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삭은 문화를 추억하며
곰삭은 문화를 추억하며
  • 길공섭
  • 승인 2019.04.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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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원연합회장 길공섭 시인 사진인

길공섭 대전문화원연합회장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는 1974년 당시 대전 천 복개공사와 함께 각 4층과 8층 규모로 건축되어 대전역과 함께 원도심의 중심역할을 하였다.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는 대전의 페션을 선도하였으며 대전의 상징 건물로 자리하였고 부설 공원은 도심 속 시민들의 쉼터와 만남의 장소, 그리고 소공연장으로 추억을 함께 했던 곳으로 사랑받던 곳이다.

목척교(木尺橋)는 6.25동란 땐 서울 등지에서 남하한 피란민들이 생이별한 가족 친지를 찾느라 목척교로 모여들었던 것. 피란 공간에서 애환의 다리로 유명세를 탄 때문인지 우리 가요사 에도 목척교는 흔적을 남겼다. 1962년 안다성이 부른‘못 잊을 대전의 밤’이 그 노래다. 그런 연유로 중앙시장에는 이북에서 피난 온 분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있다.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 목척교는 결국 복개 34년만인 2008년에 와서야 원상복구에 들어갔다. 만인산에서 발원한 대전천 물길이 잘 내려오다가 목척교 지점에 버티고 있는 상가와 데파트 기둥에 막혀버렸던 것. 복개 밑에는 상가와 데파트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둘레 1미터 기둥을 424개나 촘촘하게 박아 물의 흐름을 막았던 것이었다.

철거한 자리에 목척교를 새로 건축하고 주변을 수변공원화 하는 작업을 진행해서 2010년 준공하였다. 그 주변에 산책로, 음악분수대, 휴게시설, 공연 문화 시설 등 새롭게 건축되어

대전역과, 중앙시장, 먹자골목, 대전천이 함께 대전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할 토대를 마련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크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목척교가 품고 있는 문화(정체성)를 배제 한 체 국적도 없는 콘크리트 덤이를 덮어 놓은 흉물이 대전 천을 가로막아놓아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을 답답하게 한다. 추억의 역사와 그 지역의 깊은 문화가 담겨있는 곳의 재정비나 재건축등 사업을 시행할 때는 전문가와 문화예술인들, 지역의 토착민들과의 생각을 하나로 묶어야 후회 없는 사업이 될 것이다. 그래야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문화를 물려 줄 수 있을 것이다.

1958년 8월 20일 대전역 준공식.
1958년 8월 20일 대전역 준공식.

목척교(木尺橋)의 어원은 새우젓장수가 아침저녁으로 대전천이 흐르는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다릿돌 위에 지게를 받쳐놓고 쉬었는데 그 모양이 상형문자인 '자尺'자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 이곳의 지명을 목척리(木尺里) 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제 총독부가 1912년에 징검다리에 나무다리를 설치하면서 목척이란 이름 대신에 대전교란 엉뚱한 이름을 붙여 침략의 본색을 드러낸 역사적 진실도 숨어있는 다리며, 1945년에 해방이 되면서 목척교(木尺橋)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1970년대 중앙시장.
1970년대 중앙시장.

목척교(木尺橋)는 대전의 역사와 맥을 함께하는 역사의 중심에 있는 다리다. 그 주변에 대전의 첫 전통 중앙시장이 자리 잡고, 우측으로 한약문화가, 한약문화 뒤로 인쇄문화가 자리하고 먹자골목의 고소한 내음 도 함께 활기를 띄어 가고 있다. 가끔 문화가족과 향수어린 먹자골목을 찾을 때엔 4,5십년을 묵묵히 그 자리에서 옛 맛을 그대로 이어온 몇몇 작은 골목식당에서 옛 추억을 더듬곤 한다.

1970년대 초반 목척교 주변과 제일은행.
1970년대 초반 목척교 주변과 제일은행.

반갑게 마자주는 꽃 같던 새댁 아주머니가 할머니가 되어버린 세월지난 빛바랜 추억들이 도란도란 흑백필름으로 흐른다. 그 시절 모두가 어렵게 살 때 최고의 성찬이라고 즐겨먹던

단골메뉴 닭 내장 탕은 지금도 그 추억을 고스란이 우리에게 선물한다. 닭 내장탕 한 냄비면 몇 명이 배부르게 먹고 막걸리 몇 잔에 부러울 것 없던 그 시절, 정겹게 손님을 부르던 좌판의 아주머니, 아이스 께끼를 외치며 골목을 누비던 소년, 돈이 없어 술 갑 대신 담보했던 손목시계, 찌그러진 양재기에 가득 담아주던 팥죽 파는 아주머니가 타이머신을 타고 새록새록 주마등 되어 추억으로 흐른다.

1993년 엑스포행사 당시 목척교 주변, 중앙데파트 상가 분수대.
1993년 엑스포행사 당시 목척교 주변, 중앙데파트 상가 분수대.

보슬비가 내리는 날 대전 천을 걸으며 가로등 희미한 목척교에 기대서서 나 홀로 쓸쓸이 이슬비를 맞으면서, 안다성씨의 못 잊을 대전의 밤 노래를 음미하면서 새로운 목척교의 추억을 세워 가며, 세대 간 격차가 큰 문화소통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목척교가 되길 기대한다. (참고사진 : 대전시사, 인터넷 카페, 불로그 등에서 발취)

중앙데파트.
중앙데파트.

최초의 목척교 징검다리.
최초의 목척교 징검다리.

콘크리트 목척교.
콘크리트 목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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