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 오후 3시가 지난 시각에야 몸을 자리에서 일으켰다. 물론 영사관 직원에게 제시간에 출국이 어렵다는 말을 전했다. 다녀와야 할 곳이 있다고만 했다.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된다는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녀는 수차 내게 빨리 움직여 줄 것을 주문했다. 결국 따냐가 자신을 인질로 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권총을 다시 챙긴 뒤 따냐를 따라 나섰다.

 

따냐가 나를 데려간 곳은 호텔에서 5시간 이상 떨어진 숲속의 어둠이었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승용차의 헤드라이트를 끄자 밤의 한가운데 내가 서 있었다. 자작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조심스럽게 들릴 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왜 차를 멈춥니까?”

다 왔습니다.”

여기가 어딘데?”

“..........”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숲의 한가운데쯤이란 것 외에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도심을 벗어날 때는 나홋카로 가는 길목쯤으로 여겨졌지만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주먹만 한 돌들이 도로에 나뒹굴어 있었다는 것밖에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물론 이정표도 없었다.

쌔근덕거리는 따냐의 숨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밤이었다.

많이 기다려야 합니까?”

“.........”

아닙니다. 우리가 늦어서 .....그가 나타날 겁니다.”

김 천수?”

“..........”

나는 어둠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의 조각들이 가슴속에 하나 둘씩 쌓이는 것을 느끼면서 이곳으로 오는 동안 따냐와 나눈 대화를 회상했다.

박 인석씨와 통화를 한 것은 22일 밤이었습니다.”

“..........”

인석씨는 대단히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변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알고 지내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김일성대학에 다닐 때였습니다. 그때는 투철한 사상성 때문에 유학생들을 곧잘 감동시키곤 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저토록 철저하게 주체사상에 물들 수 있을까 하는데 의아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그는 사상적으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이완되어 있었습니다. 상부 조직에 대한 충성심도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엄청난 심경의 변화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단정 짓는 겁니까?”

그가 입버릇처럼 식량 부족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어 사회 불안이 확대되고 있다는 말을 곧잘 뱉었었기 때문입니다. 그전에 그를 만났을 때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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