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권력(勸力)’이란 뜻을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면 ‘강제로 복종시키는 힘, 다스리는 사람이 다스림을 받는 사람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힘’으로 풀이돼 있다. 그런 힘을 갖는 자리에 오른 자가 이른바 ‘권력자’다. 보통은 정치적 권력을 의미하지만 재력 등 여타의 수단으로도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질 수 있다. 보통 사람들에겐 ‘권력자’라고 하면 존경보다는 두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상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권력이란 본래 의미 저울대에서 나와

그러나 권력이란 글자를 ‘권(權)’과 ‘력(力)’으로 분해하여 뜻을 새기면 의미가 상당히 달라진다. 權자의 본래 의미는 저울대다. 양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쓰는 도구다. 권력자란 저울 역할을 하는 사람이란 의미가 들어 있다. 최선을 다해 균형을 잡더라도 어느 한쪽은 - 혹은 양쪽 다 - ‘왜 우리 쪽을 가볍게 여기느냐?“며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끝내 저울질이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저울을 쥔 자에겐 저울질의 결과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권력의 힘은 그것이 공정성 균형을 갖추었을 때 정당성을 갖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어떤 조직 안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구성원의 서로 다른 이해(利害)에 대해 최선을 다해 균형을 잡을 의무가 있다. 어느 한쪽의 편향적 입장만 취하면 진정한 권력자가 아니다. 조직 전체가 아니라 어느 한 분파의 우두머리에 불과할 뿐이다. 과거 제왕들은 설사 폭군조차도 국가 통합 노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신경을 썼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발명한 정치 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이런 점에서 심각한 약점이 노출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균형보다 극단을 추구하는 권력자들을 자주 배출한다. 많은 정치인들은 균형보다는 노골적인 편향성이 권력을 얻는 데 더 나은 방법으로 생각한다. 균형은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외면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자 마이웨이만 외친다.

극단의 정치는 국민들까지 분열시키고 분열된 국민들이 정치적 분열을 더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국민을 통합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시킨다. 정치란 본래 국민들의 서로 다른 이해를 조정하고 타협하는 게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그 역할의 기본은 타협과 조정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100명이 되는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는데 목적지를 학생들 전체 의견을 물어 정한다고 해보자. 모두의 생각이 다 같지는 않으므로 의견이 분분히 나눠질 것이다. 100명이 전부가 자기 얘기만 하면 백날 토론해도 목적지를 정할 수 없다. 의견이 같은 사람끼리 분류하여 조장을 뽑아, 목적지 결정 과정에 필요한 사항들을 이들에게 맡겨야 한다.

각 조장들은 각자가 대표하는 부류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최대한 노력하되 다른 조장들과 자기 조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타협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조장끼리 감정싸움으로 번지면 상대 조장을 꺾는 데만 마음을 쓴다. 자신의 조원들이나 전체의 학생들은 뒷전이다. 우리나라 정당과 대통령은 지금 이런 조장들이다. 

나와 내편만 위한 막장 싸움

지금 국회에서 ‘민주’와 ‘한국’ 양대 조장의 물리적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 조장은 남성, 한국 조장은 여성이다. 남성 조장이 공격하고, 여성 조장이 막고 있는 모습이다. 수적으로나 힘으로나 여성 조장은 남성 조장을 막기 어렵다. 물리적인 힘으로만 한다면 이번 대결에서 한국은 민주를 이길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 이기는 쪽이 내년 선거에서 유리하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이기는 쪽이 불리해질 수도 있다. 특히 대통령이 밀고 있는 여당이 이번 막장 혈투에서 끝내 여성 조장을 밀치고 뜻을 이룬다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싸움에서 국민들은 저마다 자신이 속한 조의 조장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조도 아닌 국민들도 많다. 내년 선거 최후의 승패는 이들이 결정하게 돼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번 선거법 개정 내용을 잘 모른다. 복잡한 것도 이유다. 다만 군소 정당들에게 보다 유리할 수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에겐 그것이 찬성과 반대의 결정적 요소는 아니다. 

그보다는 단지 어느 쪽엔가는 더 유리하고, 따라서 상대에겐 손해가 될 것이므로 저 난리를 친다고 있다고 여긴다. 국민들도 선거법 개정의 내용을 공부해서 찬반 의사를 제대로 표시하는 게 조장들에 대한 성의이긴 하나 조장들이 평소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런 미안함은 별로 없다. 따라서 이번 싸움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과 내편만을 위한 싸움일 뿐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이번 싸움을 지켜보면서 양쪽의 잘잘못보다 양대 조장의 싸움 장면만 머릿속에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만일 대궐집의 남성 조장이 여염집 여성 조장을 제압하고 뜻을 성취하는 장면이 연출된다면 남성 조장의 선거법 개정은 도루묵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남성 조장은 이기면 지는 것이다. 여성 조장 입장에선 장렬하게 패하는 게 곧 이기는 전략이다. 여성 조장이 이기는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효과가 있겠으나 여성 조장의 실점(失點)은 남성이 이길 때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빠루와 망치까지 등장하는 우리 정치판에 '저울대 권력론’은 너무 순진한 얘기일지 모른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뻔뻔한 막장 정치는 50점을 넘기 힘들고 최고 잘해야 60점이다. 순진한 정치도 못하면 뻔뻔한 정치에도 못미치지만 80점 90점 같은 최고의 정치는 뻔뻔한 정치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런 정당이 없다. 도토리 키재기인데 권력을 얻으면 더 뻔뻔해질 뿐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