대에서 나를 만나기로 했던 것이 채린의 문제도 문제지만 자신의 망명 문제를 상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차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 어두운 그림자가 창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그들이 왔습니다.”

그들?”

김천수와 함께 있는 사람들.”

김천수를 만나기로 했잖습니까?”

그들은 함께 이곳에 숨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김 선생님도 다녀 간 곳이지요.”

채린이 이곳을?”

나는 어둠 넘어 빛나는 따냐의 눈 속을 빤히 쳐다봤다.

문을 열고 그들이 서 있는 반대편에 섰다. 오한이 들린 듯 가슴 한가운데서 퍼져 나오는 얇은 경련이 턱을 덜덜거리게 했다.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나는 속주머니에 손을 넣어 권총 손잡이에 힘을 주었다.

반갑습네다. 연락을 받고 나왔시요. 너무 늦으셨구만요. 오늘 낮에도 이곳에서 기다리다 오지 않기에 안 오시는 줄 알았디요.”

“.......”

김 동지가 기다리고 계신 다요.”

어둠 속에 선 세 명의 사내들이 못이 박힌 두툼한 손으로 내 손을 번갈아 잡았다. 순간 나는 오줌을 질길 만큼 크게 놀라며 성큼 물러섰다. 그리고는 다시 주머니 속의 권총을 어루만졌다. 심상찮은 수작을 벌인다면 그대로 갈겨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이분들은 자유를 찾아 벌목장을 탈출한 북조선 노동자들이니까요. 김 선생님의 알선으로…….”

그렇습네다. 김 채린 동지의 도움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고 있디요.”

나는 속으로 이들의 말을 믿어도 될까를 의심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안내하는 뒤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따냐와 나를 가운데 세운 뒤 앞뒤로 서서 말없이 어디론 가를 향해 무겁게 걷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끄집어 낼 수도 없을 만큼 무거운 분위기였다.

숲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오르는 길목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눅눅한 냄새와 씩씩거리는 사내들의 가쁜 숨소리, 그리고 나뭇가지와 습기에 젖은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 간간이 멀리 숲속에서 들리는 늑대 울음소리 만 희미하게 들렸다. 발목이 빠질 만큼 수북이 쌓인 낙엽으로 미루어 이 길이 평상시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미끈거리는 나뭇잎을 밟아 비틀거리며 따냐의 뒷모습을 보며 그들을 따랐다. 연신 속주머니에 묻어 둔 권총을 거듭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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