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67] 비통한 죽음을 혐오와 극단의 이데올로기 몰아서야

서울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에 전시된 안산 단원고 희생 학생들 수련회 단체사진.
서울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에 전시된 안산 단원고 희생 학생들 수련회 단체사진.

정치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설화(舌禍)에 곤욕을 치른 정치인을 숱하게 봐 왔습니다. 살다보면 말실수를 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은 다릅니다. 매사 언사에 조심해야 합니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16일은 세월호 참사 5주기였습니다. 이날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과 차명진 전 의원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 의원은 논란 이후 사과와 함께 “세월호가 더 이상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세월호 유가족이 아닌, 정치권을 향한 말이라고 해도 그날만큼은 ‘삼사일언’했어야 합니다.

죽음은 때로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왜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5년이란 세월을 견뎌온 세월호 유가족을 그들은 또 한 번 눈물짓게 했습니다. 뒤늦게 사과는 했지만, 국민들 분노만은 세월호 마냥 쉽게 가라앉진 않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5주기 하루 전날. 국회를 다녀오다 광화문 광장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광화문 세월호 천막농성장은 기억 공간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기억 공간 한 쪽에 2013년 봄 안산 단원고 1학년 학생들의 수련회 반별 단체사진이 액자에 담겨져 있습니다.

사진 속 학생들은 손가락으로 브이(V) 표시를 하거나 하트 모양을 만들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수련회를 다녀온 그들은 이듬해 봄, 차가운 동거차도 바다 속에 가라앉았습니다. 그들을 포함해 그날 배를 탔던 304명은 ‘가만히 있어라’는 말만 듣다 참변을 당했습니다.

김훈 작가는 ‘연필로 쓰기’라는 책에서 세월호 아픔을 이렇게 썼습니다.

“지금, 경기도 안산 분향소에는 어린 눈동자 수백 개가 사진 틀 밖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영정 속에 눈동자들은 별처럼 박혀 있다. 이 시선들 앞에서 대한민국은 아직도 몸 둘 곳 없고, 숨을 곳도 없다. 이 눈동자들 앞에 동거차도 냉잇국 한 그릇 올릴 수 있는 탈상의 날은 언제인가.”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세월호 참사는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며, 입법을 해야 할 정치인들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한 건 말마따나 ‘생각이 짧았’습니다.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4선 중진 의원이라면 그 후폭풍이 어느 정도일지 분명 생각했을 터. 그럼에도 대중이 보는 온라인상에 사실을 왜곡한 글을 버젓이 올린 건, 자신들을 지지하는 보수층에 보낸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외국의 명문 축구 구단은 공식 페이스북에 세월호 5주기를 맞아 한글로 “우리는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고 올렸습니다. 하물며 외국인도 이럴진대 대한민국 전‧현직 국회의원이란 분들이 막말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비통한 죽음을 정치적 혐오와 극단의 이데올로기로 몰아가선 안 될 일입니다. 더불어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언사도 삼가야 합니다.

이해인 수녀는 세월호 추모시에서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보며 푸른 바다와 수평선을 바라보며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오늘도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 미안하다는 것, 잊지 않겠다는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면, 이번 정치인들 망언은 ‘정치란 무엇인가’를 곱씹게 만들었습니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작금의 우리 정치 현주소입니다. 세월호는 앞으로도 100년은 더 ‘기억’해야 합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없이 지나온 5년을 ‘징글징글하다’고 표현하기는 너무 짧습니다.

한국당은 오늘(19일) 윤리위를 열어 정진석 의원과 차명진 전 의원 징계 여부를 논의합니다. 5.18망언 논란에 이은 세월호 망언에 어떤 조치를 취할지 지켜보겠습니다. 만약 어물쩍 넘어간다면 한국당은 대한민국 제1야당 자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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