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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112]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 정승열
  • 승인 2019.04.22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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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지도
1. 일본지도

지금처럼 영토와 국경 개념이 엄격하지 않았던 고대부터 일본은 선진국인 백제와 고구려를 통해서 학자와 승려를 통해서 한자·불교문화 등 많은 선진 문화를 전수받으며 교류해왔다.

그런 사실은 6세기에 급격하게 일본의 고대문화가 발전하는 아스카문화(飛鳥文化)를 형성한데서 잘 알 수 있는데, 섬나라 일본은 고려와 조선조정에 조공하며 문물을 받아오다가 수시로 한반도와 중국 해안을 습격하여 식량과 재산을 약탈하는 왜구로 변신했다.

특히 조선 선조 때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무사들의 불만을 대외로 돌리기 위해서 임진왜란(1592~93)과 정유재란(1596~98) 등 전후 7년에 걸친 전쟁으로 우리는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다.

전쟁을 치른 조선은 도요토미의 뒤를 이은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의 요청으로 1607년(선조 40) 국교를 재개하여 1876년 강화도 수호조약을 맺을 때까지 전후 12회의 통신사가 내왕했으나, 한말 일본은 또다시 조선을 침략했다.

이렇게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 동안 식민통치를 자행한 일본은 우리에게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너무 먼 ‘가깝고도 먼 나라(ちかくて とおい国)’가 틀림없다.  

북쪽 홋카이도에서 남으로 혼슈(本州)·시코쿠(四國)·규슈(九州) 등 4개의 큰 섬과 이즈제도(伊豆諸島)․ 오가사와라제도(小笠原諸島)· 류큐열도(琉球諸島)로 구성된 일본은 377,873㎢ 면적에 12,700만 명(2018년)이 살고 있다. 

2. 일본서기
2. 일본서기

일본의 역사는 712년 고사기(古事記)가 최초의 역사서이고, 720년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그 후 속일본기(續日本記)가 있지만 그 저자들은 모두 백제꼐 도래인들이다.

즉 고사기를 쓴 사람은 백제 왕족인 안만려(安萬呂)로서 고사기에서는 태안만려(太安萬呂: 오노야스마로)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 나라시대인 680년 덴무(天武) 천황 때 일본의 신화(神話)시대부터 지토 천황(持統天皇: 재위 645~702)시대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일본 최초의 정사 전30권의  일본서기는 백제의 패망 후 건너온 백제계 왕자인 도네리친왕(舍人親王) 등이다. 

일본서기는 660년 7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하였을 때, 사이메이 천황(齊明天皇: 642 ~645, 655~ 661)이 “백제가 다하여 내게로 돌아왔네(百濟國 窮來歸我)    본국(本國 : 本邦)이 망하여 없어지게 되었으니(以本邦喪亂) 이제는 더 이상 의지할 곳도 호소할 곳도 없게 되었네(靡依靡告)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뒤 백제부흥군의 끈질긴 투쟁에 663년 일본군과의 연합작전마저 금강하구 백강전투에서 패망하고 주류성이 함락되자, 덴지 천황(天智天皇) 2년(663)기사는 아래와 같이 한탄하고 있다.  

3. 도쿄지도
3. 도쿄지도

 

3-1. 도쿄 아사쿠사
3-1. 도쿄 아사쿠사

“주류성이 함락되고 말았구나(州流降矣).

어찌할꼬. 어찌할꼬(事无奈何). 

백제의 이름 오늘로 끊어졌네(百濟之名 絶于今日).

조상의 무덤들을 모신 곳(丘墓之所), 이제 어찌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豈能復往). 

이처럼 백제계 왕자들이 펴낸 일본서기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한반도의 신라에 반발해서 백제를 계승한 일본국이 신라보다 더 위대한 국가라는 자존심을 고양시키기 위하여 그때까지 왜(倭)라고 칭하던 국호를 버리고, 일본국(日本國)이라는 새 국명을 붙였으며, 또 왕의 명칭도 천황(天皇)이라고 칭하여 중국과 대등한 제국(帝國)으로 인식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신라는 물론 고구려․백제까지 모두 일본국에 조공하거나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등 만용을 부리기도 해서 우리는 일본서기를 무조건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그 행간을 밝히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일본 사서들을 종합해보면, 3세기 중엽 한반도 가야국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나라 지방에 야마타이국 혹은 야마도 정권(大和朝廷)을 세웠다. 야마도 정권 때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고분이 발달하여 야마도 시대를 ‘고분시대’라고도 한다.

그러나 규슈 지방에 이주하여 많은 인적․ 물적 교류를 해오던 백제 도래인들이 6세기에 나라 지방으로 진출하면서 야마도 정권을 몰아내고 새 정부를 세웠다. 이처럼 나라 지방은 고구려․ 가야 도래인들이 다스리다가 백제계 도래인들에게 지배권이 바뀌었을 뿐 한반도의 세력임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긴메이(欽明) 천황 13년(552) 백제의 성왕이 불상과 불경을 보내어 불교를 받아들일 것을 권하자, 일본 조정에서는 찬성파와 반대파의 30여년에 걸친 갈등 끝에 친백제파인 소가우마코(蘇我馬子)의 승리로 불교가 수용되었다.

4. 나라 법륭사 오중탑
4. 나라 법륭사 오중탑

4-1. 나라 동대사
4-1. 나라 동대사

소가씨는 592년 조카딸 스이코(推古)천황으로 만들었으며, 스이코 천황의 조카 쇼토쿠 태자(聖德太子)는 소가씨의 절대적인 후원아래 아스카(飛鳥)라는 불교문화를 이룩했다. 나라의 법륭사에는 쇼토구 태자와 그 어머니의 발자취가 가득하다.

쇼토쿠 태자 사후 645년 쿠데타로 고토쿠 천황(孝徳天皇)에 의해서 다이카 개신이 단행되면서 수도는 나라에서 나니와(難波: 오사카)로 옮겨졌다가 667년 덴지 천황(天智天皇)이 정권을 잡으면서 오쓰쿄(大津京: 오쓰 시)로 천도하고, 또 672년 덴지 천황의 후계자 싸움에서 승리한 덴무 천황(天武天皇)은 다시 아스카로 천도하고 710년 겐메이 천황(元明天皇: 661~721)이 아스카에서 헤이조쿄(平城京: 나라 시)로 천도한 이후를 ‘나라 시대(710~784)’라고 하는데, 이 시기는 백제․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한 직후이자 나라 지방에서의 이동에 불과했다.

한편 784년 백제계 도래인으로 알려진 간무 천황(桓武天皇: 737~806; 재위 781~806)이 나라에서 헤이안쿄(平安京: 교토)로 천도한 이후 1192년까지를 헤이안시대(平安時代)라고 한다. 간무 천황은 교토를 당의 장안성을 모방하여 황궁을 중심으로 23㎢ 면적에 좌우에 똑같은 크기의 1200개 구역으로 나눈 계획도시를 건설하고, 수도를 헤이안쿄(平安京)이라 했다.

이후 교토는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에도(東京)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약1100년 동안 천황이 있는 수도였지만, 사실 헤이안 시대에 천황의 권력은 미약하고 쇼군들이 실권을 장악한 막부 시대였다.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을 통일하고 무사들의 반발을 돌리려고 조선을 침략하더니, 163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부를 에도로 옮겼다. 

5. 오사카성
5. 오사카성

 

6. 교토 니조성 니노마루궁전
6. 교토 니조성 니노마루궁전

230여년이 지난 1867년 교토의 니조 성(二條城)에서 천황에게 전권을 넘기는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천황은 교토 고쇼(京都御所)에서 에도로 천도하면서 1889년 제국헌법을 공포하여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는 메이지 유신을 했다.

그런데, 2002년 3월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아키히도 일왕(明仁: 1989~2019)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백제 도래인의 후손임을 고백해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는 2019년 4월 30일 아들에게 천황직을 이양한다고 했다. 5월 1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새 일왕으로 즉위하지만 일본인으로서는 하늘같은 천황이 두명이 존재하는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7. 히메지성
7. 히메지성

8. 아키히도 일왕 부자
8. 아키히도 일왕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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