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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어떤 활달한 장애인의 토로
[특별기고] 어떤 활달한 장애인의 토로
  • 조용태
  • 승인 2019.04.18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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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태 장애인자립센터행복은행장

매년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기념행사는 이틀 앞서 열린다. 오늘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앞으로 한 주간은 장애인 주간이다. 본지는 ‘장애인 관련 기고를 몇 차례 싣는다. -편집자 주-

조용태 장애인자립센터행복은행장

이 글은 장애인에게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며 자립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확충에 국가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현재와 미래 세대의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7만 2927명. 대전광역시 등록장애인의 숫자다. 대전시 전체 인구의 5%가 채 안 된다. 등록이 안 돼 있는 사람까지 합하면 어림잡아 7% 10만 명 정도 될 것이다. 대부분은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데 힘이 부치는 사람들이다.

장애인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차별이다. 이제는 장애인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듯한 분위기가 여전히 장애인들을 힘들게 한다. 장애인 하면 편견과 차별이 늘 수식어로 따라 붙는다. 1981년 장애인의 날을 시작으로 공동체에 편견과 차별을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해오고 있으나 3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호소를 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존재하는 한 상대적 개념으로 편견, 차별은 앞으로도 있을 수밖에 없고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차별과 편견은 장애인과 장애인 관계 속에도 있고, 비장애인과 비장애인관계 속에도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맡은 역할을 다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국가경쟁력 지표이기도 하다. 장애인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성장하는 것이다.

“포기하는 것 배우고서야 살아갈 수 있었다”

장애인 중에도 활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아는 한 장애인도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한 말은 내게 충격이었다. 그는 “나는 포기하는 것부터 배우면서 지금껏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의 활달함은 도전이 아니라 포기를 통해 얻은 것이었다. 포기를 한 뒤에야 이 정도나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간과 시기만 다를 뿐 한번은 장애인이 된다. 노인이 되거나 병약해지면 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들에게 장애인 문제는 자신과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장애인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2018년 대전광역시 예산은 5조 2459억 원이다. 그 중에서 장애인 7만 3000여명에게 쓰는 돈은 1723억 원이다. 대다수의 장애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적은 금액임을 알 수 있다. 장애인 삶의 질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장애인 예산의 불공정한 분배다. 장애인 예산은 모든 장애인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여기에는 장애인 자신이 신청을 해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가 한몫을 하고 있다. 예산이 부족하더라도 골고루 받아야 하는데 어떤 장애인들은 아예 못 받고 있다.

정부가 지원을 해주어야 할 대상인데도 본인이 신청하지 못해 지원을 못 받는다. 물론 이런 장애인들은 이런 지원제도가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어쨌든 자신이 신청을 않아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므로 장애인 자신의 책임이다. 그러나 장애인을 위한 사회라면 그 책임을 장애인에게 돌릴 수 있는가? 이것부터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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