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만날 사람도 또 만날 이유도 없었다. 도리어 이런 말을 내뱉고 있는 따냐가 말없이 이 방을 나가 주었으면 차라리 좋을 성싶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았다니요. 채린이 떠나갔는데 아직 무엇이 더 남았다는 말입니까? 내게는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순간적으로 목이 잠겼다.

돌아가세요. 더 이상 할 말도 없습니다. 당신과는 …….”

나는 의자에 더욱 깊이 몸을 묻고 눈을 내리 깔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장 기자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해하시기 힘들겠지만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또박또박 털어놓았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대본을 외운 뒤 무대에 오른 연극배우같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집사람이 돌아올 일 이라도 있단 말입니까?”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반성의 여지도 없이 알곡 같이 말을 자르는 따냐의 태도가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너무 뻔뻔스럽군요.”

죄송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장 기자님을 찾아온 것도 그일 때문입니다.”

“.........”

인석씨의 부탁이었습니다. 박 인석씨의 간곡한…….”

박 인석이 무슨 말을?”

김 천수란 사람이 장 기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 천수가 또 누구요?”

가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누군지도 모르고 내가 당신을 따라 나서란 말입니까? 집사람을 죽이고도 모자라 이번에는 나요?”

나는 언성을 높였다. 다른 한편으로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들이 나를 또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급습했다. 한편으로는 채린이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알아야겠다는 궁금증이 고개를 쳐들었다. 김천수를 만나면 그런 의문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나를 뒤흔들었다.

북조선 상사원이었지만 김 선생님의 도움으로 탈출한 사람입니다. 인석씨가 저에게 그를 만나도록 주선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습니다.”

누굴 나를?”

?”

그것은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그 사람을 만나면 김 선생님에 대해 소상히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채린의 일을?”

나는 담배를 빼물었다. 따냐를 따라나서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이 길로 귀국을 서둘러야 할지에 대한 판단이 서질 않았다. 더욱이 따냐가 김일성대학 출신이란 점과 북한 상사원이란 말이 거슬렸다. 나마저 납치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면서도 채린의 사체 일부가 동토의 땅 어딘가를 뒹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피가 솟구쳤다. 남은 사체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압도했다.

수작은 더 이상 용납 못해. 수상한 행동을 하면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모릅니다.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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